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읽기를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만

조회수 2018. 10. 20. 15:3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우리는 모두 다독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독서 논술 학원을 다닌 세대라 그런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고 글로 써야만 마무리될 것 같은 복잡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동양의 60진법 → 아랍의 10진법 → 디지털 문명 2진법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이 60 갑자를 쓰던 동양의 셈법보다는 아랍의 10진법이 살아남았고, 현대에 와서는 0과 1만 사용하는 디지털 문명이 세상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해야 한다는 의미다.


복잡한 것은 약하고(weak) 단순한 것이 강하다면(strong),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단순화된 방법론은 무엇일까? 가장 단순화된 수의 체계가 이진법이라면, 삶의 이진법은 무엇일까? <출처: '삶의 정도' 윤석철>


독서도 마찬가지다. 무얼 더 읽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책이 나에게 맞나를 고민해보자. 불필요한 것들은 모조리 걷어내고 핵심만 남길 정도로.

책을 많이 읽으면 물론 좋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기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생각에 터치를 주고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내용은 그렇게 쉽게 만나 지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 읽지 말라는 건 아니다. 널리 알려졌으나 건질 게 하나도 없는 책도 많다. 서가에 서서 목차를 쭉 보면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1. 진부한 책 제목
2. 스펙만 있는 특별할 거 없는 저자 소개
3. 기/승/전/결 없는 목차 구성
4. 모호한 문장과 자신 없이 흘러내리는 어투
5. 대화체가 한페이지를 넘어가는 책(소설제외)
6. 지나치게 많은 표, 리스트, 그림

대체로 이런 책은 걸러내고 인생의 책은 다음과 같이 찾아보자.

1. 두말할 필요 없는 고전류(특히 완역본)
2. 저자 소개가 유니크한 책
3. 저자의 어투가 겸손하면서도 힘이 있는 책
4. 내용이 빈틈없이 꽉 찬 책
5. 목차의 내용이 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책
6.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느껴지는 책

이렇게 인생의 책을 고른 후 어떻게 하면 될까?


책은 저자와 나만의 조용한 대화이다. 바쁜 일상 속에 지하철 안에서나 회사 점심시간에 10분 틈을 타서 읽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 안에서 저자를 만난다.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을까, 내게 전해주려는 핵심 내용은 뭘까 살펴간다. 그렇게 한 문장씩 글을 읽다 보면 텍스트들은 내 머릿속에서 구조화되어 저장된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울림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책은 한 페이지 읽어 내려가는 것도 조심스럽고, 놓치고 지나갈까 봐 여러 번 읽게 된다. 한 권을 한 달 내내 읽을 수도 있고, 가까운 곳에 뒀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을 수도 있다.


지난여름 텃밭에다가 배추 모종을 심었다. 뜨거운 가을볕과 새벽 찬이슬을 맞으며 배추는 날로 쑥쑥 자라났다. 한 달이 지나고 밭을 갔더니 가장자리 배추들은 큼지막하게 잘 컸는데 가운데 심었던 배추 몇 포기가 영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다른 밭의 배추들은 전부 큼지막하게 컸는데 왜 이럴까? 배추도 농부를 가리나? 그때 무릎을 딱 치며 배추 간격을 확인했다. 다른 밭은 배추가 띄엄띄엄 심겨있었는데 우리 밭 배추는 비좁게 영역을 다투듯 자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중간에 끼여 늦자란 배추들은 그나마 햇빛을 쬐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중간중간 배추를 속아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은 배추들이 여유롭게 자라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빈 공간을 남겨둬야 책의 의미도, 진리도 머무를 수 있다.


유행이 휩쓸려 제목만 보고 덥석 잡지 말고 정말 내게 필요한 책인지 값어치를 하는 책인지 고려해보자.



다독을 자랑하지 마라.

아이가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걱정하지마라.

필요한 문장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1년에 책 한 권만 읽어도 괜찮으니.


직장생활연구소 연구원 골드래빗님의 글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