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혼자 구워 먹던 초등생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1. 2. 9.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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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아이템으로 창업해 억만장자..이제는 '덕후' 시대

최근 중국 최대 전자담배 제조사인 알엘엑스테크놀로지가 창업 3년 만에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80년대생 중국 창업 부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창업자 왕잉(39)이다. 왕잉은 30대에 전자담배 사업에 뛰어들어 짧은 기간에 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었다. 알엘엑스가 만들어 파는 전자담배 브랜드인 ‘릴렉스’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63%에 달한다.


산시성 시안교통대 경제무역학과를 졸업한 왕잉은 미국 생활용품 기업 피앤지(P&G)에서 일했다. 이후 2013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베인앤컴퍼니에서 1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리고 2014년부터 미국 차량 호출 서비스 회사 우버의 중국 사업부인 우버차이나 대표로 일했다. 

출처: 알엘엑스테크놀로지
알엘엑스테크놀로지 창업자 왕잉.

그런 그가 전자담배 회사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전자담배를 좋아하고 즐기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왕잉은 흡연자다. 담배를 즐겨 피우면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 직접 전자담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7년 전자담배 회사 창업을 결심하고, 시장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가 중국 매체와 한 인터뷰를 보면 “아이코스 등에서 출시한 전자담배를 쓰면서 직접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중국 전자담배 시장의 성장 전망이 밝다고 판단했고, 내 경험과 자원을 합해 회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알엘엑스 투자설명서를 보면 2019년 중국 성인 흡연 인구는 약 2억8670만명이다. 일반 담배보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미국의 전자담배 이용자 비율이 전체 흡연자의 32.4%인데, 중국의 전자담배 흡연자 비율은 1.2%에 그친다. 왕잉이 중국 전자담배 시장의 잠재력을 크게 본 이유다.

출처: 알엘엑스테크놀로지
중국 전자담배 회사 알엘엑스테크놀로지 창업자인 왕잉 최고경영자.

왕잉은 액상이 담겨있는 카트리지를 교체하는 방식의 전자담배를 만들었다. 액상을 직접 주입해서 사용하는 전자담배보다 간편하면서도 위생적이다. 또 휴대하기 편한 깔끔한 디자인과 망고, 포도, 민트, 멘톨 등 다양한 카트리지를 선보였다. 왕잉은 자신이 직접 전자담배를 쓰면서 불편했던 점을 보완해 제품을 만들었다.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회사 매출은 해마다 크게 늘었다. 창업 첫해인 2018년 매출은 1억3300만 위안(약 226억원)이었다. 2019년 매출은 15억4900만 위안(약 2642억원).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에도 상반기에만 매장을 1000개 이상 늘렸다. 2020년 1~3분기(1~9월) 매출은 22억100만 위안(약 3754억원)이었다. 이 기간 순이익은 1억860만 위안(약 185억원)이다.

왕잉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 분야에 뛰어들어 대박난 사람은 또 있다.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 창업자의 제임스 프리먼도 좋아하던 커피로 창업했다. 프리먼은 전문 바리스타가 아니었다. 그저 커피를 너무 좋아하던 커피 덕후였다.


프리먼은 원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해마다 10만km씩 교향악단 연주 투어를 다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커피를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사 온 캔 커피에 구멍을 뚫었을 때 새어 나오는 커피 향을 즐겼다. 나이가 들어서도 커피 사랑은 여전했다. 연주 투어를 다닐 때도 비행기에 손수 볶은 커피 원두를 들고 탔다. 승무원에 뜨거운 물을 요청해 기내에서도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실 정도였다. 동료 단원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2001년 그는 뮤지션으로서 슬럼프에 빠졌다. 8년간 클라리넷 연주자로 일했지만 연주하는 게 더는 즐겁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교향악단 그만두고,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2002년 5평짜리 차고를 빌려 커피를 볶았다. 토요일마다 장터에 나가 커피를 팔았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해도 즐거웠다. 최적의 로스팅 정도를 찾기 위해 20초 간격으로 시간을 다르게 해보면서 원두를 볶았다. 고객 취향에 맞는 원두를 집까지 배달해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다.

출처: 블루보틀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블루보틀은 설립 10년 만에 기업가치 7000억원을 달성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영상 캡처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 창업자의 제임스 프리먼.

그의 커피 철학은 뚜렷했다. 최고의 커피 맛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커피를 내렸다. 대형 커피 체인점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바리스타가 정성스럽게 자신의 커피를 내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열광했다. 블루보틀은 설립 10년 만에 기업가치 7000억원을 달성했다. 미국, 일본, 한국, 태국, 홍콩 등 전세계 곳곳에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처음 열었다. 오픈 첫날 오전부터 약 400명의 사람들이 몰려 화제였다.


이들처럼 한 분야에 푹 빠진 ‘덕후’가 창업에 나서 대박을 낸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김관훈 두끼떡볶이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유명한 떡볶이 덕후였다. 공대생으로 8년간 석유화학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떡볶이로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네이버 카페 ‘떡볶이의 모든 것’을 열었다. 각종 떡볶이 레시피와 떡볶이 맛집 정보가 담긴 곳이다. 자신처럼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모았고, 현재 카페 회원 수는 약 4만명에 달한다. 카페 회원들과 떡볶이 맛집을 함께 찾아다녔다. 또 순창군청에 ‘초대형 떡볶이 만들기’ 축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순창 장류 축제의 대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출처: 조선DB, 유튜브 채널 'tvN' 캡처
김관훈 두끼떡볶이 대표.

그의 떡볶이 사랑은 떡볶이집 창업으로 이어졌다. 2015년 즉석떡볶이 브랜드 ‘두끼떡볶이’를 창업했다. 창업 5년 만에 현재 전국 232개 매장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대표로 성장했다. 또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베트남 등 전 세계 곳곳에 매장이 있다.

출처: 유튜브 채널 'tvN' 캡처
김재연 정육각 대표.
출처: 정육각
온라인 정육 유통업체인 정육각.

온라인 정육 유통업체인 김재연 정육각 대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으로 창업에 나섰다. 김 대표는 어릴 적부터 돼지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을 만큼 삼겹살 마니아였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돼지고기 창업을 준비한 건 아니다. 카이스트 졸업 후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을 준비하던 때 아이디어를 얻어 유학 대신 창업에 나섰다. 미국에서는 돼지고기가 비싸다고 해서 가기 전에 실컷 먹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2주 가까이 머물면서 돼지고기만 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여러 가게에서 돼지고기를 먹어도 어린 시절 외삼촌 집에서 먹었던 돼지고기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외삼촌 집은 경남 하동이었는데,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지리산 흑돼지를 잡아 구워 먹곤 했었다. ‘왜 그 맛이 안 날까’ ‘갓 잡아서 맛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축장에서 바로 산 고기 맛이 궁금해졌다. 무작정 도축장을 검색해 찾아갔다. 도축장에선 소매 판매를 하지 않아 고기 20kg를 한꺼번에 샀다. 평소 먹던 고기 맛과는 달랐다. 잡내가 없고 육즙이 풍부했다. 양이 너무 많아 동네 아주머니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반응은 뜨거웠다. 유학 가기 전까지 잠시 재미로 사업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김 대표는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앞둔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2016년 창업에 나섰다. 온라인에서 주문을 받았다. 당일 도축한 돼지고기를 사서 자체 작업장에서 분류·포장해 발송했다. 쉽게 말해 온라인 정육점인 셈이다. 이후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해 농장에서 고기를 받아 정육각 공장에서 가공 후 바로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도축 후의 유통 단계를 확 줄이면서 다른 업체와 차별점을 뒀다. 유학길에 오르려 했던 김 대표는 이를 포기하고 축산물 판매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창업 한 달 만에 매출 1억원을 넘겼고, 작년 연매출은 2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자신이 좋아하던 아이템으로 한 우물을 파 사업 성공을 이뤄내는 덕후의 시대가 왔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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