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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시력도 잃었지만…이렇게 웃고 살아요

“쨍쨍할 때 탔는데 해가 져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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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원샷한솔' 김한솔
고등학생 때 희소병으로 시력 잃어
12시간 수능 보고 건대 경영학과 입학
장애의 진짜 모습 보여주려 유튜브 시작

유튜브에 한 남자가 버스 타는 영상이 인기다. 영상 속 남자는 버스 도착 알림을 듣기 위해 타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자신이 탈 버스가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버스에 다가간다. 손을 뻗어 버스를 더듬다가 타야 할 버스를 놓친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이번엔 점자 번호를 읽었다. 기사님께 한 번 더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버스에 오른다. 카드 찍는 곳을 찾는 것도 조금은 더디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남자는 "해 쨍쨍할 때 탔는데, 해가 져버렸어요"라고 말한다. 조회 수 163만회를 기록한 인기 영상의 주인공은 유튜브 '원샷한솔'을 운영하는 '한솔(본명 김한솔·28)씨'다. 한솔씨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지금은 급수가 사라졌지만 따지자면 1급 시각장애인이다. 15cm 정도에서 사람이 있다, 없다 형태 정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한솔씨는 비장애인이 한 번 쯤 궁금해할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타는 법,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법 등을 올린다. 시각장애인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작한 지 1년 3개월 만에 구독자 13만명 달성하고 '실버 버튼(구독자 10만명 이상 유튜버에게 보내주는 기념패)'도 받았다. 유쾌하고 재밌는 성격도 한몫했다. "아름답거나 불쌍하게 보이는 시각장애인 말고 진짜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한솔씨 이야기를 들었다.

김한솔씨.

출처본인 제공

18살에 찾아온 희소병과 절망감


고등학교 2학년 때 버스를 타고 가다 피곤함에 눈을 깜빡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빛만 구분할 정도였다. '피곤한가보다'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눈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동네 병원에서 시력 측정 불가라고 해서 대학 병원에 갔다. 단순 염증이라고 해 약 처방을 받았지만 시력은 점점 안 좋아졌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결국 ‘레버 시신경 병증’ 진단을 받았다.


레버 시신경 병증은 아무런 통증 없이 시력이 떨어지는 희소 질환이다. 간혹 기적적으로 시력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솔씨는 '그게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에 좋다는 건 다 했다. 당근과 블루베리를 먹고 초록색 색종이를 눈에 붙이고도 있었다. 하지만 시야는 점점 좁아져 갔고 그렇게 한 달 만에 시력을 잃었다. 학교도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의욕을 잃었다. 누워서 음악만 들었다. 그런 한솔씨의 모습을 보고 큰엄마는 점자를 배우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그의 대답은 "싫다"였다. "점자를 배우면 내가 정말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어요. 그게 정말 싫었죠. 그런데 시간이 정말 안 가더군요. 결국 다시 점자 생각이 났습니다. 또 저 때문에 우시는 큰엄마를 봤는데, 그런 큰엄마를 다시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점자를 배우기로 했죠."

점자 찍는 도구와 한솔씨가 점자를 읽는 모습.

출처원샷한솔 유튜브 캡처

종일 찍고 읽는 연습 통해 점자 익혀


점자 도서관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 10시간을 점자를 찍는 연습만 했다. 일주일에 노래 한 곡을 쓰는 게 숙제였는데, 쓰다 보니 7곡까지 쓸 수 있었다.


"2주 후에는 능숙하게 점자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점자도 읽을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에 책을 폈어요. 점자에 손을 댔는데, 하나도 안 읽혔습니다. 정말 오돌토돌한 것 만지는 느낌뿐이었어요. 충격받아 그때부터 온종일 읽었습니다. 혹시나 남은 시력이 방해를 하나 싶어 불도 다 끄고 해봤지만 못읽겠더라고요. 선생님 만나기 전까지 한 글자라도 읽겠다고 다짐하고 5일 내내 읽기만 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결국 '장'이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글자를 읽고 나서는 다른 글자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수능 공부를 하고 싶어 문제집을 읽었다. 국어 문제집 한 권이 점역본으로는 200~300페이지 책 3권이었다. 일주일에 한 권씩, 밥 먹고 책만 읽었다. 한솔씨는 "책 읽는 기쁨을 알았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읽을 수 있을까' 궁리했는데 신기했다"고 말했다.


12시간 수능 보고 건대 경영학과 입학


20살에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그때의 자신을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편견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학교 가는 이유도 오직 대학 때문이었다. 묵언 수행 하듯 공부만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랐다. 유쾌한 친구들 덕분에 학교에 적응하면서 교화하기 시작했다. 장애라는 같은 개성을 가진 친구들과 지내니 학교생활이 재밌고 편했다. 공부만 하겠다는 마음이 희미해졌다고 한다. 또 편견이 많던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하는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은 재밌지만 수능공부가 쉽지 않았다. 우선 교재가 없었다. 점역이 된 EBS 교재는 전년도 것까지 밖에 없었다. 또 한솔씨는 중도에 실명을 한 경우라 점자 읽는 게 빠르지 않아 걱정이었다. 시험지가 가장 짧은 과목이 수학이었다. 수학에 집중했다. 수학 점자도 따로 익혔다. 그래프, 수학기호 등도 손으로 익혀야 했다. 당시 시각장애인은 수능 볼 때 필산을 할 수가 없어 암산 연습도 했다.


시각장애인은 해당 교육청의 확인을 거쳐 시험을 본다. 중증과 경증으로 나뉘는데, 중증 시각장애 수험생의 시험 시간은 교시별 비장애인 수험생의 1.7배다. 오전 8시10분부터 저녁 9시 43분까지 시험을 본다. 12시간이 넘는 수능을 치르고 한솔씨는 2014년 건국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조회 수 163만회를 기록한 버스 타는 영상. 두리번거리는 그를 위해 버스 번호나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버스타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한솔씨 역시 이런 불편때문에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출처원샷한솔 유튜브 캡처

대학에서 마주한 현실, 그리고 후회


꿈꾸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입학하자마자 후회했다. 대학교에 점역이 된 교재가 하나도 없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장애인은 대부분 특수교육학이나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데, '이래서 장애인들이 경영학과를 안 온 건가', '이러니까 장애인들이 시도도 못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복지관으로 책을 보내서 점역 요청을 했어요. 아무리 빨라도 한 권에 1~2개월씩 걸려요. 그동안은 장애 학생 도우미에게 부탁해서 스케치북에 사인펜으로 써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손으로 느껴서 공부했습니다."


차가운 현실은 계속 이어졌다. 점자 읽는 시간 때문에 수능은 물론 공무원 시험에서도 시간을 더 준다. 그러나 한 교수는 시험 시간을 더 줄 수 없다고 했다. 갑자기 본 쪽지 시험에서는 0점을 받았다. 결국 한솔씨는 휴학했다.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잘 준비해서 나오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에게 차가웠다.


"전과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자' 싶어서 더 열심히 다녔어요. 불합리한 일에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2017년에는 장애인 인권을 위한 소모임도 만들었죠.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함께하면서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2018년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았어요. 지금도 선배로서 후배들과 소통 중입니다."

친구 우령씨와 치킨 먹방을 찍기도 했다. 우령씨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출처원샷한솔 유튜브 캡처

'원샷한솔' 13만 유튜버로


2019년 2월, 5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같은 해 10월 유튜브를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소희씨가 PD겸 편집을 맡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아름답거나 불쌍한 모습 말고 장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벽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장애를 가진 누군가 사회에 나왔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이질감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거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영상도 세 번이나 다시 찍었어요. 카메라 잘 보고 있는 건지,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등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큰 반응은 없었다. 그러다 2020년 8월과 12월에 올렸던 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또 많은 사람이 '장애가 있다는 건 그저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한솔씨를 응원하고 있다.


“많은 댓글과 메시지를 받아요. '장애인하면 재미없고 우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편하게 보게 된다', '이제는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한솔님이라서 본다'고 해주셔서 힘이 나죠. ‘나를 나 자체로 봐주시는구나, 시각장애는 내가 가진 하나의 특성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악플도 많이 달리죠. ‘장애인 새끼들이 불쌍하게 밥 먹는 걸 찍네’, ‘궁예 XX야’ 등 많아요. 그동안 편견, 차별과 싸우면서 살아서 그런지, 이제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오히려 친구들과 안줏거리로 삼습니다.”


댓글 중에는 ‘장애를 팔아서 돈 번다’는 내용도 있다. 2020년 조작으로 논란이었던 유튜버 ‘아임뚜렛’ 때문이다. 한솔씨 역시 그 사람의 영상을 보고 참고했다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런 댓글을 남기는 걸 이해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더 좋은 영상을 만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음료 고르는 콘텐츠를 찍기도 했다. 많은 음료 중에 점자를 읽고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음료는 딱 두개였다. 점자로 이름이 써 있는 '테라'와 점자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 '비락식혜'다. 나머지는 맥주, 탄산, 음료 라고만 적혀있다고 한다.

출처원샷한솔 유튜브 캡처

“남과 같은 속도로 갈 필요 없어요"


한솔씨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이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됐을 때 큰 엄마와 큰 아빠가 어린 한솔씨에게 가족이 되어줬다. 한솔씨는 “좋은 건 뭐든 해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한솔씨의 목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유튜브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없어도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제가 겪은 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삶을 살면서 좋은 가족을 꾸리고 싶습니다. 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계속 도전할 겁니다. 대부분 하고 싶은 게 떠올라도 실행을 잘 못 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안 될것 같다는 걱정이 많기 때문이에요. 한 번 자신을 믿고 해보세요. 재밌는 일이 생길 거예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경험해 보기 전에는 너무 단정짓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해보면 좋겠습니다. 또 그 시도가 늦어도 괜찮아요. 굳이 남들하고 똑같은 속도로 갈 필요 없습니다. 저도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에 조급해했는데, 조금 늦어도 괜찮더라고요. 나만의 속도로 갈 때 자기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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