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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여기 현지인으로 아시는데..저 한국 사람이에요

조회수 2020. 7. 28.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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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섬 헤이바 무대에 오른 댄서

김진아 오타히티(O Tahiti) 대표

하마터면 타히티 현지인인 줄 알았다. 치골까지 내려오는 폭포수 같은 흑발과 우물처럼 깊은 눈매, 미소를 짓다가도 강렬한 드럼 비트에 맞춰 관능적으로 몸을 흔드는 움직임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폴리네시아 제도의 타히티 전통춤, 오리타히티를 추는 김진아(36) 대표의 잔상이 오래 머릿속에 남는 이유다.


“19세기에 선교사들이 타히티에 들어오면서 오리타히티를 사실상 금지했어요.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악마를 부르는 주술 같다고 여겼죠. 수십 년간 배척해오던 전통춤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세기 중반이 다 되어서예요. 1956년 오리타히티 첫 댄스 그룹이 결성됐고, 1980년대부터 조금씩 발전했죠.” 


오리타히티는 무려 1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배척하고 금기시하던 폴리네시아의 전통춤이다. 1819년 타히티 부족장이던 포마레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강력한 종교적 법률 ‘포마레 코드(The Code of Pomare)’를 시행한 것이 금기 역사의 시작. 그 안에는 오리타히티뿐 아니라 타악기 음악, 마르키즈 제도에서 기원한 타타우(Tatau, 문신) 그리고 타히티 토속어를 모두 포함한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전통을 계승하며 살아왔어요. 춤의 원형을 보존하고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정이나 이웃에게서 귀로 듣고 입으로 전해진 탓에 표준화 작업이 쉽지 않아요. 타히티 정부는 매년 2회 춤 경연을 열어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오리타히티를 보존하기 위한 교육서를 만들고 있어요.” 


타히티와의 운명적 만남 

출처: 김진아 제공
2018년 타히티 현지 전통축제 헤이바 무대에 오른 김진아 대표. 헤이바는 100여 명의 댄서가 함께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는 대서사극이다.

2018년 타히티 최대 문화예술 축제인 ‘헤이바 이 타히티(Heiva I Tahiti)’가 열렸을 때 메인 무대인 토아타(To’ata) 광장 무대에 오른 김진아 대표를 본 적이 있다. 100여 명의 댄서가 우르르 무대에 흩어져 격렬하고 열정적인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환호하게 만든 열렬한 의식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는 코로나19로 축제가 취소된 올해를 제외하고 2018년부터 매년 헤이바 이 타히티의 경연 무대에 올랐다. 한국인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김 대표가 속한 그룹 ‘후라마이(Hura Mai)’ 댄서들은 높이만 1m는 돼 보이는 거대한 화관을 쓰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흔들림 없이 무대 위에서 한 시간을 불태웠다. 타히티에 처음 도착한 유럽 항해자들이 이토록 섹시하고 활기찬 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21세기에 헤이바 무대에서 만난 오리타히티는 더는 과거에 머무는 전설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숨 쉬는 열정이다. 


“무대에 오르려면 현지 팀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실력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해요. 무엇보다 팀의 리더에게 인정받아야 하죠. 타이완에서 열린 오리타히티 경연대회에서 2등을 수상한 경력이 현지 팀에게 믿음을 줬고, 최종적으로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춤의 향연이 고될 법도 한데, 김진아 대표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무대에 오르면 한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질 만큼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거죠.” 


첫사랑에 열렬하게 빠진 소녀처럼 이야기하는 그는 오리타히티를 만나기 전까지 타히티와 교집합이 전혀 없는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왔다. 


“호텔 관광업을 하려고 일본행을 택한 이후 영국, 중국, 타이완에서 10여 년간 살았어요. 타이완에서는 차(tea)를 알리고 판매하는 사업을 했고요. 일본에서 타히티 춤을 처음 접하고, 타이완에 살면서 오리타히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소리로 무대를 리드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부분은 우리나라 민중 예술과도 닮았어요. 무대 중간중간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오레로(Orero)’는 흥을 돋우는 판소리의 추임새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리타히티에 매료된 이유죠.”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출처: 이성근(겨울사진관)
오리타히티의 모든 의상은 댄서가 자연의 재료로 직접 만든다. 코코넛과 꽃, 잎사귀로 만든 의상은 춤의 다른 언어다.

4년 전 그는 무작정 타히티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천국 같은 이상향’의 세계로 묘사되는 남태평양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으리라. 그는 현지에서 가까워진 원주민의 집에 열흘 이상 머물며 그들의 삶과 전통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무대에 오른 그의 모습은 실제로 타히티섬에서 만나는 여느 댄서와 다르지 않다. 김진아 대표는 오리타히티를 우리 식에 맞춰 변형하기보다 전통을 고수한다. 코코넛 열매를 활용한 상의나 나무껍질로 만든 치마, 화관 등도 타히티 전통 그대로다. 훌라 댄서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다. 오리타히티는 종종 하와이의 전통춤, 훌라와 혼동된다. 


“가사가 있는 노래에 맞춰 추는 훌라와 달리, 오리타히티는 드럼 비트에 맞춰 격정적이고 빠르게 춥니다. 훌라가 선을 강조한다면 오리타히티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죠. 오리타히티는 크게 전통 타악기 토에레(To’ere) 비트를 살린 ‘오테아(Ote’a)’와 리드미컬한 노래의 ‘아파리마(Aparima)’로 분류하는데, 오테아에는 빠른 비트만 있어요. 힘 있고, 역동적이죠. 서정적인 아파리마를 출 때는 긴 드레스를 입고, 가사의 의미를 상징하는 몸의 기호로 표현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훌라는 익숙하지만, 오리타히티는 낯설다. 국내에서 오리타히티를 접하기도 쉽지 않다. 수십여 개의 오리타히티 전문학교가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김진아 대표는 타히티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데 노력한다. 오리타히티를 전문으로 하는 ‘오타히티’ 그룹을 만들고 서울시민청 예술가로 등록했다. SNS를 통해 그의 활동을 지켜보고, 오리타히티를 배우고 싶다고 연락해 오는 이들도 늘었다. 현재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40여 명이 오타히티 수업을 듣고 있다.


김진아 대표가 만든 오타히티 로고는 희망과 가능성, 연결의 의미를 지닌다. 오리타히티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타히티와 한국을 연결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은 바람은 이제 그녀의 삶 자체가 됐다.


“오리타히티 속에는 요즘 시대에 잃어가는 소중한 정서들이 있어요. 자연, 가족, 사랑, 기쁨과 같은 삶의 요소들이 담겨 있죠.” 


타히티 전통을 존중하며 그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김진아 대표의 모습에서 수천 년 전 미지의 세계를 찾아 파도를 거슬러 블루 라군에 다다른 인류 최초의 항해자, 폴리네시아인을 떠올려본다. 오리타히티라는 배에 올라 끝내주는 항해를 이어가는 개척자의 모습 말이다. 


글 톱클래스 신진주  

사진 톱클래스 서경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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