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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70만원을 600억으로 바꿔버린 여성의 노하우

조회수 2020. 11. 21.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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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70만원 받던 디자이너는 지금 연 매출 600억원 CEO가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소품으로 집안 곳곳을 꾸미는 게 재밌었다. 집 식탁에 스카프를 깔았고, 직접 만든 액자를 걸어놓기도 했다. 재능을 살려 섬유공예학을 전공했고, 홈 패션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월급 70만원을 받으면서 다림질, 상품 디스플레이 등 온갖 잡무를 도맡아했다. 그래도 원단을 만지고 디자인하는 일이 좋았다. 회사 지하 창고에서 원단 재고를 가지고 밤새 디자인하면서 평생 해야 할 일이구나 싶었다. 홈 인테리어 디자인만큼은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창업을 결심했다. 뻔한 디자인이 아닌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홈 스타일링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덧 창업한 지 15년 차, 연 매출 약 600억원의 CEO로 자리 잡은 홈 스타일링 전문 기업 ‘데코뷰’ 정미현(41) 대표의 이야기다.

출처: 데코뷰 제공
‘데코뷰’ 정미현 대표.

대학에서 섬유 공예학을 전공한 정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홈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집 식탁에 스카프를 깔았고, 예쁜 꽃병을 올려놨다. 또 혼자 이리저리 가구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액자 등 아기자기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집을 꾸몄다.


졸업 후 2003년 커튼을 제조하는 홈 패션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수습사원으로 일하면서 커튼 다림질, 상품 디스플레이, 배송 업무 등 온갖 잡무를 도맡아 했다. 그렇게 한달을 꼬박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었던 디자인 업무는 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컸지만 좀처럼 디자인 업무를 맡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엔 직접 백화점이나 마트에 나가 시장 조사를 했다. 어떤 디자인의 제품이 잘 팔리는지,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분석했다. 회사 막내임에도 영업팀에 매출 자료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신제품을 디자인했다. 그런데 디자인한 시안을 보여줘도 회사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변화하는 트렌드를 분석하기보단 과거 잘 팔렸던 제품만 재생산하기 바빴다. 

출처: 데코뷰 제공
정 대표는 27살 '데코뷰'를 창업했다.

더는 나아질 게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식탁보, 앞치마 등 리빙 제품을 판매하는 홈 패션 전문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제품 디자인만 할 수 없었다. 큰 회사가 아니다 보니 원단 관리, 백화점 영업, 판촉 행사, 공장 섭외 등 대부분 업무를 직접 맡아야 했다.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공장, 마트, 백화점 등 곳곳을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낮은 연봉과 처우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직접 원단을 만지고 디자인 일을 하는 게 좋아서였다.


“처음 출근했을 때 회사의 지하 창고에 원단 재고가 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신이 났어요. 업무가 끝나면 혼자 창고에 가서 쓰다 남은 원단을 가지고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마음껏 했어요. 원단을 만지는 일이 정말 재밌었어요. 이 일을 할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죠. ‘이게 내 일이구나’ 싶었어요. 커튼, 이불, 쿠션, 앞치마 등 다양한 제품의 디자인을 했어요. 직접 디자인한 시안이 제품으로 탄생해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만들던 제품이 소위 ‘대박’이 났어요.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판매 과정 대부분을 맡기 시작했어요. 제품 디자인부터 원단을 떼고 재단하는 일, 백화점이나 마트 담당자를 만나 판촉 행사를 기획하는 일까지 맡았습니다. 그렇게 약 4년 정도 일하니 대중이 어떤 디자인의 제품을 선호하는지, 어떤 원단으로 공장에 오더를 주면 마진이 얼마 정도 남는지 등 계산이 나왔죠. 시장 유통 구조나 원가 절감 방법 등을 알 수 있었어요. 홈 인테리어 제품만큼은 잘 만들 자신이 생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디자인을 실컷 해보자라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출처: 데코뷰 제공
'데코뷰' 상수점 오프라인 매장 모습.

정 대표는 퇴사 후 2006년 홈 스타일링 브랜드 ‘데코뷰’를 창업했다. 그때 나이가 27살이었다. 첫 아이템은 주문 제작 커튼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에게 직접 주문받아 디자인하고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에 집중했다. 4년여간 직접 발로 뛰면서 익힌 경험은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직접 동대문도매상가에서 원단을 사서 공장에 주문 제작을 맡겼습니다. 디자인, 생산 관리 등을 직접 하니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어요. 또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임가공비(일정한 값을 받고 물품을 가공하는 일의 비용)를 원하는 조건에 맞춰달라고 설득했죠. 그렇게 주문 제작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보통 30평 집을 기준으로 거실과 방 3개 꾸밀 커튼을 주문 제작하려면 150만원 정도 들었는데, 50만원선으로 내놓았으니 시중가의 3분의 1 수준이었죠.


직장 생활 당시 여러 업무를 맡았던 게 도움이 됐어요. 처음엔 디자인부터 생산관리, 샘플 촬영, 배송·주문 처리, 고객 응대 전화까지 직접 맡았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주말이나 명절도 없이 일했습니다.” 

출처: 데코뷰 제공
이불, 매트 커버, 앞치마, 키즈 제품 등 제품군을 늘려갔다.

차별화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금세 입소문이 났다. 단골이 늘면서 사업도 점차 커갔다. 커튼뿐 아니라 이불, 매트 커버, 앞치마, 식탁보, 주방 매트, 실내화, 담요, 키즈 놀이 매트 등으로 다양해졌다.


정 대표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2007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사무실을 얻었다. 또 제품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2012년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또 오프라인에서도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2015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 리빙편집숍 오프라인 쇼룸을 열었다. 지난 1월엔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에 사옥을 지어 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 중이다. 


“차별화를 두기 위해 대중성을 고려해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수천장의 공간 이미지 자료를 보고 분석했고, 고객이 선호하는 유형을 조사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앞서 나가는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요. 어느 집이든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합니다. 너무 튀거나 금방 질리는 컬러는 사용하지 않아요.


또 신상품을 짧은 주기로 계속해서 출시하고자 했어요. 대중의 입맛을 만족시키려면 다양한 스타일링을 빠르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빠른 회전율을 보이는 의류 브랜드인 ‘자라’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확신을 가졌죠. 매월 신제품이 80~90개씩 나옵니다. 업계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죠. 새로운 트렌드를 디자인에 발 빠르게 반영하려고 합니다.”

출처: 데코뷰 제공
'데코뷰' 정미현 대표.

아무것도 없이 홀로 시작한 사업은 어느덧 15년 차를 맞았다. 현재 함께 하는 직원은 140여명으로 늘었다. 2018년 매출은 301억, 작년은 417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현재까지 약 600억원을 달성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요.


“고객이 원하는 리빙 문화를 제공하는 토탈 리빙 전문 회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주방 식기, 캠핑용품 등 제품 카테고리를 계속 늘리고 있어요. 향후 소가구 등 더 넓은 분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으로 홈 스타일링 시장을 선도하고 싶어요.”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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