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대 박사가 직원 6명인 스타트업에 간 이유

조회수 2021. 4. 15.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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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 출신이 대기업 말고 스타트업에 간 이유는?

국내 첫 일임형 AI투자사 ‘핀트’ 김일희 실장

사람 거치지 않고 종목 결정 ‘아이작’ 개발

"금융은 편하고 빠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대세"



코스피 3000시대다. 주식 투자로 수억원을 벌었다는 ‘친구의 친구’가 넘쳐난다. 그런데도 유독 내가 보유한 종목은 시퍼렇다. ‘재야의 고수’ 추천을 받아 매입한 ‘OO코인’은 매입한 날부터 하락세다. 진짜 제대로 된 전문가가 옆에서 코칭을 해준다면 원이 없겠다.


그런데 최근 ‘램프의 투자요정’ 같은 서비스가 진짜로 등장했다. 전문가가 고객에게 투자를 추천해주거나, 직접 알아서 굴려준다. 다만 그 전문가가 사람이 아닌 ‘로보어드바이저’다. AI(인공지능)가 고객의 성향에 맞게 투자를 대신 해주는 것이다. 2019년 말 2000억원 규모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작년 말 1조2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이토록 고마운 서비스는 누가 만드나 궁금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자문형과 일임형으로 나뉜다. 자문형은 최종 결정은 고객이 하는 반면 일임형은 전 과정을 AI가 알아서 한다. 국내 유일의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핀트’(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에 시스템을 만든 담당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이 업체의 AI 자산배분 엔진 ‘아이작(ISAAC)’을 개발한 김일희(39) 포트폴리오개발실장은 수학자 출신 개발자였다.


-정말 알아서 돈을 굴려주는건가?


김일희 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 실장. /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

"그렇다. 은행·증권사의 VIP를 위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떠올리면 된다. 다만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현금자산이 최소 10억원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통상 일임보수 2%, 성과보수 20%를 받는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러한 PB서비스의 문턱을 낮췄다. 가입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이 자동화돼 있기에 수십만원도 굴릴 수 있는 것이다. 수익금의 9.5%를 수수료로 매긴다. 다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자동 추천을 하는것인가?

‘핀트’의 앱 화면. /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

“고객이 가입하면 우선 설문조사를 통해 투자 성향을 살핀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 어떤 형태의 투자를 선호하는지 말이다. 안전한 투자를 선호하신다면 그에 맞게 안정적 자산 위주로 편성을 해준다.


아이작은 고객의 성향을 고려해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지를 결정한다. 글로벌 시장 전체의 데이터를 토대로 이를 선정한다. 주식이라면 선진국·신흥국 증시 중 어디에 투자를 할 것인가, 채권·원자재의 비중은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 말이다. 자동 매매모듈을 통해 각 계좌는 실시간으로 자동 매도·매수를 한다. 고객 자산 보호를 위해 주기적으로 점검을 한다.


AI라고 하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수많은 판단의 종합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예컨대 알파고(Alpha Go)가 바둑은 잘 두지만 개와 고양이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작을 개발하는데 6년이 걸린 이유다.”


-무엇을 공부하면 이러한 AI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프 이론의 대가인 폴 시머(Seymour) 프린스턴대 교수와 연구실에서. /김일희 실장 제공

카이스트를 졸업한 후 2013년 프린스턴대에서 이산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합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간단한 예를 들겠다. 세계지도가 있다. 단 4가지 색이 있으면 국경을 접하는 나라 간 색을 구분하며 칠할 수 있다. 쉬워보이지만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와서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일일이 대입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수학이 너무 좋았다. 직관에서 벗어나 증명을 해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글로벌 금융사나 한국 대기업 대신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미국의 금융사는 수익창출 외에는 목적이 없어보였다. 내가 뛰어난 알고리즘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지 못한다면 1~2년 버티기도 어렵다. 2013년 한국의 한 대기업 보험사에 취업을 하게 됐다. 출근을 했더니 스무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경쟁사 홈페이지를 켜놓고는 연력·소득 등을 바꿔 입력하며 요율을 확인하고 있었다. 새로 바뀐 경쟁사 요율표를 파악하기 위해 ‘아날로그’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던 것이었다. 답답해서 이를 자동으로 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주변 동료들이 불편해하고 상사는 핀잔을 주더라. 큰 조직의 특성인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퇴직을 했다. 그때 즈음 알고 지내던 형들이 금융 스타트업을 만들었는데 오라고 하더라. 고민이 됐다. 안전할까. 2~3년 있다 망하는 것 아닐까. 투자자가 든든해도 규제가 많은 금융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이 ‘대세’라고 생각하고 옮겼다.”


-무엇이 대세라는 것인가?


“2013년을 회상해보라. ‘토스’도 ‘카카오뱅크’도 없었고, 있었어도 규제에 걸리던 때다. 그런 서비스 없이도 우린 잘 살았지만, 이젠 없으면 불편해서 못산다. 금융이 아무리 규제산업이라고 하지만 이용자 관점에서 보다 편리하고 빠르며 안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세적 흐름에서 새로운 시장을 이끌고 싶었다. 고객이 금융사에 찾아오지 않고 비대면으로 권한을 일임하는 지금의 핀트 시스템은 2019년에야 규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2015년부터 이미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엔진 아이작 개발에 나섰다.”


-앞으로의 목표는?

김일희 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 실장. /디셈버컴퍼니자산운용

“아프면 의사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금융 분야엔 의사가 없다. 우리가 금융 의사가 돼 드리고 싶다. 투자 분야를 넘어 종합 금융플랫폼으로 성장해 이용자들의 금융생활 전반을 살펴드리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콘텐츠를 알아서 추천해준다. 우리도 고객의 소득과 지출 등 금융생활 패턴을 모두 살펴 알맞게 조언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보고있다.”



글 jobsN 김충령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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