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제임스 본드의 첫 번째 본드카, 선빔 알파인

조회수 2020. 12. 1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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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면서도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달린 스포츠카

1965년 봄, 영화 '007 위기일발'이 007시리즈 중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봉했다. 당시 영국 첩보원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를 보기 위해 찾은 관객으로 극장가는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이 영화가 얻은 '국내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타이틀은 성룡 주연의 '취권'이 개봉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유지됐다. 관객들은 007의 적이지만 아름다운 본드걸과의 로맨스와 신무기가 가득한 본드카에 열광했다. 

제임스 본드의 애마를 애스턴 마틴이나 벤틀리의 모델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화에 등장한 첫 번째 본드카는 전혀 다른 브랜드의 차였다. 이번 이야기는 그 차의 헤리티지에 관해 다뤄 본다.  

007시리즈를 탄생시킨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하 플레밍)은 벤틀리 마니아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카지노 로열', '문레이커' 등에서 제임스 본드의 애마로 벤틀리 4.5리터 블로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과 달랐다. 시리즈 첫 영화 '닥터 노(Dr. No)'는 벤틀리를 빌릴 수 있을 만큼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았던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힐만 밍스(Hillman Minx), MGB, 트라이엄프 TR3와 TR4 등이 기획 단계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제작자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숀 코너리의 생각은 달랐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자메이카의 평탄하지 않은 도로에서 자동차 추격 신을 촬영하려면 고출력보다 주행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모델보다 렌트비가 저렴하고 편안한 움직임을 보인 선빔 알파인 시리즈 2(Sunbeam Alpine Series II)가 007시리즈 역사상 첫 번째 본드카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제임스 본드의 선택을 받은 알파인의 험로 주행의 안정감과 높은 승차감 그리고 만족할만한 가속력을 끌어낸 선빔의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바퀴가 달린 가장 기초적인 이동수단인 자전거부터 제작하며 차근차근 성실하게 제조기술을 쌓아 올린 기업이 바로 선빔이었다. 

선빔의 역사는 존 마스턴(John Marston)이 중공업과 화학공업의 중심지로 알려진 잉글랜드의 울버햄프턴에서 1888년부터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을 생산 공장을 세우며 시작되었다. 이후 1909년 프랑스 출신 루이 코타렝(Louis Coatalen)이 선빔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면서 속도에 관한 헤리티지가 시작되었다. 모터스포츠에 꾸준히 참가함으로써 훌륭한 성적과 명성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는 경주에 출전할 수 있는 빠른 차를 만들기 원했다. 

선빔은 그렇게 만든 3리터(3 Liter)를 중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경주용 모델을 제작하는 회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선빔은 우수한 파워트레인 덕분에 여러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할 수 있었고 영국 국기를 전 세계에서 흔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영광은 눈덩이처럼 쌓인 채무를 해결하지 못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선빔은 1935년 루츠 그룹(Rootes Group, 이하 루츠)에 매각되었다. 

레이싱의 혼을 가지고 태어났던 선빔의 모델들이 루츠 그룹 계열사 차들과 기술적 요소를 공유하게 되었다. 007의 첫 본드카였던 선빔 알파인 시리즈 모델들(이하 알파인)은 루츠 그룹 산하에서 생산되었지만 선빔의 헤리티지와 영혼을 이어받았다. 

다시는 다른 회사로 흡수되기 싫었는지, 알파인은 루츠가 크라이슬러에 매각된 1968년경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후 1978년 불꽃처럼 빛나던 차를 만들어내던 선빔 브랜드조차 크라이슬러가 유럽 사업에 손을 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은 기록일 뿐, 알파인은 자동차 애호가와 007 팬들의 기억 속에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생산된 알파인은 ‘영국 영화는 똑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처럼 기존의 루츠 모델과 다른 자동차였다. 더 나아가 자동차 경주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우수한 성능의 선빔 래피어(Rapier)와 힐만 밍스(Minx)의 기술적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면 플로어 팬은 힐만 허스키 에스테이트(Husky Estate), 구동장치는 선빔 래피어의 것을 가져왔다. 

이 모델의 로드스터 버전의 핀 테일을 가진 외형은 1950년대 포드 선더버드와 비슷했는데,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디자인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약 80마력의 힘을 내는 4기통 엔진은 미국 머슬카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약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이후 루츠는 알파인을 바탕으로 강력한 출력을 내는 V8 엔진 모델 타이거(Tiger)를 출시하기도 했다.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차를 만들기 위해 디트로이트에서 온 루츠의 디자이너 케네스 하우스(Kenneth Howes)는 당시 유행하던 아메리카 스타일을 알파인 시리즈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차체 뒤쪽에 테일핀을 적용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마케팅 중심으로 디자인한 알파인 시리즈 I은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배기량 1,494cc에 78마력 정도의 출력을 내는 직렬 4기통 OHV 엔진은 미국 자동차 애호가들이 만족할 만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선빔은 1년 만에 1,592cc 엔진을 올린 후속작인 알파인 시리즈 II를 내놓았다. 이렇게 탄생한 시리즈 II는 80마력 정도의 출력으로도 972kg 정도의 가벼운 차체 무게와 14.5:1의 스티어링 기어비에 힘입어 빠르고 정확하게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승차감과 핸들링 균형도 매우 훌륭했다. '이것이 바로 알파인의 본질'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시리즈 II는 르망과 몬테카를로 랠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다. 

당시 높은 출력을 내던 MGB, 트라이엄프 TR3 등보다 빠르진 않았지만, 007시리즈 투입을 위해 알파인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낮은 비용으로 높은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을 얻을 수 있는 차를 고른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포츠 성격의 차가 지녀야 할 덕목은 빠른 속도뿐만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숀 코너리와 영화 제작자도 이런 선빔 알파인 II의 매력에 설득당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언젠가 이 차를 타고 제임스 본드처럼 자메이카의 햇살 가득한 눈부신 도로를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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