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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레고로 만든 건물? 오직 소리만을 위한 공간

소리를 기록하기 위한 공간, 스튜디오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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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소리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무결점의 기록 공간

붉은 벽돌 건물과 마주하면 독특한 외관에 당황스러움이 느껴진다. 생김새를 설명하면 택배 기사님들이 건물을 못 찾아 헤매는 법이 없다고. 일종의 레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스튜디오 파주의 사옥은 인근에 쉽게 보이는 흰색이나 연회색 톤의 벽재와 통유리로 지어진 건물들과는 대조적인 모양새를 띤다.

김영일 대표는 이 공간을 젊은 건축가 두 사람과 작업했다. 그들은 창문 하나 없는 오직 소리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는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ㅣ 보존을 위한 방
AD/DD/DA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은 한국에 극히 드물다. 이 공간에서는 DXD 및 DSD256 등 초고해상도의 녹음과 마스터링이 가능하며, 과거에 릴 테이프에 녹음된 아날로그 포맷을 디지털화해서 현대의 DSD기반 데이터의 아날로그로 다시금 변환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ㅣ 기록의 공간을 찾아
스튜디오 파주의 핵심은 기록이다. 물론 현존하는 모든 음악 전문 스튜디오가 소리를 기록하고 가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 곳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아날로그 원음, 즉 어떤 사운드가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기 이전의 자연의 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기록하는 데에 집중하는 공간이다.

ㅣ 스튜디오 A
원 박스 형태의 어쿠스틱 전용 홀로, 퓨어 레코딩을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간의 가청주파수 영역은 20Hz에서 20,000Hz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20Hz 파장의 길이는 8m가량으로 그 폭이 아주 넓은데 만약 공간의 높이가 그보다 작다면 20Hz의 소리는 원음 그대로의 진동을 나타내기도 전에 벽에 부딪혀 왜곡된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스튜디오 A는 가청주파수 영역을 고려해 소리공학적으로 만든 곳으로 음에 왜곡이 발생하거나 음이 압축되지 않고 1,2차 반사음을 통해 자연스러운 앰비언스를 만들어 소리의 자연음을 살리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스튜디오 A의 높이는 14m다. 음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으며 왜곡이 발생하지 않아 퓨어 레코딩에 최적화된 길이다.

ㅣ 스튜디오 B
스튜디오의 중심부에서 컨트롤러로 올 포원 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총 여섯 개의 부스가 있다. 클래식, 창작 국악, 밴드 음악, 게임 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며 녹음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스튜디오 파주, 김영일 대표

다독가입니다. 관심분야에 대한 참고서적들도 많이 읽지만, 먼저 그 분야의 기초 서적을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셸 푸코, 가스통 바슐라르의 고전 책을 좋아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번역가 김현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걸 읽었어요. 미셸 푸코 같은 사람들을 알리는 데 있어서 한국인으로서는 선구자죠. 김현 선생님께서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뵌 적은 없는데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사진을 공부했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니 사진에 대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필요를 느꼈어요. 인류는 어째서 사진을 발명했고, 영상은 어째서 만들어졌는가. 내셔널 지오그라피는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가. 이런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한 가지 자명하게 깨달은 바가 있어요. 사진의 근본은 상을 따라다니는 것. 진실을 모방하는 데 있어요. 내가 공부하는 학문은 진실을 모방하는 학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인류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귀국 후에는 스물여덟에 군대를 가서 서른에 제대를 했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가끔 저는 제 성격이 조금 무섭습니다. (웃음) 악당이반 외에도 미디어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외부에 촬영을 나갈 일이 많은데, 처음에는 카메라 네대 정도가 나갔어요. 그런데 네대가 나갈 때 한 시스템으로 나가야 같은 톤을 유지할 수 있죠. 한 세트당 1억 상당의 카메라를 네대 움직인다는 의미예요. 물론 앞으로도 더 구매할 계획이고요. 스튜디오 파주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일 때는 마이크가 8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60개 정도로 운용하고 있죠.


디지털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비용적인 측면이나 운용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에 때로는 매번 따라잡기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렇다고 고화질이나 고음질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현실의 포맷이 추구하는 수준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해나가야 합니다. 수지타산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악당이반 사업은 돈이 되지 않아요. 수도세와 전기세만 낼 수 있으면 다행이죠. 부족한 부분은 대부분 제 사비를 들여 운영해왔어요. 하지만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제 인생을 10년 단위로 나눠서 계획을 세워뒀어요.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다녀오고 스물여덟 살에 군에 입대했는데, 제대 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했어요. 3일간 칩거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죠. 10년 단위로 나눠 계획과 목표를 설정했고, 처음 10년 그다음 10년 그리고 마지막 10년까지 총 30년간 사회에 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그 무렵에 완성했어요. 그리고 10년을 다시 3으로 나눠서 3년씩 쓰면 3년에 한 번씩 제 삶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총 9번이 생기죠. 또 1년씩 세 번의 여유기간이 남게 되는데, 그 시간은 했어야 했는데 못했던 일들을 하기 위한 정비의 시간으로 가졌어요. 그걸 단단히 해야 그다음 10년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이제 환갑까지 딱 1년이 남았는데, 환갑이 되면 쉴 거예요.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일을 할 거고, 환갑부터는 원 없이 놀 거예요. 처음 10년은 남들이 나에게 해달라는 걸 다 해주자. 사진을 찍어달라면 찍어주고, 영상을 만들어 달라면 원하는 대로 다 만들어주자. 회사를 만들어서 계획한 대로 했어요. 그다음 10년은 남이 해달라는 것은 절반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절반 하자. 내 인생 의 절반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자는 거였어요. 단 수익이 줄어 들지 않는 범주 내에서 해보자.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반쯤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의 절반 정도는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실은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마흔여덟쯤 되니 되더라고요.


마지막 10년은 지금인데,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전부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세상이 나를 인정하고 나의 것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 어느덧 제가 애초 계획한 마지막 구간의 끝을 바라보고 있네요. 올해가 환갑이니. 요즘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악당이반의 자본은 영상회사 그루비주얼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10분에 1 가량에서 끌어오고 있어요. 실은 악당이반은 서른 살 때 제 계획에는 없던 거예요. 국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저는 지금쯤 영상회사만 운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함이 두장이에요. 그루비주얼에서의 저는 악당이반에서 보는 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루비주얼의 저는 철저하게 정책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에 가깝죠.


세상의 유형은 끊임없이 변화하죠. 하지만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한 몇 가지 규칙 안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키면서, 외부의 변화는 흡수해 저의 것으로 사용했어요. 세상을 따라잡고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세상의 정의만으로 살아간 적은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사업을 할 때에도 수익성만을 생각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의 악당이반이 존재했을까요?


나를 귀하게 여겨야 상대도 나를 귀하게 여긴다. 시대가 교체되면 미디어 포맷도 변화하게 마련이죠. 과거의 것을 현재의 어법으로 바꾸는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지나간 시대의 기록을 현존하는 최상의 화질과 소리로 컨버팅해 보여주는 일은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국악을 세상의 어법 중 가장 하이 레졸루션으로 보존하는 일에 대해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모여 우리끼리만 우리의 음악이 좋다고 떠들어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많은 이들을 통해 좋은 가치가 공유되고 화자 될 때 비로소 오리지널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제가 스튜디오 파주에서 하는 모든 일은 가치에 대한 겁니다. 휘발되지 않을 시대의 기록을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 써내려 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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