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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업이었다니…‘두꺼비 소주’ 다시 봤습니다

활명수, 진로소주를 독립운동 위해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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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자금 위해 만든 진로 소주
8.15 광복절 75주년
독립운동가가 세운 애국 기업들

진로이즈백. 하이트진로가 20년 만에 다시 내놓은 진로 소주 속 두꺼비 캐릭터입니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20~30대에게는 뉴트로 매력을 선보인 진로이즈백은 술자리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주의 대명사인 진로 소주를 만든 이유가 독립자금이 필요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말 가르쳤다는 이유로 해고 


진로 창업주 장학엽 회장은 황해도 곡산의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이 한창이던 1920년대 당시 일본인 교장 밑에서 일했던 장 회장은 학생들에게 꿋꿋이 조선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결국 수업 시간에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그는 자신의 손으로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합니다. 설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바로 양조장. 

하이트진로 광고 모델인 가수 아이유와 두꺼비 캐릭터

출처하이트진로 공식 페이스북

장 회장은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하고 진로라는 이름의 소주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진로는 이후 하이트맥주와 합병으로 지금의 하이트진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장 회장의 애국정신을 잊지 않고 올해 광복절에도 한국독립유공자협회에 생존 독립유공자 돌봄 사업을 위한 기부금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진로 소주 변천사

출처하이트진로 공식 홈페이지

진로 외에도 독립운동에 기여한 기업들은 많습니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나 교보생명을 설립한 신용호 회장이 일제강점기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독립을 위해 힘쓴 기업들은 또 어떤 곳이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사람 살리는 물, 활명수 팔아 독립 자금 마련   


국내 최장수 의약품 까스활명수를 만드는 제약사 동화약품. 활명수도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운영자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 설립자 민강 사장은 유명한 독립투사입니다. 그는 당시 독립운동을 위한 국내외 연락 통로 역할과 정보 수집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동화약방 본사에서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도 직접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을 가진 활명수를 만들고 팔아 번 돈으로 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동화약품 사장들./ 동화제약 활명수 광고 모델인 배우 서현진./

출처동화제약 공식 홈페이지(좌) CF 화면 캡처(우)

1909년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시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민 사장은 옥살이를 2번이나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민 사장은 4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동화약품에는 그의 독립 정신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민 사장의 옥살이로 위기에 빠진 동화약방을 인수한 윤창식 5대 사장 역시 민족 경제 자립을 목표로 한 ‘조선산직장려계’와 ‘신간회’ 등을 지원했습니다. 윤 사장의 아들인 윤광열 7대 사장 역시 중국 상하이에서 광복군 중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무장투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일제 고문으로 반신불수 삶 살기도 


국내 최초의 교과서 출판사 미래엔은 1948년 문을 연 기업입니다. 당시 이름은 대한교과서. 대한교과서 창업주 김기오 선생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그는 대한교과서 이전에 운영했던 인쇄소 문화당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책자와 유인물, 선전물 등을 제작했습니다. 김기오 선생은 우리 민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신간회와 청년동맹 등에서 반일운동을 펼친 그는 결국 심한 고문으로 반신불수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도 교과서를 발행하기 위해 인쇄기를 직접 챙기는 등 평생을 문맹퇴치와 민족교육을 위해 살았다고 합니다.

대한교과서 창업주 김기오 선생(좌)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우)

출처미래엔 공식 블로그(좌) 효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우)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도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입니다. 조 회장은 섬유 생산 업체인 동양나일론을 효성그룹으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그는 1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3학년이었던 1926년 순종황제가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분노한 조 회장은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바로 6.10 만세운동입니다. 시위 주동자로 붙잡혀 종로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학교도 퇴학당했습니다. 그의 아들인 조석래 전 효성 회장은 평소 “1945년 8월 15일 라디오에서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나를 무릎에 앉히고 애국가를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목소리가 생생하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효성그룹은 이러한 조홍제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을 위한 지원금을 전달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사업가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를 들킬 경우 자신은 물론 온 집안과 회사가 함께 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켜온 창업주들의 애국정신을 후대 경영인들도 잘 이어받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jobsN 오서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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