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한양대 문과 출신 남자

조회수 2020. 11. 8. 06: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야구의 전설 양준혁이 20대때 문짝을 걷어차게 만든 남자
윤병웅 KBO 야구 기록위원
31년간 3000경기 넘게 지켜봐
야구판 ‘조선왕조실록’ 만들어

1995년, 삼성의 27살 타자 양준혁이 기록실에 불쑥 들어왔다. 자신의 안타성 타구가 실책으로 기록돼 항의하기 위해서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원실 난입이었다. 그러나 기록원의 대답은 “기록은 못 고쳐준다” 였다. 화가 풀리지 않은 양준혁은 기록원실을 나가며 문짝을 걷어찼다.

출처: KBSN.SPORTS 캡처
25살(1993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타자로 활약한 양준혁. 양준혁은 신장 188cm에 몸무게는 100kg이 넘는다. 이런 거구와 대치하면 누구라도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혈기왕성한 27살 양준혁의 항의를 받아야 했던 이 사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입사한 1989년부터 야구 경기를 기록하고 있는 야구 사관, 윤병웅 KBO 야구 기록위원(56)이다.


“기록원은 야구 경기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보통 포수와 주심 뒤쪽에 있는 기록실에 있죠. 간혹 2~4층 스카이박스 높이에서 내려다보며 기록할 때도 있고요. 31년 동안 일하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세부규정은 조금씩 변했어도 손으로 기록하는 건 동일합니다.”


윤 기록위원은 31년째 야구를 기록한다. 지켜본 경기는 총 만 시간 이상. 경기를 보려고 이동한 거리만 63만㎞에 달한다. 올해 10월에는 통산 3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대 프로야구 기록위원을 통틀어 오직 세 명만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출처: 본인 제공
야구장에 있는 윤병웅 위원. 윤 위원은 31년째 KBO 공식기록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전국 각지 야구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기록하기 위해 63만km 이상을 이동했다.

◇야구 사랑해서 시작한 일, 하지만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아이러니


-야구기록원은 일은 어떻게 접하셨나요?


“고등학교 때 잡지를 보다가 야구를 기록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전부터 야구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죠. 그래서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도 KBO에서 주최하는 기록강습회에 참가했습니다.”


고교 시절, 기록강습회 기간이 고등학교 3학년 기말고사와 겹친 적이 있었다. 그때 윤 위원은 기말고사 이틀을 포기하고 기록강습회에 참가했다. 야구 기록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무모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윤 위원은 그만큼 야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면 스포츠 관련 학과에 진학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습니다. 기록강습회를 수료하고 얼마 있다가 KBO에서 기록원 자리를 제의하더군요. 당시 대학 재학 중이었는데 제의를 받아들이고 기록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KBO 홈페이지
KBO가 매년 1월 시행하는 정기 기록강습회 모습. 정기 기록강습회 강사진은 KBO 기록위원들이며 수강생은 300명 내외다. 윤 위원도 두 번의 강습회를 거쳐 기록원이 됐다.

-3000경기 이상 출장한 경험에 비춰볼 때, 좋은 기록원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야구에 관한 관심과 애정입니다. 그래야 꾸준히 야구 이론을 공부할 동력을 잃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면 기록원으로서의 실력도 자연스레 쌓입니다. 반대로,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야구를 보는 눈이 낮아져요.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야구경기를 기록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규칙을 잘못 적용해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윤 위원은 인터뷰 내내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야구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자랑했다. 하지만 기록실에서는 무심하다고 할 만큼 모든 감정을 덮어둔다고. 경기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하려면 이성적 판단이 필요해서다.


-그래도 감정이 개입할 때는 없나. 야구는 역전 승부가 자주 일어나는데.


“끝내기 안타나 홈런은 팬들에게 중요하고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죠. 흥분이나 긴장도 많이 하시고요. 하지만 저희 기록원들은 조금 다른 상황에서 긴장합니다. 예를 들면 투수가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을 이어가고 있을 때죠. 그럴 땐 경기가 종반에 다다를수록 긴장합니다. 제 판단 한 번으로 특별한 기록이 세워질 수도 깨질 수도 있거든요. 경기 중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을 꼽자면 그때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를 제외하면 항상 감정을 배제한 채 일합니다.”


정확한 기록을 위해 경기 내용은 두 명의 기록원이 상의해서 판단한다. 한 명은 수기를, 다른 한 명은 전산처리를 맡는다. 수기는 책과 CD로 만들어 조선왕조실록처럼 여러 장소에 나눠 보관한다. 전산 기록은 팬들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다. 한 번 기록이 남으면 정정하는 법도 없다.

출처: YTN 뉴스 캡처
KBO 공식기록원들이 사용하는 야구 기록지. 기록원들은 평균 3시간 10분에 달하는(2020시즌 기준) 야구 경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이 기록지 두 장에 담아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은 어떤 기록인가. 그 기록을 적을 때도 감흥이 없었나.


“특별한 기록이라고 하면, 송진우 200승과 서건창 200안타가 기억납니다. 두 번 모두 제가 직접 기록했거든요. 당시 매스컴에서 많이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주목받는 기록을 기록지에 적으면서, 저도 속으로 ‘아 됐구나’ 했습니다. 제가 야구경기를 역사로 옮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기록이 달성되고 나니, 더 이상의 감흥이 일어날 틈은 없었습니다. 바로 다음 플레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윤 기록위원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기록을 가진 선수는 LG 트윈스의 박용택이다. 박용택은 올 시즌 KBO 최초 2500안타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윤 기록위원이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는 건, 박용택의 KBO리그 최다 출장 기록(2236경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관리 노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기록에 대한 선수들과 팬들의 불만이 많다.


“판정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따르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아니까 특별히 반응하지는 않아요. 물론 기록원들이 실수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계속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하니까요.”


기록 때문에 선수에게 모욕을 당한 적도 있다. 1998년, LG와 OB의 경기였다. 6회 타석에 나선 LG의 3번 타자 이병규가 유격수 쪽 땅볼 타구를 날렸다. 애매한 타구였고, 윤 기록위원은 안타 대신 수비 실책으로 판정했다. 이병규는 머지않아 아웃당했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돌연 기록실을 향해 ‘주먹 감자’를 꺼내 들었다. 윤 기록위원은 “기록지를 작성하느라 못 봤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병규는 제재금 5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출처: SBS ESPN 캡처
LG 트윈스에서 타자로 활약한 이병규(오른쪽)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윤 위원이 근무하고 있던 기록실을 향해서 주먹 감자를 내보인 적이 있다. 이병규는 판정에 자주 항의하곤 했지만, 항의한 다음날 사과하러 오기도 했다.

-잘 알려진 규칙으로 봐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록원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야구 규정상 분명한 실책임에도, 그것을 실책으로 기록할 수 없도록 하는 기록조항도 있거든요. 팬들이 언급하는 규칙이 아니라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할 때도 잦아요. 이런 속사정이나 세부원칙들을 야구팬들이 다 알지는 못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불만을 품을 수 있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드릴 수는 없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희는 모든 상황을 규칙과 이론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심지어 팬들 반응에 공감할 때마저도 그저 원칙대로 기록할 뿐입니다.”


-규칙을 따를 뿐이라고 하셨는데,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순간은 없나.


“물론 기록원의 주관이 개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타구를 놓친다고 해서 무조건 실책은 아니거든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타자의 주력이 빠른지 느린지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TV 중계로 야구를 보면, 수비장면만 단편적으로 보이니 실책으로 보시기 쉬워요. 그러나 저희는 모든 상황을 한데 묶어서 보려고 합니다.”


-어떤 플레이를 볼 때 가장 주의 깊게 보시나요?


“타석에 발이 빠른 타자 주자가 들어설 때요. 그럴 때 수비들이 어정쩡한 땅볼인데도 잡으려다 놓치거나, 1루 악송구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땐 안타와 실책 판정이 애매해집니다. 그래서 유심히 봐야 해요. 수비가 공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시점에 타자가 어느 위치인지도 중요합니다.


타자가 장타성 타구를 치고 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선수가 2·3루까지 갔다고 해서 무조건 2·3루타로 인정하는 건 아닙니다. 타자가 자력으로 진루한 건지, 아니면 야수들이 다른 곳으로 송구하는 틈을 이용한 건지 따져야 해요. 그러려면 공의 진행방향 등 플레이 전반의 종합적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런 순간에 가장 신경 써서 보는 편입니다.”

출처: KBO 홈페이지 캡처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올해 공식으로 발행한 2020 야구 경기규칙집. 183쪽 분량에 달하지만, 야구 기록관은 이를 속속들이 숙지한 상태에서 경기 상황을 판단하고 기록한다.

-야구기록원은 수익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KBO에 소속된 일반 근로자예요. 출전 경기에 상관없이 일반 직장인들처럼 매달 정해진 임금을 받습니다. 경기가 있든 없든 똑같이요. 연봉도 선수들처럼 고액연봉이 아니라 보통 근로자들 수준으로 받습니다.”


-그렇다면 31년간 일해온 근로자로서, 기록원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또 일반 직장인과 비교한다면.


“제가 일반기업에 다녀 본 적이 없어서 함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통 환경이나 처우가 열악한 직장이나 직업은 이직이 많잖아요. 그런데 기록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이직이 거의 없습니다. 기록원이 되는 게 쉽지는 않지만요. 징계 등 사유가 있는 게 아니고서는 일하다 그만두는 걸 거의 못 봤습니다. 처우도 어느 정도 보장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원들은 대개 야구에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 일 자체가 좋아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은퇴 후 계획도 있나요?


“은퇴 이후의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습니다. 야구 산업의 상황, 인력 수요 등이 해마다 달라지고 있거든요. 제가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지금, 이 직분에 충실하고 싶어요.”


글 jobsN 이안기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