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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클래식

람보르기니의 첫 차, 350 GTV

새로운 슈퍼카 제조사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한 전설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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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를 만나 페라리 250 GT의 기계적인 문제점을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페라리의 수장은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세계 최고의 차에 불평하지 마세요. 당신은 트랙터 운전수 아닙니까? 농부인가?” 이 말에 화가 난 페루치오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난 농부다! 진정한 스포츠카가 뭔지 보여주지. 두고 보자고!”

1948년에 설립한 람보르기니 트라토리 공장에 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출처learning history

위 대화는 람보르기니 테스트 드라이버로 오랫동안 일했던 발렌티노 발보니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극화한 것이다. 왜 그들의 만남은 격앙된 분위기가 되었을까? 이에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이야기는 이렇다. 그 당시 엔초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역사적인 12V 엔진과 250 테스타로사 등의 개발 비용으로 은행의 압박도 거세어졌다.

그런 그에게 경주가 아닌 트랙터 등의 마케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사업가의 이야기가 반갑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 대화로 황소를 선두에 두고 달려가는 슈퍼카 제조업체가 만들어진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지금부터 람보르기니의 탄생 과정과 생산 차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람보르기니가 만든 트랙터

출처Wikimedia Commons

페루치오는 포도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기계 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 공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로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이후 연합군이 버리고 간 트럭과 지프 등을 재사용한 트랙터와 건설 장비를 제작, 공급했다. 이로써 전후 재건에 큰 공을 세워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또한 대학과 공군에서 배운 기술로 난방기와 에어컨까지 만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 재산으로 당시에도 고가였던 알파 로메오 1900 슈퍼 스프린트, 란치아 아우렐리아 B20, 메르세데스-벤츠 300 SL, 마세라티 3500GT 등 고성능 모델을 샀다. 또한 소유한 여러 스포츠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더 뛰어난 승차감, 내구성 그리고 출력 등을 가진 슈퍼카를 원했다. 마치 그의 바람을 알았던 것처럼, 때마침 최고의 카로체리아였던 스칼리에티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명차가 등장했다. 페루치오는 망설임 없이 두 대를 샀다. 그 차가 바로 페라리의 전설적인 스포츠카이자 엔초와 격앙된 대화를 이끌어낸 페라리 250 GT였다.

이 모델의 짧은 휠베이스, 유려한 차체, 강력한 엔진 그리고 도로를 쥐어 잡고 달리는 듯 날카로운 코너링 등은 페루치오를 만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250 GT의 파워트레인에 자신의 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슈퍼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첫 과정으로 그는 250 GT의 클처치 등 몇 가지 부품을 튜닝해 보기로 했다.

1950년대 후반에 페루치오가 소유했던 페라리 250 GT 2+2

출처Ferrari

여담이지만 페루치오는 클러치를 자주 태워 먹었다고 한다. 그의 계획에 따라 250 GT의 기존 클러치보다 더 크고 내구성이 강한 보그 앤 벡(Borg & Beck)의 클러치로 교체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카뷰레터를 엔진에 달아 출력을 높였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당시 페라리는 경주차의 성능을 낮춘 이른바 디튠(detune)한 양산 모델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250 GT를 만족스럽게 튜닝한 뒤, 페루치오는 페라리 공장이 있던 마라넬로 주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페라리 테스트 카를 만나면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아 경주를 펼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페루치오의 행위를 전해 들은 엔초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요즘도 도로에서 다른 차와 속도를 겨루는 행위는 비정상적이고 위험해서 법으로 금지되어있다. 페루치오의 그런 행동은 심지어 속도 경쟁이 본업인 스쿠데리아의 수장이자 레이서 출신인 엔초에게는 더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만남 전부터 묘한 신경전이 흐르게 된 계기가 이런 것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한다. 엔초와 만난 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페루치오는 페라리 같은 슈퍼카를 제조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즉시 이 사업에 뛰어들지는 못했다. 페라리의 적토마처럼 높은 출력의 엔진과 가벼운 차체 등을 만들 엔지니어나 부지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한양에서 김 씨 찾기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페루치오가 소유했던 페라리 중 하나인 250 GT SWB

출처Ferrari

1960년대 전후로 페라리 역시 경주차를 도로용으로 디튠해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경영의 한계에 다다르던 시기였던 셈이다. 페라리는 사업의 방향을 돌려 ‘도로를 편안하게 달릴 고성능 자동차 또는 4인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4인승 모델’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차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슈퍼카를 처음부터 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개발 비용이 드는 만큼, 포드 같은 거대 자본의 회사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페라리의 첫 4인승 모델인 250 GT/E

출처Wikimedia Commons

페루치오 또한 이런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엔초와의 대화 전부터 슈퍼카 제조 사업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기존의 사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과 고성능 슈퍼카의 성능을 가진 GT 카를 원하는 고객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람보르기니의 첫 V12 엔진과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출처Luxatic

1963년에 페루치오는 산타가타 볼로네제(Sant'Agata Bolognese)에 공장과 회사를 세웠다. 회사명은 엔초 페라리처럼 자신의 이름을 넣어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 S.p.A.)라 지었다. 회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엠블럼은 자신의 별자리인 황소로 결정했다. 동시에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기조를 이렇게 삼았다. ‘무조건 페라리보다 빨라야 한다.’ 

이런 페루치오의 염원을 담아 제작된 시제품의 섀시는 잔 파울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가 설계했다. 엔진은 페라리 250 GT보다 더 강력한 힘와 속도를 위해 조토 비차리니(Giotto Bizzarrini)라는 페라리 출신 엔진 설계자가 담당했다. 이렇게 설계한 엔진은 4개의 오버헤드 캠축을 단 V12 3.5L 구조로 360마력 정도의 출력을 냈다.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2010년 양산된 무르시엘라고 LP 670-4의 심장으로 쓰일 만큼 충분한 내구성과 기술을 담고 있어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엔진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엔진을 개발할 당시 조아키노 콜롬보가 설계한 페라리 V12 엔진보다 출력이 높게 측정될 때마다 보너스를 지급했다고 한다. 

350 GTV를 소개하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운데)

출처Wikipedia

이렇게 만들어진 새롭고 경이로운 성능을 가진 엔진은 1963년 10월 29일로 예정된 프레스 데이까지 시제품에 얹을 수 없었다고 한다. 크기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강력한 12기통 엔진은 차체 옆에다 놓고, 텅 빈 엔진 룸에는 벽돌을 얹음으로써 중량감을 더해 전시를 강행했다. 몇몇 기자들은 브레이크 페달, 와이퍼 등도 설치하지 않은 미완성 상태의 모델을 두고 쇼 카라며 비판적 기사를 썼지만, 페루치오는 ‘이것이야 진정한 시제품’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전해진다.a

며칠 후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무대에 커다란 거울을 달아 모델을 양면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시제품이 바로 훗날 람보르기니의 첫 차로 기록된 350 GTV였다.

람보르기니의 첫 차, 350 GTV

출처Lamborghini

350 GTV을 기본으로 제작된 자동차들은 전설이 되었다. 양산형 모델이 아니었을 뿐, 프로토타입에 기업의 방향성을 충분히 담은 모델이었다.

이 모델을 바탕으로 파이프 용접 프레임과 독립 서스펜션 그리고 출력을 낮춘 280마력 엔진을 얹은 350 GT와 미래지향적 스타일과 혁신적인 프레임으로 설계된 미우라 등이 나올 수 있었다는 큰 의미가 있다. 즉 350 GTV는 새로운 슈퍼카 제조사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한 전설의 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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