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중의 야생마, 머스탱 마하1

조회수 2020. 8. 24.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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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때 배우 신성일이 탔던 차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일간지보다 SNS 채널을 피드로 구독하며 뉴스를 얻고 있다. 또한 와이파이가 없는 만화카페나 커피숍 등에는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인터넷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누구든지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보고 채팅을 하며 이메일을 체크하는 시대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소확행, 소피커 등의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 사람들은 ‘소신’에 무게를 두고, 영상 콘텐츠 앱을 통해 지식을 얻고, SNS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기존 세대의 학연, 지연 중심으로 만들어진 향우회, 동창회 등과는 또 다르다. 쉽게 가입할 수 있지만 맘에 들지 않으면 그만큼 쉽게 탈퇴할 수도 있다. 소신 있게 말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요즘 사람들을 보며 떠올린 영화 ‘존’의 야생마, 머스탱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명차는 팬과 함께 만들어진다


2018년 1월 14일,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 언론 공개일이었다. 이날 포드는 2020년에 회사 최초의 전기 SUV를 출시할 것을 공표했다. 이 뉴스와 함께 그 모델의 이름은 ‘마하1(Mach 1)’이라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머스탱 팬들은 당황했다. 그 이유는 1969년형 머스탱의 퍼포먼스 패키지를 적용한 마하(Mach)라는 모델이 그만큼 특별하고, 팬들에게는 디트로이트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머스탱 팬들에게 '마하1'이란 이름은 매우 각별하다


전기차에 ‘마하’란 이름을 붙인다는 소식에 전 세계 머스탱 팬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을 통해 사용하지 말아 주기를 부탁했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포드는 2019년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마하1’의 명칭 사용을 철회했다. 예전에는 차명 변경에 대한 메이커들 사이의 소송이 빈번했었다. 대표적으로 1964년 9월 포르쉐가 911의 첫 이름을 901로 지은 것에 푸조가 세 자리 숫자로 된 차명 가운데 0이 들어간 권리를 주장, 포르쉐가 901을 사용하지 못하고 911로 결정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이렇게 여론에 의해 차명 사용을 취소한 적은 거의 없었다.

마하1은 강렬한 미장센

1969년에 데뷔한 머스탱 패스트백의 고성능 버, 마하1


1969년 포드는 두 번째로 등장한 머스탱 패스트백의 고성능 모델에 ‘마하1’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를 시작했다. 그 당시 미국 젊은 고객의 마음을 끌기 위해 디자인한 이 모델은 할리우드 배우 및 영화감독들의 눈에 들어 여러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971년 007 시리즈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식스티 세컨즈’의 1974년 원작, 2006년 ‘분노의 질주 - 도쿄 드리프트’, 2007년 ‘연을 쫓는 아이’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히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윅’에서는 2014년 1편 이후 올해 개봉한 3편까지 계속 출연하고 있다. 비단 서양에서뿐만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배우 고 신성일 씨가 구매한 빨간색 마하1이 경부고속도로에서 대통령 행렬보다 빨리 달렸던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마하1이 존재했던 이유

1964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포드 머스탱


포드 머스탱은 1964년 뉴욕 퀸즈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최초로 선보였다. 머스탱은 놀랍게도 2만2,000대가 사전 예약되었고, 미국 텔레비전 방송과 라디오의 계속되는 광고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괜찮은 성능 덕분에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 포드의 경쟁사인 닷지, 크라이슬러, 쉐보레 중 1967년 쉘비(쉐보레)의 카마로가 출시되면서 머스탱의 인기를 제지했다. 포드는 경쟁사의 고성능 모델, 쉘비 카마로와 폰티액 파이어버드 등의 저지를 뚫고 나아가기 위해 1969년 머스탱의 고성능 업그레이드 버전인 마하1을 출시했다. 이렇게 태어난 마하1은 당대는 물론 훗날까지 자동차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차 되었다.

머스탱의 고성능 스페셜 모델

머스탱 마하1은 일반 모델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1969년에서 1978년까지 10년간 생산된 머스탱 마하1은 머스탱의 고성능 패키지 모델로, 다른 일반 패스트백 머스탱과 구분할 수 있는 외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보닛에 검은 줄과 쉐이크 스쿠프, 크롬 배기팁 등으로 일반형과 구분된다. 또한 날렵한 보디라인과 후드 아래에 10대 엔진이라 불리는 351 윈저 엔진이 기본 탑재되었고, 추가로 5가지의 엔진 옵션을 제공했다. 또한 마하1은 맞춤 제작이 가능했다. 16가지 보디 색상, 3가지 인테리어 색상 및 5가지의 변속기 등으로 팬들에게 자신만의 머스탱 마하1을 만들 기회를 제공했다. 이로써 1969년 머스탱의 6가지 버전 중 하나였던 마하1은 엄청난 인기와 판매량을 보이며 머스탱 최고의 모델로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차체가 좀 더 커진 2세대 마하1


1970년 초 최초로 페이스리프트된 2세대 마하1이 등장했다. 전작보다 길이와 휠베이스가 길어졌다. 1974년 3세대 마하1은 석유파동 등으로 연비까지 생각해야 하는 차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저출력 모델이었지만 우수한 핸들링으로 판매량은 전작보다 높았다. 1975년에는 윈저 V8 엔진을 얹은 마하1이 출시되어 성능과 날카로운 핸들링을 지닌 모델로 찬사를 받았다.

레트로 마케팅의 일환으로 4세대 마하1이 잠깐 부활했지만 곧 단종됐다


하지만 이런 마하1의 인기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 코브라가 다시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떨어졌다. 전 세계 석유파동과 배출가스 규제 그리고 경쟁 모델의 판매량 급증으로 인해 탄생 후 10년간 이어졌던 마하1의 생산은 결국 중단되었다. 2003년 레트로 마케팅의 일환으로 4세대 마하1이 잠깐 부활했지만, 이듬해 모델을 마지막으로 마하1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교향곡보다 아름다운 엔진 사운드


1960년 초 ‘위를 보고 걷자’라는 영화를 촬영하며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영화배우 신성일은 여러 자동차로 스피드를 즐겼다. 1968년 스티브 맥퀸 주연의 영화 ‘불릿’에서 빨간 머스탱을 모는 주인공의 모습에 반한 그는 어렵게 1969년형 머스탱 마하1을 구입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 머스탱은 구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가격도 집 세 채 정도의 고가였다.

초대 마하1(사진)은 배우 신성일이 타기도 했다


배우 신성일은 이 차를 무척 사랑했고 스피드도 즐겼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부산에서 출발한 대통령 일행보다 서울에서 출발한 신성일의 머스탱 마하1이 먼저 추풍령을 넘어 대통령 일행과 맞닥뜨렸던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 이제 막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를 시속 200km의 속도로 달렸던 그를 서슬 퍼랬던 당시의 대통령도 괘씸죄로 처벌하지 못했다.

수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의 로망 중 하나인 마하1


오래된 마하1의 엔진 소리는 비발디나 베토벤의 교향곡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머스탱 마하1은 수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그들의 로망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차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마하1의 전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글 윤영준(라라클래식 공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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