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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에서 포니 거쳐 세피아까지, 자동차 디자인은 냉정하다

시계열적으로 풀어 본 국산 자동차 디자인 변천사 (1)
k-plaza 작성일자2018.12.03. | 3,695  view

최초의 국산차 시발. 도심형 SUV로 디자인했다

자동차디자이너인 나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그 차의 디자인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물론 차를 구입할 때 디자인만 보는 건 아니다. 차체 크기부터 성능, 달리기능력 다양한 편의장비 및 안전장비, 그리고 가격도 생각해봐야 할 요소다.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그렇다면 다르게 생각해보자. 성능, 다양한 첨단장비, 그리고 가격까지 고만고만하다면 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렇다, 내가 말하려는 건 디자인이고, 이런 점이 최근 자동차시장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글로벌 메이저 브랜드들이 디자인을 최고의 경쟁도구로 삼고 있다.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디자인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다. 그리고 한국 자동차회사도 마찬가지다. 국내 자동차회사 역시 디자인 발전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디자인이 자동차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시발을 위한 벤치마킹이었던 미쓰비시 J3

한국인들의 자동차 구입은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다. 특히 디자인에 대해서는 냉정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자동차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자동차’라는 물건이 이 땅에 나오면서부터? 


한국에서 '디자인'을 갖춘 첫차는 1955년 '시발'이다. 당시는 전쟁으로 모든 산업기반이 폐허가 된 시기. 자동차라고는 미군 군용차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디자인까지 고려한 자동차를 만들었을까? 디자인을 생각했을까? 당연하다. 그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꿰뚫고 있었고, 6인승의 SUV(오늘날의 카테고리) 형태로 만들었다. 도로상황은 최악이었고, 가족구성원은 많았기 때문이다. 해머로 패널을 직접 두드려 모양을 냈다. 군용차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또 군용차와 구별이 되는 꽤나 괜찮은 스타일링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시장에 최초로 들어온 일본의 닛산 블루버드(1962년)

시발 디자이너들은 충분한 장비가 없음에도 디자인까지 고려한 차체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시발은 미쓰비시 J3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1950년대 초 미쓰비시는 지프 CJ3를 복원하고 있던 상태. 미쓰비시 J3를 벤치마킹했지만, 시발 디자이너들은 기본 레이아웃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스타일링을 시발에 담았다. 내 눈에 쏙 들어온 부분은 프런트 펜더다. 심플하면서도 기하학적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실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디자인이다. 그들은 터프해 보이면서도 스타일링까지 갖춘 도심형 SUV를 원했다. 만약 현재의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미국 스타일의 SUV라고 할까?


한국 최초의 자동차디자이너들은 세계적인 자동차디자인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뾰족해 보이는 그릴(미국 스타일)과 기아학적 그래픽 요소(현대적 디테일) 등을 접목시켰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디자인한 첫차부터 글로벌 트렌드를 맞추면서도 한국인만의 터치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시발과 그 자동차회사 ‘국제 모터 컴퍼니’는 ‘모델T와 포드’처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자동차디자인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겼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던 토요타 크라운. 당시 크라운은 전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시발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 유럽, 일본 등 전세계 자동차디자인이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디자인을 고르기만 하면 됐다. 몇몇 디자인은 큰 인기를 끌었고, 또 인기가 없어 그냥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적인 디자인은 없었다. 당시 한국시장에 등장한 디자인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일본의 등장이다. 한국회사는 CKD(complete knocked down) 방식으로 일본모델을 들여왔다. 지리적으로 가까웠고, 일본 자동차회사는 그들의 차를 세계 곳곳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1962년 닛산이 블루버드로 한국시장을 밟은 최초의 일본 자동차회사였다. 하지만 4인승 패밀리세단 블루버드는 한국시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차체가 작은 데다가 너무 지루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그 당시에도 크고 고급스러운 모델을 원했다.

현대 포니. 주지아로 작품이다. 포니와 함께 한국 자동차디자인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1966년 토요타 코로나가 상륙했다. 사이즈가 컸고 고급장비 덕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회사들이 원했던 디자인이었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디자인이다. 즉, 사이즈 크고 고급스러운 세단. 4인승 대형세단 크라운은 비쌌지만 한국에서 호평을 받는다. 크라운이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이유는, 크라운 자체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디자인이었기 때문. 사실, 1960년대 토요타 디자인은 미국 자동차의 축소판과 비슷했다. 토요타 생산모델 대부분이 쉐보레, 닷지, 포드 자동차와 많이 닮았었다.


미국 및 이탈리아, 독일, 영국, 그리고 호주 등 유럽 모델 역시 한국에 발을 디뎠다. 1968년 현대가 유럽 포드 코티나를 들여와 조립·판매했고, 1970년 피아트 124도 한국에 들어왔다. 쉐보레 1700, 1972년 레코드 1900도 한국시장을 찾았다. 한국은 글로벌 자동차디자인 테스트 무대였다.

최고의 디자인이었고, 누구나 한 대쯤 갖기를 꿈꾸었다

1975년 드디어 한국 최초의 모델 포니가 나온다. 내가 한국 최초의 오리지널 디자인 모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현대가 이탈리아 디자이너 손을 빌려 디자인을 했지만, 기술적으로는 현대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맞다. 성공을 거둔다. 한국 가족용차의 기준이 된 것. 그렇다면 포니가 한국적 스타일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디자인한 건 아니지만 한국을 위해 디자인한 모델이다. 세련미 넘친 현대적 디자인이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는 게 자동차디자인이다. 종종 미국 디자인, 영국 디자인, 독일 디자인 등을 이야기하지만, 디자인이 나라별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포니는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작품. 군더더기 없는 간단 명료한 디자인 테마와 함께 안정감 있는 비율, 몇몇 라인만으로 완성해내는 멋진 디테일 등 주지아로 디자인은 전세계 디자인 흐름의 핵심이었다.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포니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모든 요소를 갖추게 된 셈.

오펠 카데트. 한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대우 르망은 오펠 카데트를 베이스로 했다

그리고 현대는 주지아로 디자인을 무기로 한국 자동차시장을 지배한다. 포니2, 스텔라, 엑셀, 쏘나타 등이 주역들이다. 물론, 모두 주지아로 손길이 들어간 모델들이다. 이후 현대가 자체 디자인팀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후에도 상당 기간 주지아로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도움을 요청했다.


대우자동차 역시 유럽에서 차를 수입했는데 르망(오펠 카데트)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자동차디자인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흐름을 맞는다. 에어로다이내믹이 키워드였다. 부드럽게 둥글린 스타일이 유행한다. 헤드램프마저 동그랗게 바뀌었다. 르망으로 성공을 맛본 대우가 자동차디자인에 중점을 둔다. ‘이탈리아 디자인 하우스’에 모델 디자인을 맡기기 시작한 것.

베르토네에서 디자인한 대우 에스페로(1990년)

날카로운 노즈와 함께 그릴을 없앤 에스페로는 베르토네에서, 3홀 그릴을 처음 적용한 누비라는 이데아(I.DE.A) 디자인으로 나온 모델이다. 한편, 주지아로가 대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업체에 합류했는데, 이후 라노스, 마티즈, 레간자 및 매그너스와 라세티, 칼로스 등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리고, 피닌파리나가 레조를 디자인했다.


한편, 이탈리아 디자인업체에 디자인을 의뢰하면서도 스즈키 알토를 가지고 와 티코로, 혼다 레전드 베이스인 아카디아를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펠, 홀덴에서는 플랫폼(기본적으로 GM자동차)을 들여왔다. 이처럼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가졌던 대우. 얼마나 글로벌한 개념인가! 대우의 이탈리아 디자인 터치는 GM의 디트로이트 스타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렇다, 쉐보레 말이다.

파쓰다 파밀리아 1000. 기아 브리사다

자전거회사로 출발한 기아자동차. 모터사이클로 이어졌고, 다시 3륜, 그리고 4륜 자동차로 발전했다. 기아는 일본과 선이 닿았다. 1974년, 브리사는 마쓰다의 1천cc 4도어 세단 ‘파밀리아 323’ 버전. 저렴한 가족용차로 판매와 동시에 히트를 쳤다. 동그란 헤드라이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작지만 우아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이었다.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사이즈 큰 조랑말에 밀렸다. 포니를 넘지 못했던 것. 1970년대 중반 마쓰다 디자인은 이미 구식이었다. 그래서 그랜드 파밀리아(브리사Ⅱ K303)를 가져왔지만, 역시 주지아로 작품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아는 또 피아트 132와 푸조 604를 도입했는데, 현대 그라나다와 경쟁을 하고 싶어 했다. 당시 기아가 들여온 모델을 보면, 이후 기아의 미래 디자인 DNA(유럽 스타일의 스포티한 세단)를 예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30년이 걸렸지만. 

기아 세피아. 섀시부터 디자인까지, 한국 최초의 브랜드 자체 제작 모델

기아자동차는 자체 디자인에도 여러모로 신경을 썼다. 첫 번째 모델이 1992년 세피아였다. 세피아는 섀시부터 디자인까지 메이커에서 자체 개발한 국내 최초의 모델이었다. 마쓰다와의 오랜 관계에도 불구하고 세피아 디자인은 일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부드러운 차체 스타일, 거의 없앤 라인, 슬림한 헤드램프 및 랩 어라운드 형식의 테일램프는 유럽 스타일에 더 가까웠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자동차칼럼니스트 임범석(전 ACCD 자동차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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