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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락 지문보고 침입하는 '그놈'.. 필름 한 장으로 막았다

조회수 2021. 7. 7. 15: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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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보고 여성 위한 '이것' 만들었죠

김용숙 블루아이디어 대표
도어락에 붙이는 안심필름 개발
경찰 요청으로 공공기관 납품도

피해자의 현관문을 열기 위해 도어락에 손을 대는 가해자.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른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술에 취한듯 비틀거리는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뒤따라 내린다. 남성은 피해자 집에 다가가 현관을 향해 손을 뻗지만, 가까스로 문이 먼저 닫힌다. 침입에 실패한 남성은 10분 넘게 복도에서 서성인다. 문고리를 쥐거나 비밀번호를 누르며 문 열기를 시도한다. 2019년 5월 많은 여성을 분노하게 만든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이야기다.

여성의류 사업을 하던 김용숙(60) 블루아이디어 대표도 뉴스에서 사건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옷가게를 찾은 고객들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불안해서 못 살겠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김 대표는 주변 여성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도어락을 열기 위해 휴대폰 플래시를 켜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고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문 추적 방지와 좌우 시야각 차단 기능이 들어간 도어락 안심 필름을 개발했다. 김 대표의 창업기를 들었다.

김용숙 대표. /블루아이디어 제공

◇여성복 사업하며 주변에서 아이디어 얻어

김 대표는 1981년 나이키 운동화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한 화승(옛 풍영화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시절 취업에 성공했지만, 결혼과 육아로 2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퇴사 이후에는 20년 동안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일에 대한 욕심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김 대표는 2002년 평소 관심이 있던 여성복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초라했다.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리어에 여성 속옷을 가득 넣고 방문판매를 했다. 병원이나 주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의 문을 두드렸다. 타고난 사업 기질 덕분에 조금씩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옷가게를 열었고, 패션잡화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장사 경험이 쌓이니까 고객과 몇마디 나눠보면 이 사람이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바로 알겠더라고요. 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안목도 생겼습니다.”

안심필름을 개발하기 위해 김 대표는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블루아이디어 제공

2020년 2월, 김 대표가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도 주변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가 출발점이었다. “여성복 사업을 하다 보니 주변에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뉴스나 가십거리도 공유하는데요. 2019년에는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화제였습니다.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 피해자 현관 도어락에 남은 지문을 살펴보는 범인의 모습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어요. 저뿐 아니라 주변 여성들도 난리였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 들어갈 때 안심시켜줄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시장 조사를 했다. 도어락에 붙이는 필름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 제품의 품질은 기대에 못 미쳤다. “지문을 안 보이게 만든다는 제품을 사용해봤지만 손가락에 남은 먼지, 기름기나 수분 때문에 번호를 알아낼 수 있겠더라고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비슷한 범죄 사례를 보면 옆에서 도어락을 누르는 모습을 관찰해 번호를 알아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문 흔적이 남지 않는 필름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죠.”

◇1인 가구 여성에 인기···경찰서에서 납품 요청도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지문 흔적이 완전히 남지 않는 코팅을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기나 기름기를 없애는 발수·유분 제거 코팅을 해도 자국을 100% 지우기는 불가능했다. “지문방지필름은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사포처럼 거칠어요. 표면이 평평하면 융선(지문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문 곡선)이 그대로 찍히거든요. 그런데 표면을 거칠게 가공해도 손가락의 기름기 때문에 빛을 비추면 자국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지문 형태가 아니라도 자국이 남으면 비밀번호를 유추할 수 있어요. 개발 초기에 기술의 벽에 부딪혀 아이템 자체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안심필름을 개발해 등록한 특허. /블루아이디어 제공

김 대표는 역발상을 통해 난관을 정면돌파했다. 가짜 지문을 인쇄한 필름을 통해 실제 지문이 어디에 찍히는지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 가시광선 투과율을 줄여주는 필름을 넣었다. 옆에서 도어락을 바라볼 때 번호판에서 나오는 빛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암막코팅을 통해 선팅 기능을 더했다. “‘지문 형상이 포함된 잠금 장치용 보안 필름’이란 이름으로 특허(등록번호 10-2181026)도 등록했어요.”

개발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필름층에 인쇄한 지문이 실제 남은 지문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게 만드는 게 최대 과제였다. 필름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턱없이 높은 최소주문수량을 요구했다. 주문 수량 기준에 못 미쳐도 안심필름이라는 아이디어에 공감할 업체를 찾아야 했다. 여러 필름층을 합지하는 기술력도 필요했다. 김 대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오랜 장사 경험에서 얻은 의지로 끝까지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발품을 팔고 연구한 끝에 안심필름이 탄생했다. 블루아이디어의 안심필름은 2020년 9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첫 판매를 시작했다.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혼자 사는 여성을 생각하며 만든 제품이지만, 가족의 안전을 생각해 구매하시는 고객도 많아요. 제품을 출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매출은 언급하기 힘들지만,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의집·카카오·쿠팡 등 여러 굵직한 온라인 채널에서 입점 제의가 들어왔어요. 지난 1월 카카오메이커스에서 3일 동안 온라인 판매를 했는데, 약 1400개 팔렸습니다. 제품 하나에 1만5900원이니, 판매액만 2200만원이 넘어요. 매출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연구개발 기간이 길어 투자비 회수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부족한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한 탓에 재고를 제때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제품이 품절 상태일 때가 많죠.”

출처: 블루아이디어 제공

-경찰서에서 납품 요청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홍보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많은 분께 제품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이라 한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출시 2개월 만인 2020년 11월 홍성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가나 원룸, 빌라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에 복지 차원으로 제품을 제공하고 싶다며 납품을 요청해왔어요. 올해 부산 해운대·중부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와 경찰서 로고를 넣어 주문제작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보안 기능을 강화한 도어락도 나오지 않습니까.

“고가 도어락이나 최근 출시된 제품 중에선 비밀번호 노출을 예방하는 허수 기능이 들어간 것들이 있어요. 패턴을 자동으로 바꿔주는 등 보안 기능을 강화한 제품도 나옵니다. 하지만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설치한 저가형 도어락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수십만원짜리 도어락을 구매해서 현관문에 구멍을 내 설치하고, 이사할 때 원상복구 비용까지 부담할 세입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스마트폰 액정에 붙이는 보호필름처럼 저렴한 비용과 간단한 설치만으로 고객을 안심시켜 드리는 게 ‘안심필름’의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1인 가구 여성이나 범죄에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게 돕고 싶어서 블루아이디어를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많은 분이 우리 제품을 사용해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안심필름 하나만 만들지만, 주방이나 화장실에서 쓸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 상품도 구상하고 있어요. 실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을 줄여줄 세상에 없는 아이템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입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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