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3) - 기아 스포티지

조회수 2021. 3. 19. 18: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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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송받지 못한 기아의 영웅

일본에서의 첫 만남

1991년 가을. 일본 지바현에 있는 마쿠하리 전시장에서 기아 스포티지를 처음 만났다. 지금은 비록 동네 모터쇼로 전락했지만, 일본 버블 경기의 절정기였던 그 무렵의 도쿄 모터쇼는 아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로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공을 들였다. 그뿐 아니라 요즘 현대·기아차처럼 일본 메이커들은 엄청난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양산차는 물론 화려한 콘셉트카들을 내놓았다. 도쿄 모터쇼만 보아도 그 해 그리고 다음 해 세계 자동차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당시 세계 무대에 갓 얼굴을 내민 우리나라 메이커들도 도쿄 모터쇼에 무대를 마련했다. 일본이 아닌 세계 시장을 향한 무대였다. 현대와 기아가 각자 독립해 있던 시기여서 전시 부스 역시 독립된 모습이었지만 두 부스 모두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였다. 현대는 그전 디트로이트 쇼에서 발표했던 콘셉트카 HCD-1을 전시했고 기아는 당시 발매되지도 않은 두 모델을 전시했다. 그저 평범한 소형 세단(세피아)과 전혀 새로운 형태와 체구를 지닌 컨셉트카 NB-7, 바로 스포티지였다.

막 서른에 들어선 필자가 처음 본 스포티지는 두 가지 관점에서 놀라웠다. 하나는 콘셉트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수수한(?)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당시 어느 차에서도 보지 못한 패키징이었다. 그 무렵은 SUV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기껏해야 미국 메이커들이 트럭을 바탕으로 왜건 차체를 얹어 SUV라는 명칭을 마케팅 용어로나 쓰이던 시절. 한마디로 4WD 기능을 더한 왜건형 차들은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크로스컨트리 오프로더들 뿐이었다. 

출처: Suzuki
스즈키 사무라이

그런데도 같은 프레임 섀시에 왜건 차체를 얹은 스포티지는 특이한 존재였다. SUV는 대부분 큰 차체였고 작은 체구라고는 일본 경차 스즈키 짐니에 1,300cc 엔진을 얹은 사무라이, 그보다 조금 큰 에스쿠도(미국 수출명 사이드킥), 러시아 라다의 니바 정도였다. 굳이 그보다 조금 나은 차체를 지닌 다이하스 로키나 지프 랭글러 등이 있었지만 그 모델들은 2도어 숏보디의 험로 주파용 오프로더였다(그래 봐야 대부분 길이가 4m에 미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스포티지는 길이 4,125mm, 너비 1,735mm, 높이 1,655mm에 휠베이스가 2,650mm나 되는 체구였다. 당시 앞서 언급했던 소형 4WD 모델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4WD 모델들은 4.5m가 넘는 큰 체구들뿐이었다. 굳이 스포티지와 비슷한 체구를 지닌 4WD 모델이라면 지프 체로키가 유일했다(지프 체로키의 크기는 4,288x1,790x1,608mm에 휠베이스 2,567mm).

출처: Stellantis
지프 체로키(XJ)

1990년도만 하더라도 굳이 오프로드를 달릴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4WD 기능이 필요한 그러면서 경제적인 차에 대한 니즈를 만족시킬 모델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독자 모델 하나 없던 아시아의 새내기 기아가 선보인 스포티지는 정말 대단했다. 단순히 콘셉트카가 아니라 양산 직전의 파일럿카같은 모습에 이 모델이 양산되면 세계적으로 특히 유럽에서 크게 히트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만남

그렇게 큰 놀라움을 전해준 스포티지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1년 반 넘도록 설렘만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사이 비슷한 개념의 토요타 RAV4 5도어 모델마저 시장에 나와 스포티지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패키징의 상큼함이 가라앉을 무렵이 되어서야 재회할 수 있었다.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1993년 여름, 스포티지로 도로를 달릴 기회를 맞았다. 재회한 모델은 콩코드에 얹혔던 1,998cc SOHC 4기통 휘발유 엔진으로 최고출력 110마력/5,000rpm에 최대토크 17.0kg·m/4,000rpm를 냈다. 

당시 국내에서 ‘지프차’라고 불리던 오프로더들이 대부분 디젤 엔진을 얹던 시절, 휘발유엔진 모델을 내놓은 스포티지는 혹평에 시달렸다. 당시 휘발유는 경유보다 거의 2배나 비싼 연료였고, 소음에 대해서도 관대하던 시절이어서 스포티지는 신차효과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또 필자가 그리 높이 샀던 컴팩트한 패키징 역시 국내 수요자들에겐 너무 작게 어필했다. ‘프라이드를 부풀린 거 아니냐?’는 식의 비난이 돌기도 했었다.

자줏빛 스포티지에 올랐다. 코란도나 갤로퍼와는 다른, 낮은 듯한 시트 포지션과 높은 차체에 유리창 영역까지 넓어 시야가 좋았다. 물론 사각도 훨씬 나았다. 높은 머리공간 덕에 확실히 지프 체로키보다 공간이 컸다. 실제로는 몇 cm 차이 나지 않았지만, 한참 커 보이는 체로키보다 넓은 공간감 역시 놀라웠다.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게다가 당시 톱 셀러였던 현대 갤로퍼가 자랑하는 오토 프리 휠 허브(Auto Free Wheel Hub)보다 앞선 시프트 온 플라이 시스템(Shift On Fly System)을 쓴 4WD 조작방식도 놀랄만한 기술이었다. 

당시 파트타임 4WD 차들은 2WD에서 4WD로 바꾸려면 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에 둔 상태에서 트랜스퍼 레버를 조작해야 구동 전환이 이뤄졌다. CJ 모델 바탕의 첫 쌍용 코란도와 현대 갤로퍼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구동 전환을 했는데, 코란도나 아시아 록스타는 차에서 내려 앞바퀴 허브를 고정해주는 과정을 밟아야 비로소 4WD 기능을 할 수 있었다. 갤로퍼는 휠 허브 고정이나 해제를 따로 할 필요가 없는 오토 프리 휠허브를 써 구동 전환과정을 간단하게 했다. 

그런데 스포티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속 60km 이하의 속도에서는 단순히 트랜스퍼 전환 레버만 2H에서 4H 혹은 4L로 바꾸면 구동전환이 가능한 시프트 온 플라이 시스템을 갖췄다. 달리면서 구동 전환을 한다는 것이 30년 전에는 놀라운 신기술이었다. 비싼 차도 아닌 게다가 오프로더 제작 경험조차 미미한 작은 회사에서 만든 고유 모델에 이런 신기술까지 담아낸 것이 놀라웠다.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주행성능이었다. 콩코드보다 무거운 차체에 조종성능 면에서 불리한 높은 차체를 가진 스포티지를 몰아보면,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현대 갤로퍼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뛰어난 가속 성능과 조향 성능을 보여주었다. 코너링에서의 안정감이나 스티어링 응답성은 차원이 달랐다. 스포티지의 주행능력은 오히려 같은 엔진을 얹은 콩코드와 비교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필자는 스포티지의 달리기에 엄청나게 놀랐다. 특히 핸들링 성능은 콩코드보다 낫게 느껴졌다.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손을 빌린 서스펜션 세팅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기아가 줄기차게 스포츠 세단이라 광고했던 콩코드의 달리기 성능은 당시 한 급 낮은 현대 엘란트라보다 특출날 것이 없었다. 뻣뻣한 하체가 그랬고 이질적인 조향감 역시 스포츠 세단이라기에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90년대 초 국산차 수준에서 본다면 평균 이상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 세단’이란 표현은 기아 마케팅 부서만의 공허한 주장이었다.

그런데 무게나 스타일링이나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불리할 것 같은 스포티지가 수준 높은 달리기를 실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심이건 고속도로건 온로드건 오프로드(비포장도로)건 필자가 내린 달리기 종합 평점은 국산차 중 톱이었다. 

또 한 번의 만남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그랜드

이렇게 대단한 스포티지가 국내에선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기아는 경제성 높은 경유 모델을 더하고 기형적으로 뒤를 늘인 스포티지 그랜드를 내놓는 등 애를 썼지만, 안타깝게도 내수 시장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고 좋은 차라는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스포티지의 진가는 유럽에서 알려졌고 시대에 흐름에 뒤처지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러시아, 중국, 슬로베니아 등에서 라이선스 생산이 이어지면서 아직도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가 스포티지를 다시 만난 것은 2009년 그러니까 2세대 스포티지마저 은퇴할 무렵 아멕스라는 1세대의 마지막 스포티지였다. 당시 필자는 바이오 디젤 관련 실험을 위해 정교한 커먼레일 방식을 쓰지 않는 경유차가 필요했다. 주변에서는 쌍용 무쏘나 뉴 코란도 또는 현대 테라칸 2.5 등을 권유했지만, 실험을 위해 두어 달 출퇴근까지 해야 했기에 운전이 가장 편한 1세대 스포티지를 택했다. 

출처: 기아자동차
기아 스포티지 AMEX TCI

주행거리 11만km였던 스포티지 아멕스는 운전하기에 변함없이 즐거웠다. 출고된 지 7년 차인 아멕스는 여전히 활기찼다. 데뷔부터 따지면 당시 18년 된 차였지만 디자인이나 편의 장비가 아닌 달리기 성능만을 떼어놓고 보면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요즘 차와 비교하면 현대 베뉴와 기아 셀토스 사이에 들어가는 크기에 100마력 살짝 넘는 출력을 냈던 스포티지는 2021년 현재 기준에서 보아도 훌륭한 달리기 성능을 보여주는 국산 올드카다. 휘발유 엔진의 스포티지라면 요즘의 혹독한 환경기준에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그리고 90년대 당시의 오프로더 중에서도 가치를 빛낼 수 있는 퓨처 클래식이란 생각이 든다.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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