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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온 랜드로버의 한국 귀화 이야기

조회수 2020. 1. 3. 16: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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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30여 년간 달린 랜드로버
이젠 한국 땅에서 복원되어 제2의 삶 시작하다

아프리카의 동부 내륙에 자리한 우간다(Uganda). 적도 상에 있지만 전 국토의 4분의 1이 호수일 만큼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아프리카의 진주’로 통한다. 수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자연 환경 덕에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 및 수출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를 겪은 많은 아프리카의 국가처럼 우간다 역시 영국 식민 지배를 겪은 후 지난 1962년 독립했다. 어렵게 독립을 이뤘지만 계속되는 정치 불안과 내전으로 여전히 빈곤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식민 지배를 겪은 탓에 유럽에서 건너온 다양한 올드카들이 지금도 현역으로 달리고 있다. 영국 지배를 겪은 우간다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식민 지배층 사람들이 탔던 최신 유럽차들은 어느덧 나이가 먹은 올드카가 되었고, 이 차들을 현지인들은 타며 그들만의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국에서 생산되어 우간다에서 30여 년간 달렸던 클래식 랜드로버가 최근 한국 땅을 밟아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람은 인제스피디움 클래식카박물관 김주용 관장. 온라인에서 지현아빠로 통하는 클래식카 마니아다. 그는 유럽이나 일본에서 상태가 좋은 차를 가져오는 대신 실제 아프리카의 험로에서 30여 년간 달린 랜드로버를 선택했다. 차를 복원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열정이 들어가겠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거친 땅을 달린 랜드로버야말로 제대로 된 의미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믿음에서다.

윈스턴 처칠과 군용 랜드로버 시제차


지금의 랜드로버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통하지만 태생은 지프와 마찬가지로 군용이었다. 초창기에는 농업용과 산업용 등으로 널리 쓰이면서 험로를 달릴 수 있는 실용적인 차를 주로 만들었다. 그러다 1970년 레인지로버를 내놓으면서 프리미엄 SUV 영역을 개척했고, 이후 디스커버리와 프리랜더/디펜더를 포함하는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벨라/이보크 등을 포함하는 레인지로버로 발전했다. 

랜드로버 시리즈1(1948~1967년)


랜드로버의 첫 양산모델은 시리즈1(1948~1967년)으로, 이 차는 거의 비슷한 스타일링으로 시리즈2(1958~1961년)와 시리즈2A(1961~1971년), 그리고 시리즈3(1971~1985년)로 발전했다. 우리가 아는 터프한 디자인의 디펜더(1983~2016년)는 시리즈1~3의 디자인을 계승한 현대적인 모델로, 사실상 클래식 랜드로버는 시리즈1~3을 얘기한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활약 중인 랜드로버


시리즈 랜드로버의 활동무대는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오지였다. 미국의 지프와 비견되는 유럽산 4×4(사륜구동) SUV로 통하며 특히 아프리카에서 맹활약했다. 스크린을 통해 초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사륜구동 SUV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랜드로버일 만큼 검은 대륙에서의 활약은 대단했다. 


김주용 관장이 지인을 통해 우간다에서 구한 차는 1984년식 시리즈3다. 1971년 시리즈2A의 후속으로 나와 1985년까지 약 44만 대가 생산된 클래식 랜드로버의 대표 모델 중 하나다. 전쟁의 화마를 딛고 민수용 자동차로 각광받은 시리즈1 이후 시리즈3까지의 랜드로버는 단순한 구조와 강력한 험로 주파 능력으로 전 세계의 오지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리즈 3의 길이×너비×높이는 숏 휠베이스 모델 기준으로 3,617×1,676×1,968㎜, 휠베이스는 2,235㎜다. 엔진은 직렬 4기통 2.25L를 시작으로 직렬 6기통 2.6L 휘발유, V8 3.5L, 직렬 4기통 2.25L 디젤 등 다양한 엔진을 얹었다. 국내에 들어온 차는 최고출력 73마력의 직렬 4기통 2.25L 가솔린 엔진에 4단 수동변속기를 물려 네바퀴를 굴린다.


우간다에서 처음 이 차를 만났을 땐 흙먼지가 가득 묻고 원형이 아닌 다른 부품을 잔뜩 사용한 상태였지만 기본적인 차대와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우선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해 기본적인 수리를 진행했다. 정비 환경은 국내보다 열악하지만 오랫동안 랜드로버가 달렸던 곳인 만큼 수리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지 기술자들은 시리즈3의 차대만 남긴 채 보닛과 지붕, 양쪽 문 등의 부품을 교체하고 변속기(기어박스)도 오버홀했다. 우간다에서 구하기 어려운 부품은 인접국인 케냐에 요청해 수급해왔다. 우간다의 험로에서 30여 년을 달린 탓에 현지의 랜드로버 전문가와 정비공들의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했다.


우선 기존에 장착되어 있던 다른 모델용 지붕을 걷어내고 시리즈 랜드로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트로피컬 루프(Tropical Roof)’라 부르는 이중 지붕을 구해 달았다. 트로피컬 루프는 ‘열대 지붕’이란 뜻인데, 실제로 바람이 지나가는 이중 구조의 지붕이다. 일반적인 지붕 위에 간격을 두고 철판 하나를 더 붙인 구조로 생각하면 쉽다. 


랜드로버가 이중 지붕을 만든 이유는 기후 때문이다. 열대 지방이나 아프리카 같이 온도가 높은 곳에서는 자동차 지붕도 쉽게 뜨거워진다. 지붕을 이중으로 만들면 실내와 맞닿는 안쪽 지붕을 강렬한 태양열로부터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주행풍이 지나가면서 식혀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동 등의 지역에서 트로피컬 루프의 수요가 높았던 이유다. 

우간다 현지에서 1차 수리잡업을 마쳤다
아프리카에서 선적을 준비 중인 랜드로버 시리즈3


현지 작업을 마친 뒤 아프리카를 떠나는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우선 국외로 나가는 선적처리부터 난관이었다. 우간다는 최근 자동차 전산망을 도입했는데 현지에서도 꽤 올드카였던 시리즈3는 수기자료만 있을 뿐 현지 전산망에 그 어떤 자료도 올라있지 않았다. 김 관장의 지인이 자료를 가지고 동분서주한 덕분에 우여곡절 끝에 차를 선적할 수 있었고, 약 한 달 반간의 항해를 거쳐 ‘아프리카 랜드로버’는 인천항을 통해 한국 땅을 무사히 밟았다.

인천항에 내렸을 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도 복원작업이다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랜드로버는 오랜 항해의 여파로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복원작업.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자리한 AGE 모터스에서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기본적인 판금 및 재도색 등 1차 복원작업을 완료한 상태로, 정밀한 2차 복원을 앞두고 있다.


1차 복원작업을 끝낸 랜드로버는 한국 땅에서 벌써부터 의미 있는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랜드로버 코리아는 랜드로버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7월 7일 부산(벡스코)를 시작으로 8월 19일까지 전국 12개 지역을 순회하며 랜드로버 전 모델을 경험할 수 있는 ‘어보브 앤 비욘드 투어(Above & Beyond Tour)’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특별 전시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손자뻘의 까마득한 신형 모델들 사이에서도 시리즈3 랜드로버는 뚜렷한 존재감을 뽐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유럽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30여 년간 활동한 클래식 랜드로버. 오래된 디자인과 투박한 메커니즘,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올드카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이 차가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이야기와 어떤 흔적을 만들어 나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 오토티비 편집팀

사진 김주용 (인제스피디움 클래식카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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