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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퇴사 후 1년의 기록

조회수 2018. 1. 2. 12: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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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던 2013년의 어느 여름날,

늘 그렇듯이 퇴근길의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 아, 오늘 또 늦으면 안 되는데... 아이 봐주시는 이모님께 죄송해서 어쩌나."

매일 십 분씩, 이십 분씩 퇴근이 늦어지고 있어서 가뜩이나 죄송한 마음인데 비까지 오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윤건의 목소리

"Back to you, Back to you. 이 순간 너에게 running back to you~"



호소성 짙은 그의 목소리와 가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도 너에게 가고 있지. 달려가고 있지. 이 순간. 너무 아이가 보고 싶었고, 나도 힘이 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매일 이러고 살까.


아침에는 눈도 못 뜨는 아이를 제발 옷 좀 입자, 제발 밥 좀 빨리 먹자... 달래서 차가운 학교 돌봄 교실에 밀어 넣고 출근해도 회사는 지각. 저녁에는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눈치 보느라 의자에 엉덩이 반을 걸친 채 노트북을 끄고, 일하고 있는 후배들 방해받지 않게 조용히 뒷걸음질 쳐 사무실을 나와도 이모님과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


좀 더 넓은 평수로 옮기기로 했는데, 아이 학원비는, 학비는 어쩌지, 내 노후는?

그만 두기 힘든 인생의 어려 대목들이 내 발목을 여전히 잡고 있었다. 목표 금액을 이루려면 더 벌어야 하는데...


그렇게 4년이 지나가고 나는 16년 겨울 나 스스로가 정한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직장인이 퇴사를 하려면(은퇴를 하든, 창업을 준비하든)는 어느 수준 이상의 자산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놀이동산에 가서 이동할 때 리프트를 타면 얼마나 재밌고 편한가? 하지만 안전을 위해 발아래로 그물망이 쳐져있다. 그 그물망이 우리 가족의 일상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경제적 자산을 의미한다. 가족의 안정된 삶을 외면하면서 회사를 나온다는 건 어른답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동료와 선후배들께 안녕을 했다.


출처: < 출처: '16년 12월 예술의 전당 '위대한 낙서전'에서>





#1. 브런치에 직장인 경제 공부에 대한 글을 쓰다.



회사를 떠날 때 남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함께 고민하고 위로했던 수많은 날들을 뒤로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론 나의 계획이나 경제공부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했다거나 권유한 적이 없었다. 나 스스로도 자신이 그리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얌체같이 혼자서 잘살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좋은 금융상품이 나오면 소개해주기도 했고, 부동산에 대한 조언도 내 주관대로 해주기도 했었다. 억지로 권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만 흘리고 끝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경제 공부 얘기는 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실하게 물어보시는 분들께는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고 있다.

내가 돈과 경제공부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함께 잘 살고 싶은 거. 나이 들어서도 같이 여행 다니고 좋은 거 먹으러 다니고 싶어서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다가는 내가 어떻게 되고 만다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 이야기를 어디다 풀까 고민하다 찾은 것이 고마운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은 어색하지만, 내 소소한 글들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가끔 따끔한 조언도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참 좋다. 조금씩 인터뷰 요청과 출간 계획을 묻는 분들이 계셔서 기쁘기도 하다.


이렇게 돈과 관련된 글을 쓴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한 기분도 있다. 그래도 내 글을 읽는 구독자가 2,000 명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분야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좀 더 좋은 글을 자주 써야겠다는 무게감도 느껴진다.




#2. 아이와 함께 하다.



아이는 드디어 학교 돌봄에서도 뺑뺑이 학원 스케줄에서도 탈출했다. 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얘기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 힘들어하는 일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나도 몰랐고 아이도 잘 몰랐던 일들이 많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이는 피아노를 싫어했다. 그 학원은 차량 선생님이 아이를 안전하게 학교에서 데리고 나와서 피아노 수업을 하고 다음 영어 학원으로 잘 라이딩 해준 게 다였다. 아이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던 중 수행평가인 리코더를 1등으로 pass를 하고 담임께 소리를 예쁘게 낸다는 칭찬을 들었다. 나는 슬며시 플루트는 리코더보다 음역대가 다양하다는 설명과 함께 유튜브로 다양한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었다. 살아가면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삶이 풍성해진다는 걸 알기에 아이도 그러길 바랬다. 결과는? 아이는 지금 플루트를 레슨 받고 있다. 적성에 잘 맞고 새로운 걸 도전한다는 게 기쁜가 보다. 게다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 앞에서 연주도 하고 앙코르도 받았다.

그리고도 우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 양평 문호리 마켓을 가고,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봤으며,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갈라쇼도 보고, 하루 종일 수영을 하고, 바다를 보고 산을 즐겼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경험- 스위치-결핍-근성 4단계로 정의될 할 수 있다. 나름 교육학을 전공하고(정교사 2급 자격증이 있다는 것이 자랑) 나의 어머니의 양육 방식을 접목해서 내가 만든 이론이다.


내 역할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삶과 자연이 있다는 것을 경험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3개의 단계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하고 싶다는 마음의 스위치를 켠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 지 부딪혀 보면서 결핍의 종류와 깊이를 깨닫는다. 마지막은 스스로 배우는 힘, 근성이다.


내 욕심으로 학원을 정하고 마구 다니게 하고, 이게 얼마짜리 학원인데 공부 안 할 거냐고 잔소리한다면? 아마 사춘기만 돼도 '내가 언제 보내달랬어?' 이런 소리 나올 게 뻔하고, 다 자라서는 '엄마는 노후 준비 안 하고 뭐했어?'라고 타박 듣기 딱 좋다.

항상 사랑한다 말해주고 의견을 경청해주고 있다.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도 그 집에서 귀한 걸 알고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럽다. 또한 어릴 때부터 자신이 생각한 걸 의견으로 말하고 그 논리가 적합하면 따라주는 게 부모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 아이가 자랐을 때는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한다'라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내 품에 있는 동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창의와 융합'을 연습시키고 싶다.





#3. 텃밭을 가꾸다.



퇴사와 동시에 운 좋게 주말 농장을 분양받았다. 밭에 가면 내 나이 또래는 아무도 없고 전부 은퇴하신 50대 이상 분들만 계셨다. 지나가는 인사로 농사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고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봄에는 쌈채소와 감자를 심어서 상차림이 풍성했다. 물을 주고 돌아서서 며칠 뒤 오면 정말 쌈채소들이 화가 난 것처럼 자라 있었다. 내가 이만큼 자랐는데 대단하지 않아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많은 쌈채소 덕분에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인심도 얻을 수 있었다.


여름에는 고구마를 심고, 밭 한 켠에다가 방울토마토를 5 모종 심었다. 얽히고설킨 토마토 나무(?) 덕분에 가지치기의 중요함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이것저것 다 가져가지 말고 튼튼한 몇 줄기만 남겼어야 잘 자란다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많은 재능이 있다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를 관찰하여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에 힘주어 육성시키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더운 8월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서 무와 배추를 심었고, 눈발이 날리던 12월 어느 날 수확의 기쁨을 가졌다. 말도 안 되게 김장도 해봤는데 역시 맛이 별로 없어서 망했다. 김치는 정말 고수의 영역 같다는 깊은 깨달음을 받았다.


농사를 짓는 계절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보잘것없이 작은 역할을 했을 뿐인데 이 귀한 채소들이 자라나는 것은 경이롭다. 내가 하는 것보다 늘 백배 만배 많이 돌아왔다. 땅의 힘, 바람, 비, 기온 모든 것이 누군가가 일부러 조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주는 만큼 이 아이들이 쑥쑥 자라 주는 게 고마웠다. 인간관계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배려와 성의를 보였는데 상대는 자신의 이익만 취하고 나를 공격할 때 말이다. 한 번 두 번 반복되면 더 이상은 좋은 관계가 되기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농사는 정직하다'. 그 말이 참 공감 가는 날들이 많았다. 내가 물을 주고 흙을 골라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더 예쁘게 잘 자랐기 때문이다. 피드백이 정확했다.








#4. 나를 알아가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동네 예쁜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전화로 오랜 친구와 통화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눈이 오면 아침 일찍 아무도 밟지 않은 공원을 찾아가 산책하기도 했다. 아이 학원가 있는 시간 동안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지하에 내려가 몰래 라면은 하나 사 먹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다. 또 주 3회 GX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것도 기쁜데' 운동을 해도 살이 안 빠진다며 역시 다이어트는 먹는 게 다야'라고 회원분들과 수다 떠는 것도 기쁜 일상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재봉틀을 꺼내 아이 인형 옷을 만들어 보았다. 녹슬지 않은 엄마의 솜씨에 아이는 놀랐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네가 책 잘 읽고 방 정리도 잘하면 또 만들어줄게' 말하기도 했다. 올해는 인형 옷을 몇 개 더 만들어볼 생각이다. 역시 평생 먹고살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열심히 배워두길 잘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있는 일은 직장생활연구소 칼럼에 직장인의 경제공부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것이다. <퇴근 후 2시간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내 생각과 비슷하기도 해서 글 쓰는 게 나름 바쁜 스케줄이 되고 있다. 



다들 내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1년 쉬면 답답할 거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위에 쓴 글과 같이 지루할 줄 알았던 일상이 나름 잘 돌아가고 있다. 심지어 내년에는 새롭게 도전할 몇 가지 일들이 있어 두근 거림도 멈출 수 없다.



2018년은,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가슴 두근 거릴 계획들 세우시길 바라고, 가정에 웃음만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직장생활연구소 ::KICKTHECOMPANY.COM

연구원 골드 래빗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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