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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 칭찬할 수밖에 없는 기아 개발팀의 영리함에 대하여

어쩌면 K3가 한국 엔트리카 패러다임을 바꿀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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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만, 내게 준중형 세단은 '딱 알맞은' 승용차다. 한국에서 가장으로 살아가는 한국 남자로서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개인의 성향도 반영됐을 터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당장의 생활상이나 형편에 비춰 '알맞은' 물건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준중형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이 급 승용차는 소형차와 중형차 사이에 놓인다. 그러니까 너무 작지도, 지나치게 크지도 않다는 얘기다. 가격대도 그렇다. 아무래도 부족한 소형차와 필요 이상으로 큰 듯한 중형 세단 사이에 놓이는 2000만원 언저리인데, 그 정도면 일반적인 한국 가정에서 6~7년쯤 거느릴 생각으로 지불하기에 부담이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브랜드나 제품을 막론하고 준중형 세단을 타볼 때면 어김없이 강한 구매 충동에 휩싸인다. 새로운 기아 K3도 예외가 아니다. 이 차는, 한마디로 모자람이 없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기능이나 개념은 없지만 K3 실내엔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 짐작한 거의 모든 편의가 담겨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기어박스 앞으로 깊이와 폭이 넉넉한 수납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는 1개의 12V 아웃렛, 1개의 AUX 단자와 USB 연결단자, 그리고 고속충전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USB 단자가 있다. 수납공간 위로는 패블릿 크기의 스마트폰까지 너끈히 둘 수 있는 또 다른 수납공간이 있다. 이는 무선충전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오른쪽 팔걸이 기능을 하는 콘솔박스 역시 깊고 폭이 넉넉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USB 단자(고속충전 지원)가 있다. 이 정도면 별도의 충전 단자나 전원 공급장치가 없는 뒷자리 승객의 불만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겠다. 시승차가 모든 옵션을 망라한 최상급 모델임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앞자리에 시트 열선과 통풍, 운전대 열선, 시트 위치 메모리(2개) 기능까지 있는 건 놀랍다. 시트 열선은 뒷자리에도 있다.

주행 속도가 시속 60km를 넘어서면 계기판 중앙 디스플레이 오른쪽 상단에 초록색 운전대 모양 아이콘이 나타난다. 차로 이탈방지 보조(Lane Keeping Assist, LKA) 기능이 활성화됐음을 알리는 거다. 당연히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연동하면 앞선 차와의 거리 및 차로를 유지하며 달리는 준 자율주행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해야겠다. 나는 지금 대중적인 준중형 세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신형 K3는 첨단 운전자 보조장치(Advanced Driver Assist System) 정도로 풀어 쓰는 ADAS가 어느새 보편화된 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샘플이다. 운전대 오른쪽 컨트롤 패널의 버튼을 눌러 사용자 설정 메뉴에 들어가면 '운전자 보조' 항목이 있다. 그 안에 있는 사용 가능한 ADAS 관련 기능 목록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차로 안전(이탈 경고, 이탈방지 보조, 이탈방지 능동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안전구간 자동감속(내비게이션 선택 시), 전방 충돌방지 보조, 전방 충돌경고, 후측방 충돌 경고, 후방 교차충돌 경고 등이 빼곡하다. 이 중 전방 충돌 경고와 전방 충돌방지 보조(차량 감지)는 1590만원부터 시작하는 기본형 트렌디 트림부터 기본 장비로 적용돼 있다. 한 등급 올려 럭셔리 트림(1810만원)을 고른 뒤 105만원을 추가하면 개선된 전방 충돌방지 보조(보행자 감지), 운전자 주의 경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후측방 충돌 경고 및 후방 교차충돌 경고 기능을 보탤 수 있다.

유럽 프리미엄 모델에 차로 유지나 운전자 주의 경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같은 기능이 있는 걸 보고 부러워한 게 불과 3~4년 전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기능들을 2000만원 언저리 가격의 국산 준중형 세단에서 누릴 수 있다. 비용을 조금 더 치르면 하이빔 보조 기능이 더해진 풀 LED 헤드램프(스타일2 패키지: 90만원, 노블레스 트림: 2220만원)도 품을 수 있다. 다시 얘기할까? 이건 한국산 준중형 세단에 관한 이야기라고?

기능 또는 사양의 우위만 있는 건 아니다. 인테리어 레이아웃과 조립품질은 여전히 톱 클래스다. 계기판과 플로팅 디스플레이를 동일선상에 두고 그 밑에 공조장치, 가장 아래에는 수납공간과 외부기기 확장 기능을 둔 대시보드 레이아웃은, '멋짐폭발' 같은 표현과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지극히 실용적이고 실리적이라 가치가 높다. 공조장치 다이얼과 스위치 버튼, 대시보드 좌우 송풍구의 조작감은 고급차의 그것에 가깝다. 적절한 무게감과 분명한 단계가 있다.

반면 중앙 디스플레이 아래 다이얼이나 버튼의 가벼운 조작감은 적당한 값의 가족용 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준이다. 어떤 이는 '또 꼼수를 부렸네'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까다롭게 굴 일은 아니다. 누구나 이 차가 대중적인 가족용 차라는 걸 알고 있다. 부품, 소재, 촉감 등 모든 것에 유럽 프리미엄 제품의 고급감을 담기에는 비용 한계가 뚜렷하다. 바꿔 말해 대중적인 준중형 세단이 취할 수 있는 '적당히' 영리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그렇다. 새로운 K3는 영리함이 있는 자동차다. 무턱대고 프리미엄입네 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평범함의 레벨을 뛰어넘는 고급감과 품질이 있다. 하지만 아껴야 할 부분에선 충분히 아끼고 있다. 램프 2개가 있는 뒷자리 조명을 좌우 따로 켤 수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신형 K3 또는 K3 개발팀의 영리함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주행품질과 파워트레인이다. MDPS 방식 운전대는 더 이상 중심 잡지 못하거나 헐렁한 기색이 없다. 적당히 조여져 있고 적당한 무게가 있으며, 조향감도 뚜렷하고 정직하다. 스티어링 어시스트가 지나쳐서 차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석도 찾아보기 어렵다. 네 귀퉁이 바퀴는 노면을 힘차게 디딘다. 덕분에 차체는 가볍게 들썩이는 대신 탄탄하게 자세를 유지한다.

세부적으로는 스트럿 설계의 앞쪽의 경우 코너를 빠져나올 때 자세 복원이 빠르고, CTBA 구조의 뒤쪽은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여유롭게 흡수한다. 도로를 달리는 차체 어디서도 불편한 떨림이나 울림, 성가신 소음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차체 앞부분은 날카롭고 뒤쪽은 탄탄해 굽은 길에서 움직임이 경쾌한 가운데 든든하다. 경험은 이래서 중요하다. K5 GT 모델 설계의 경험, 스팅어 개발의 경험은 분명 기아 엔지니어링 팀에 스포티함과 안락함, 견고함과 유연함의 균형을 잡는 요령을 익히게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돋보이는 건 새로운 엔진과 변속기다. 스마트스트림이라 부르는 이 파워트레인이 내는 최고출력 123마력과 최대토크 15.7kg·m의 파워는 언뜻 평범해 보인다. 연료를 흡기 매니폴드에서 뿌리는 간접분사 방식 엔진이나 CVT 기어도 다운사이징 터보가 득세하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만난 현대차그룹 연구소의 파워트레인 담당 연구원은 최근의 연료 직분사 터보 엔진의 키워드는 다운사이징이 아니라 '라이트사이징'이라 설명한 바 있다. 엔진 크기를 줄이고 힘과 연료효율은 높이는 게 관건이 아니라 적절한 크기의 엔진으로 적절한 퍼포먼스를 내는 게 핵심이라는 설명이었다. 더불어 그는 현대차그룹이 2018년 출시를 목표로 새로운 라이트사이징 엔진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당시엔 열효율을 크게 개선한 새로운 직분사 터보 엔진을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가 말한 신형 라이트사이징 엔진은 새로운 K3에 올라간 바로 그 스마트스트림 파워트레인이었다.

이 파워트레인을 두고 '영리함'을 운운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환경성능이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은 연소효율 측면에서 재래식 간접분사 엔진보다 유리하다. 더 나은 출력과 연비를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엔진이 제 온도에 다다르기 전, 즉 냉간 시 불완전 연소가 이뤄질 확률이 높고 이로 인해 입자상물질(분진)과 질소산화물이 다량 발생할 수 있다. 연료 품질을 가린다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DPF로 알려진 매연저감장치 등의 후처리 장치 추가가 불가피하다. 당연히 엔진 생산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차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스마트스트림 엔진은 흡기 매니폴드에 달린 두 개의 간접연료분사 장치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엔진 부하가 적을 때는 연소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젝터를, 반대로 부하가 많을 때는 흡기 밸브와 가까운 인젝터를 적극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DPF 등의 값비싼 후처리 장치 없이 충분한 환경성능을 얻어내고 있다.

물론 직분사 엔진에 비해 출력은 다소 낮지만 역할을 분담해둔 두 개의 인젝터 덕분에 토크밴드가 넓어져 실 사용영역의 쓰임은 한층 나아졌다. 실제로도 신형 K3는 123마력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실제 주행 때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강하게 등을 떠미는 듯한 기세는 없지만 입체도로의 본선에 합류하거나 앞차를 추월하는 등 일상적인 상황에 부족함 없는 힘을 낸다. 고속도로 주행속도의 2배 가까운 속도까지 꾸준하게 가속하는 것을 보면 '제원표'에 담긴 숫자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기아차가 스마트스트림 IVT(Intelligent Variable Transmission)라 부르는 CVT는 평범한 스펙의 엔진에 특별함을 더해준다. 여느 무단변속기보다 직결감이 좋고 반응이 빠르며, 가속페달을 질끈 밟는 등 큰 힘이 집중될 때 헛도는 느낌도 거의 없다. CVT 주제에(?) 변속도 흉내 낸다. 흉내를 내는 게 분명한 데 그 감각은 마치 진짜 기어를 갖춘 변속기처럼 뚜렷하다. (가상의) 기어를 내리거나 올릴 때는 계기판 태코미터 바늘도 빠르게 솟구치거나 민첩하게 낚아챈다. 마치 DCT의 그것처럼 예리한 모습인데, 어떤 순간에도 힘을 움켜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적 없는 걸 보면 단순한 ‘연출’ 이상의 성능을 지녔다고 봐도 좋겠다.

스마트스트림 파워트레인의 '실속' 있는 성능은 연료효율 측면에서도 빛을 발한다. 시내에선 리터당 10km 남짓의 연비가 꾸준하고, 주행속도가 확보되면 이마저도 리터당 14~15km 정도로 빠르게 회복된다. 일반적인 승용차 파워트레인이 가장 좋은 효율을 내는 시속 60~80km 구간에선 리터당 20km 이상의 수치를 가볍게 보여준다. 승용차 엔진은 힘의 크기보다 그 힘을 영리하게 끄집어내 쓰는 변속기가 훨씬 중요하다. 스마트스트림 IVT가 바로 그렇다. 최근 만나본 어떤 변속기보다 인상적이다.

최근 소형 SUV의 인기에 밀리고 중형 세단이나 SUV의 기세에 주눅 든 분위기지만, 준중형 승용차는 여전히 한해 15만대 가까이 팔리며 꾸준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당연하게도 해치백보다는 세단이다. 소형차 시장이 쪼그라들고 경차 역시 주춤한 것을 보면 한국의 실질적인 엔트리카는 준중형 세단과 소형 SUV라고 해도 무방하다. 바꿔 말해 준중형 세단은 한국 실정에 더할 나위 없는 가족용 차다. 그리고 그만큼 기대치도 높다. 소비자가 많은 걸 기대한다는 얘기다.

새로운 K3의 경우 기본가격은 경차의 고급사양에 가깝다. 소비자가 조금만 욕심을 내면 중형 세단, 아니 고급 승용차에 뒤지지 않는 편의성과 운전 보조 기능도 누릴 수 있다. 안전성은 강화됐고(전방 충돌방지 보조, 어드밴스드 에어백 기본) 차량 성능(파워, 연료효율)은 실용영역에 모자람이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편익을 2000만원 언저리 예산 안에서 제공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차가 한국 엔트리카의 패러다임을 바꿀 지도 모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 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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