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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미역국이요? 전 밥하는 은행원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10. 22.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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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준비시키고 말 안 들으면 "팔아버린다" 협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갑질 당하고 구제 못받는 경우 많아
폭언·성희롱해도 견책·감봉 그쳐

“장을 봐오라 해요. 내일 미역국 먹고 싶다고 하면 식사 준비를 했죠.”


2013년 부산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직장인 A씨는 2015년 무기계약직 전환을 거쳐 2018년부터 정규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금고 지점으로 발령이 난 그에게는 본업 말고도 다른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지점 직원 7명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A씨는 회사 근처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 오고, 직접 음식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규직 전환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출처: KBS News 유튜브 캡처

A씨는 1년 가까이 직원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식사 준비로 쉬는 시간마저 보장받지 못한 그는 결국 2019년 4월 이사장과 전무에게 더는 음식을 못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상급자를 건너뛰고 보고했다는 비난이 돌아왔습니다. A씨는 “지시 명령 불복종, 위계질서 위반이나 하극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퇴사 강요와 노조 탈퇴 압박까지 받던 그는 결국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KBS 취재 결과 그는 금고방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요, 창문이나 환풍기가 없는 금고 방에서 버티다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고, 우울과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딸보다 어린 부기관사에 ‘오빠’라 부르라 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통과했지만, 공기업이나 사기업을 가리지 않고 직장에서는 여전히 갑질,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시달리는 피해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피해 사실을 알고도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거나 가벼운 징계를 내려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출처: JTBC Drama 유튜브 캡처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2인 1조로 근무하는 열차 운전실에서는 성희롱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천준호 의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한국철도공사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자료를 보면 2019년 2월 공사 남성 기관사 B씨는 여성 부기관사 C씨에게 수시로 폭언과 성희롱을 했습니다. B씨는 딸보다 3살 어린 C씨에게 오빠라 부르라 지시하고, 머리카락 냄새를 맡거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는 등 성추행까지 했습니다. 그는 부기관사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OO촌에 팔아버린다”고 폭언하고, 참다못한 C씨가 근무지 변경을 신청하자 “싸가지 없는 O”이라며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이 일로 B씨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한국공항공사에서는 성희롱 고충 담당 업무를 맡은 남직원이 여직원을 괴롭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공사 중간 간부 D씨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피해자들에게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전화나 메신저로 사적으로 연락한 것입니다. 밤 10시가 넘어 “오늘 뭐 했느냐”, “집에 가면 뭘 할 거냐”라고 묻고, 휴일에도 “어디에 갈 거냐”라 질문했다고 합니다. 한 직원에게는 입맞춤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수고했어, 예쁜 OO이”라는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D씨는 2019년에도 성희롱 고충 상담원으로 일했고, 견책 처분만 받았습니다.

출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캡처
중소·중견기업 취업 청년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 돕는 청년내일채움공제.

◇내일채움공제 노예계약으로 악용하기도


중소기업에서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에 참여한 사회초년생이 사업주한테 갑질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청년이 오래 일할 수 있게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업입니다. 직원이 2년간 매월 12만5000원씩 적립하면 만기 때 16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부담금 300만원만 내면 1300만원(기업 기여금 400만원+정부 지원금 9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월 16만5000원씩 3년간 600만원을 납부하면 본인부담금을 빼고 2400만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만큼 사업 출범부터 중소·중견기업 취업 청년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0월 11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일부 사업자는 직원이 근무 기간 2년을 채워야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지급했습니다. 회사 귀책 사유로 퇴사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가면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장갑질119는 “일부 청년이 폭언부터 성추행, 사적인 업무 지시 등 온갖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직장갑질119에서 접수한 내일채움공제 관련 갑질 제보가 23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제 신고를 통해 구제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국회의원이 10월 2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괴롭힘 금지법 도입 후 1년 동안 고용노동부가 접수한 사건은 4975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개선지도 조치한 사례는 848건(18.2%), 검찰송치는 53건(1.2%)로 전체의 20%에 못 미쳤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도 구제받은 직장인이 5명 중 1명에 불과한 셈입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서 “실질적으로 처벌을 강화하지 않으면 어떤 법을 도입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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