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투자되는지 잘 모르는 퇴직연금, 부드러운 넛지가 필요해!!!

조회수 2019. 7. 8.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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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의 퇴직연금 DC 계좌 1년 수익률은 1.72%, 누적 연 환산 수익률은 2.14%입니다.” 

정 차장은 5년 전 과장으로 진급하면서 회사 정책에 따라 DB형 퇴직연금(확정급여형, 확정 금액을 금융사에 위탁)에서 DC형 퇴직연금(확정기여형, 개인이 계좌로 관리)으로 자동 전환되었다. 

그 당시 별다른 생각 없이 인사팀에서 건넨 서류에 사인했고, 분기별로 금융회사에서 운용현황에 대한 문자 메시지를 받아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올해 차장으로 승진하면서 월급도 꽤 올랐지만, 여전히 본인의 퇴직연금이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은퇴를 할 때까지 모른 채로 지낼 수도 있다.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이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본인의 적립금을 어떤 상품으로 운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사전에 노사가 합의한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이다. 

물론, 가입자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투자를 취소하거나 다른 상품으로 바꿔 탈 수 있다. 2006년 미국의 DC형 퇴직연금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연금 정책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디폴트 옵션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계를 20세기 후반으로 돌려보자. 당시 미국 정부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잠재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운 이슈 중 하나가 바로 국민들의 노후재원 마련이었다. 퇴직연금제도라는 대안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퇴직연금제도는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라는 한계가 존재했다. 

설사 기업에서 퇴직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해도 근로자들이 직접 가입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 국세청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기까지 근로자가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하는 기업에 입사했을 경우 자동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동 가입 제도(Auto-enrollment)를 점진적으로 실시했다.

자동 가입 제도가 시행됐지만, 미국 정부의 기대만큼 퇴직연금 가입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도 대부분 MMF와 같은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해 수익률은 연 1% 수준에 불과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좋은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당시 규정은 자동 가입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투자 상품에 대한 선택은 근로자 본인의 지시를 받게 되어 있었다. 

만약 근로자가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고용주가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는 있었지만, 이 경우 손실이 났을 때 근로자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자동 가입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고, 시행하더라도 최대한 보수적인 상품 위주로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즉시 대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좋은 선택을 유도하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제재보다는 부드러운 넛지(nudge)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근로자의 의사를 존중하되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의 기준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제도가 바로 디폴트 옵션이다.

자동 가입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디폴트 옵션을 함께 지정할 수 있다. 그리고 디폴트 옵션에 투자한 결과에 대해서는 설사 근로자의 지시가 없었다고 해도 면책조항을 통하여 기업주가 손실에 대한 법적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부여했다.

디폴트 옵션이 시행된 이후 퇴직연금제도 가입자는 크게 증가했고 가입자의 수익률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DC형 퇴직연금을 시행하는 기업의 98%는 자동 가입 제도와 디폴트 옵션을 함께 도입했고, 근로자의 93%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2017, 뱅가드 서베이). 

금융 상품 중에 가장 인기를 얻은 상품은 가입자의 은퇴 시기에 따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타겟데이트펀드였다.

2006년 이전까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타겟데이트펀드는 가입자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자산 비중을 조정해준다는 장점과 꾸준한 성과가 맞물려 제도 시행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2018년 말 기준 한화 약 1,36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해 미국 퇴직연금 펀드 시장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능동적인 선택을 존중한다. 만약 내가 우리 회사의 디폴트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서두에 언급한 정 차장 사례처럼 대다수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본인의 퇴직연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190조 원 중 90% 이상이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에 투자되고 있고 근로자의 운용지시 없이는 상품 변경조차 불가능하다. 

물론 원리금 상품에도 장점은 존재한다. 원금이 보존되고 꾸준한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안정성이다. 단기적으로 2008년이나 2018년과 같이 자산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졌을 때는 이러한 강점이 부각될 수 있다. 

만약 10년 전과 같은 높은 금리가 지금도 제공된다면 굳이 디폴트 옵션 도입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저성장 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과거와 같은 높은 이자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대로는 근로 기간 동안 은퇴 이후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대안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디폴트 옵션은 1등이 되기 위한 최고의 투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 선택권은 온전히 보장하되, 노후 자산 준비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이를 위해 별도의 시간을 쪼개기 어려운 평범한 직장인들이 장기적으로 다양한 자산 군의 평균적인 수익률 정도를 추구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과거에 좋은 상품을 추천하고 그것을 선택하게 했던 것과는 달리 우선 상품에 가입하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소하도록 접근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본질적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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