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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를 삶으며

조회수 2018. 11. 26. 16: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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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 , 겨울의 시작



올해 농사도 무사히 갈무리하였다. 농사는 갈무리가 반이라는 말이 있다. 11월은 농부에게는 더운 여름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때이다. 출간 전 여러모로 분주한 날들이지만, 짬을 내어 밭으로 갔다. 요 며칠 추워진 날씨 때문에 혹여나 작물들이 꽁꽁 얼지나 않을까 걱정 반, 궁금반이었다.


올해로 2년째 초보 농부 생활이다. 작년에는 욕심을 부려 배추와 무로 김치를 담갔다가 홀랑 망하고. 올해는 시래기나 해 먹자는 마음으로 건드렸건만 역시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다. 전문 농업민이 아니라 텃밭을 가꾸는 입장에서 무언가 결과물만 따진다면 농사는 시간과 에너지 대비 본전도 못 건지는 사업이다.


모종값, 주차비, 그리고 오고 가던 내 시간들..



이집저집 배추와 무를 실어 나르고 내 몫만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작업이 시작이다. 노동요를 부르며 단순 작업을 하는 이 시간을 나는 참 좋아한다. 단순한 동작의 반복은 번잡한 마음을 정화시켜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나는 시래기를 만드는 무한 노동의 농사 갈무리에 진입했다.


시래기는 무엇인가?

예전에 우리 동네에 어떤 부자 할머니가 계셨는데 시래기로 돈 벌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가락시장에서 무청이나 배춧잎 남은 거 주워다가 팔아서 돈을 버셨는데 그걸로 가락시영을 몇 채씩 사셨다 한다. 지금 가락시영은 헬리오 시티로 재건축되어 12월부터 입주 예정이니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사람들이 무만 사가고 무청을 잘라 버리고 오던데, 그걸 잘 이용하긴 결과가 어마어마하다. 티끌모아 태산처럼 시래기 모아 아파트다. 검소함의 상징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시래기의 매력은?

시래기로 삶아서 냉동실에 주먹만 하게 소분해서 넣어두면 겨울 내 국이나 무침으로 만들어 먹기 좋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소화도 잘되고 무엇보다 돈이 안 들어서 굿이다.



시래기를 만들려면?


1. 일단, 햇빛이 아닌 그늘에 말린다. 이파리가 바사삭 부서질 때까지 충분히 널어둔다.

2. 다 말린 시래기는 물에 담가 하루 정도 불린다.

3. 1시간 정도 푹 삶아서 부드럽게 만든 후 찬 물에 반나절 이상 담가 둔다.

4. 시래기는 껍질을 벗겨줘야 질기지 않기 때문에 살살 비벼 껍질을 벗긴다.

5. 물기를 꼭 짜고 된장과 다진 마늘에 버무려 주먹만 한 크기로 뭉친다.

6. 한 뭉치씩 개별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시래기를 만드는 과정은 지루할 정도로 오랜 기다림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온 집안이 시래기 삶은 냄새가 나 춥더라도 환기를 계속 시켜줘야 함이 번거롭다. 그래도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끝내 놓으니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 인생 별 거 없다. 부지런히 일하고 따뜻하게 밥 먹으면 그만이다.




무와 배추에게.

아무것도 해준 거 없는데,

새벽 찬 이슬 맞고, 낮의 햇빛을 받으며 하루하루 잘 자라준 고마운 무와 배추야.

그리고 무채 나물로, 뭇국으로, 조림 무로, 배추 속 쌈으로, 시래깃국으로 올 겨울 내내 우리 가족 반찬이 되어줘서 고맙다. 힘든 겨울도 그렇게 잘 보내고 내년에 새로운 땅에서 다시 만나자.


이 글은 직장생활연구소 연구원 골드래빗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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