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공학도가 MIT 연구원 그만두고 향한 곳

조회수 2020. 8. 3.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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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계 공학도는 어떻게 미국의 주목받는 언론인이 됐나

이동 로봇 연구를 하던 기계 공학도에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그래픽 기자(비주얼 저널리스트)가 된 신유진(37) 씨.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친 ‘토종 한국인’인 그는 미국에 건너가 융합디자인을 공부하고 ‘비주얼 저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3년간 일한 그는 2018년 미국 그래픽 스토리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학회인 ‘소사이어티 포 뉴스 디자인(Society for News Design)’에서 해마다 우수한 언론인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계기로 《워싱턴포스트》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기게 됐다. 6년째 미국 유력 언론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를 이메일과 전화 인터뷰로 만나봤다.

미국에 가기 전 한국에서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학부(고려대)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이동 로봇 연구를 했어요.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입사해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업무를 맡아 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즐겁지 않고, 딱딱한 직장 문화도 저와 잘 맞지 않았어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한 번도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더라고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어요. 또 제 전공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도쿄대 연구실에서 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을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포기했고요.”


‘자발적 백수’가 된 셈이네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책도 보고, 유튜브 강연도 많이 듣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어요. 특히 꿈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죠. 국제앰네스티에서 6개월간 인턴도 하고, 현지에 적합한 과학기술로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적정기술학회’ 활동도 했어요. 이 일들을 하면서 빈곤이 인권과 연결돼 있고, 또 빈곤 문제를 기술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이 서로 연결돼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걸 본 거죠. 그즈음 스탠포드 공대생들이 만든 디자인 회사 이야기를 읽고 융합디자인을 알게 됐어요. 저도 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뭔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융합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들을 찾아보고, 그중 뉴욕대(석사과정)를 선택했습니다. 절반 이상의 장학금을 제안받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조건이었어요.”


그 수업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제가 지원한 과정은 ‘인터랙티브 텔리커뮤니케이션(Interactive Telecommunication)’이었어요. 입학시험은 따로 없고, 프로젝트에 참여해 완성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지만 재미있게 공부했죠. 무엇보다 제가 이전에 했던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구성, 시뮬레이션 분석 등을 다 접목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항상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서인지 교수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죠. 졸업 후에는 MIT 도시계획연구원 데이터 시각화 전문 연구원으로 일했어요.” 


MIT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언론사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요.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신유진 기자의 프로필. 언론사에 따라 그래픽 리포터, 그래픽 에디터, 멀티미디어 에디터 등 명칭이 다르다. ‘비주얼 저널리스트’는 이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졸업 전에 《뉴욕타임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도교수님이 제 작품을 자주 소셜 미디어에 올려주셨는데, 그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회사를 방문한 날 그래픽 팀에 대한 소개를 받았는데 무척 흥미로웠어요. 그전까지 그래픽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언론사 쪽은 생각도 안 했거든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거죠. MIT 연구원에서 일하며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입사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면서 영예로운 상도 받았어요. ‘소사이어티 포 뉴스 디자인(Society for News Design)’에서 해마다 우수한 그래픽 스토리나 언론인을 선정하는데, 2018년 ‘미국 고속도로 병목현상 분석’으로 제가 수상자가 됐어요. 한국인으로는 첫 수상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후 《워싱턴포스트》에서 제의를 받고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지난 3월 26일 《워싱턴포스트》 온라인판에 실린 기사였죠?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증하던 한국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상황을 그래픽으로 재구성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3월 26일자에 소개된,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퍼진 한국의 특수한 집단 감염 상황을 다룬 기사. 31번 환자에서 시작해 급속도로 퍼져가는 상황을 네트워크 시각화 방식으로 표현했다.

“한국질병관리본부 데이터와 주요 언론 뉴스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냈어요. 당시 미국에서도 확진자 수가 점점 늘고 있을 때였거든요. 감염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데이터는 한국이 유일해서 잘 정리하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았어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을 고민하다가, 감염 경로와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춰 네트워크를 시각화한 그래픽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논의부터 완성까지 2주 정도 걸렸죠. 워낙 세계적인 관심사다 보니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또 미국 언론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다룬 것이 화제가 돼 한국 소셜 미디어에서도 많이 공유됐습니다.”


비주얼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신유진 기자의 자율주행자동차 안정성 분석 기사. 시뮬레이션 게임 기법이 접목돼 기사를 클릭하면 자동차가 주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죠. 정보를 어떻게 정확히 전달할지, 혹시라도 정보가 시각적으로 독자들에게 착오를 일으키진 않을지 검토합니다. 새로운 시도도 계속하고요. 가령 자율주행자동차의 기술적 한계를 게임의 형태로 전달하는가 하면,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때는 경찰들 간의 무선 대화를 통해 오디오 기반 스토리를 만들었어요. 내용에 따라 어떤 매체나 기술을 이용하면 좋을지,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항상 고민합니다. 또 디자인이나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고, 새로운 기술도 꾸준히 공부하고요.”


《워싱턴포스트》의 근무 환경은 어떤가요?


“하루 여덟 시간 근무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요. 지금은 코로나19로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직원들의 건강이나 복지를 중요시합니다. 밤샘을 하면 초과 근무시간만큼 휴가를 얻을 수 있고, 아파도 억지로 출근하기보다 병가를 내고 쉰 다음 좋은 컨디션으로 일하도록 권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에요.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는데, 다양한 경험 속에서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지금 그 일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까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독자들의 반응도 즉각적인데, ‘이런 거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보람도 많이 느껴요. 이 경험을 잘 쌓아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데이터 시각화를 가르치고 싶어요. 지금은 그게 새로운 꿈이자 목표입니다.”


데이터 시각화와 스토리텔링, 디지털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뉴스 

출처: 셔터스톡

정보의 홍수 시대, 바쁜 현대인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이미지를 더 원할 때가 있다. 이에 따라 뉴스 제작 방식이 변화하면서 비주얼 저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났다. 디자이너, 개발자, 기자 등 1인 다역을 소화하는 이들은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접목해 뉴스를 ‘디자인’한다. 멀티미디어 포맷이 강조되는 디지털 뉴스 환경에서 다양한 기술과 디자인을 사용하는 비주얼 저널리즘은 정확한 정보 전달과 함께 독자들의 빠른 이해를 돕는 전문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검색해 핵심을 추리고, 이를 시각화해 뉴스를 만든다는 점에서 취재·인용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뉴스 제작 방식과는 다르다. 지도, 사진, 그래프, 차트 등 그래픽 요소가 주를 이루는 ‘그래픽 스토리’,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를 통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뉴스 스토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증강현실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게임으로 쉽게 이해시키는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혁신적인 콘텐츠도 늘고 있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외국 유력 언론사들은 일찌감치 비주얼 저널리즘을 시도해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픽 에디터, 멀티미디어 에디터, 그래픽 리포터 등 회사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업무는 거의 비슷하다. 


비주얼 저널리스트가 하는 일 


데이터의 수집, 분석, 취재 등을 통해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을 찾는다. 데이터 이해가 첫 번째 과제다. 정보가 정리되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시각화할 것인지 결정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혀 좀 더 흥미롭게 만든다. 뉴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데이터 시각화가 글과 잘 어우러져 이해가 쉬운지 등 팀원들과 계속 논의하며 완성해나간다. 데이터 시각화 툴은 대부분 비슷하다. 같은 툴을 가지고 얼마나 흥미 있게, 또 정확하게 전달하느냐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 뉴스를 읽는 눈 외에 디자인 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업무는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팀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취재부서의 기자가 합류하기도 한다. 시의성이 중요한 주제일 때는 마감에 쫓기기도 하지만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심층 프로젝트도 많다. 


비주얼 저널리스트가 되려면? 


전공과는 무관하다. 미국 언론사의 경우, 포트폴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비주얼 저널리즘에 사용되는 컴퓨터 코딩 기술은 독학으로도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코딩 자료나 데이터 샘플, 데이터 시각화 툴은 온라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연습하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관건. 그동안 사용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하면 더욱 유리하다. 협업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토론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도 필요하다. 《워싱턴포스트》 비주얼 저널리스트 신유진 씨는 “혁신적인 포트폴리오와 협업 경험, 이 두 가지가 면접 때 당락을 가르는 중요 요소”라고 말한다. 


연봉 및 처우 


회사마다 투자 규모나 경영 환경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기자’라는 직함 아래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외국 언론사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직업에 대한 이해도 처우도 크게 부족한 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직장 평가 사이트인 글래스도어(www.glassdoor.com)에 따르면, 그래픽 기자의 연봉은 최저 3만 5000달러(약 4200만 원), 평균 5만 2107달러(약 6300만 원) 선이다. 미국의 경우, 비주얼 저널리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각 언론사마다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워싱턴포스트》만 해도 현재 20명이 일하고 있지만 계속 충원 중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중앙일보》에서 ‘그래픽 텔링’ 뉴스를 선보였다.


글 톱클래스 최선희 객원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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