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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는 영어, 오른쪽 귀는 한국말..이런 연습 많이 해요

조회수 2020. 9. 13.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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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귀로 외국어, 한쪽 귀로 한국어..동시통역은 종합예술입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고위급 인사 옆을 수행하며 동시통역을 하는 사람들 모습을 자주 본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도 동시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통역하면서 중계했다. 모두 통역사들이 하는 일이다. 번역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흔히 ‘통번역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통번역 일을 하고 싶다며 뒤늦게 통번역 대학원에 입학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통번역사가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게 될까. 통번역사로 10년째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문의(36)씨를 만나 통번역사의 세계에 대해 물어봤다.

최문의 통번역사

-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국제회의 등에서 동시통역을 하기도 하고, 특정인을 수행하며 통역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에서 국제적으로 주고받는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할 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활동하는 통역을 좋아해서 통역과 관련된 일을 주로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 통번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증이 있는지. 


“통번역사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은 없어요. 일반적으로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원 내에 있는 통번역 센터의 소개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외대 통번역 대학원이 제일 많이 알려져 있고, 이화여대, 서울외대, 중앙대 등에도 통번역 대학원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통번역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생 때부터 준비해와서 특별히 대학원을 가지 않고 통번역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샤또 무똥 로칠드 2013' 이우환-아트라벨 기자회견에서 최문의씨가 통역을 맡았다

-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가. 통번역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는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긴 했지만, 해외에 살았던 경험은 전혀 없어요. 통번역사 중에서 ‘국내파’에 속하는 셈이죠.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가 영어 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됐었어요. 운 좋게도 초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처음 들었던 세대에요. 당시에는 만화와 회화 중심으로 배웠는데, 그게 큰 영향을 줬어요. 문법 먼저 배웠다면 재미없었을 텐데 회화 중심으로 배우다 보니 영어 수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는 한국외대에서 주최하는 영어 경시대회에 나가서 2등을 하기도 했어요. 학창 시절에 영어가 가장 재밌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통번역사가 가장 제게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통번역에 있어서는 ‘해외파’가 유리할 것 같은데. 장단점은 무엇인가.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통번역사들은 통역을 할 때 생소한 단어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히 장점이 있어요. 평상시 잘 쓰지 않는 단어들까지 생활화돼 있어서 통역 중에 그런 단어가 나와도 금방 알아듣는데 유리하죠. 그런데 통역사에게는 국어도 굉장히 중요해요. 통역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야 해요. 그런 면에서는 ‘국내파’가 유리하기도 해요. 통번역에 있어서 정확한 문법이나 단어는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게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출처: 본인 제공

-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주변을 보면 저 같이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과 회사에 통번역사로 취직해서 일하는 분이 반반씩 있는 것 같아요.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면 그 회사와 관련된 통번역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게 되는데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면에서 장점이 있어요. 저 같이 프리랜서로 일하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일하는 만큼 벌게 돼요.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프리랜서라면 개인을 알리는 마케팅도 해야 할 것 같다.


“통번역사로 일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통번역사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 업체들에 모두 이력서를 넣었어요. 경력을 쌓기 위해 페이가 적더라도 조그만 일이라면 모두 맡아서 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고객들이 인맥이 되고 점점 경력을 쌓아가면서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제게 연락을 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저를 먼저 찾아주는 클라이언트가 더 많아요.” 

출처: 본인 제공
통역을 하는 최문의씨. 오른쪽은 아바타 FX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다

- 첫 직업이 공무원이었다고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장이 강남구청이었어요. 당시 의료관광이 주목받던 시절이라 구청에서 의료관광팀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통번역사를 채용한 거죠. 영어와 관련된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가 있어서 응시해서 합격했어요. 의료관광팀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 


“공무원 생활은 2년 정도 했어요. 그런데 일하는 게 재미가 없었어요. 통번역사로 입사했는데 통번역 업무는 전체 일에서 30%가 채 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업무가 일반 행정 업무였습니다. 저는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고 활동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답답하게 느껴졌죠. 그래서 고민 끝에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즐겁게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왼쪽은 미국 오가닉 식품 브랜드 창업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오른쪽은 CF촬영에서 천재 자폐 아티스트 스티븐 윌트셔의 통역을 맡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 통역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 같다.


“통역에도 간단한 일부터 경력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초반에는 순차통역을 많이 해요. 화자가 영어로 말하는 게 끝나면 그걸 정리해서 한국말로 바꿔서 청자에게 전달해 주는 방식이에요. 잠깐이지만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걸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통역이죠. 수행통역도 있어요. 특정 연사를 보좌하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통역해 주는 방식이에요. 경력이 쌓이면 동시통역을 합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통역해 주는 방식이에요. 중요한 국제회의나 대기업 행사에서는 동시통역사를 구할 때 경력을 강조하기도 해요. 큰 회의의 동시통역은 경험이 많아야 맡을 수 있습니다.”


- 전문적인 분야에서 통역을 하려면 전문 용어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통역과 관련된 주제가 정해지면 클라이언트에게 사전 자료를 받아요. 그러면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공부해요. IT나 의료 같은 분야는 전문 용어가 많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통역사마다 특화된 전문 분야를 갖는 것이 유리해요. 저 같은 경우는 IT와 정치, 경제 분야의 통역을 많이 맡아요. 관련 전문 용어에 대한 단어는 통역사들끼리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하기도 합니다. 문화나 예술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통역사들은 형용사나 부사를 많이 공부해요. 예술가들은 현란한 용어를 써가며 감정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단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통역사들이 곤란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동시통역 부스에서

- 동시통역을 하는 걸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통역하는 동시에 듣기도 해야 하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가.


“동시통역은 내가 통역해서 말하는 동안에도 상대방은 계속 말을 하기 때문에 경험을 많이 쌓고 훈련하지 않으면 쉽지 않아요. 중요한 회의 같은 경우는 한 마디라도 놓치면 회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통역사 입장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통역입니다. 한쪽 귀로는 외국어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내가 말하고 있는 걸 듣는 연습을 많이 해요. 화자의 말이 빠르면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한국어로 바꿀 때도 단어 선택을 잘 해야 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작업이에요. 저희는 그걸 종합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10년 동안 통번역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5년 전에 한 애니메이션 수입 업체가 판권을 계약하기 위해 미국으로 함께 출장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마블 히어로의 아버지 스탠리를 만나서 통역을 했었죠.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서 평소에 그분 팬이었는데, 스탠리 앞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는 게 꿈만 같았어요. 얼마 전 스탠리가 별세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슬펐어요. 평창 올림픽 때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동시통역했던 순간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출처: 본인 제공
마블의 아버지 스탠리와 최문의씨의 모습

- 통역사에 대한 대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통역을 하고 받게 되는 페이는 행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국제회의 같은 대형 행사는 관행같이 요율이 정해져 있어요. 3시간 이하의 행사는 하프데이로 60만원, 그 이상은 풀데이로 90만원 정도의 통역비를 받습니다. 그 외에는 행사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다르게 책정돼요.”


- 통역에 있어서 나만의 장점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저는 통역을 하기 전에 사전 준비를 많이 해요. 특히 요즘에 유행하는 것들에 대한 영어 표현을 최대한 많이 익혀두려고 노력합니다. 통역을 하다 보면 브레이크 타임에는 화자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럴 때 최신 드라마나 BTS같은 음악 이야기도 나오는데, 관련 표현들을 많이 알아두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 있어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인터넷 서핑을 많이 해요. 세상에 쓸모없는 지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 꿈이 있다면.


“지금도 즐겁게 일하고 있는 걸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덕분이기도 하지만, 일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저와 일해본 클라이언트들이 지속적으로 일을 맡겨 주기도 해요. 통번역사의 장점은 은퇴 걱정 없이 나이 들어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계속 경력을 쌓아가면서 오랫동안 통번역을 하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재밌고 즐기며 일하는 게 꿈입니다.”


글·사진 jobsN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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