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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고깃집·호프집..닥치는대로 알바하다가 깨달았죠

조회수 2020. 7. 7.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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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워너비로 급부상 한소희의 세계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최고 시청률 28.4%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종영했다.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는 농밀한 감정 표현과 섬세한 연출이 더해지며 의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견고했던 부부 사이가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헛헛함을 함께 던지며 말이다.

의외의 지점은 하나 더 있었다. 그동안 욕먹기 급급했던 불륜녀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한소희가 분한 여다경은 ‘내 사랑만큼은 온전하다’고 굳게 믿는 불륜녀였다. 세간의 시선에도 앞뒤 재지 않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돌진했고, 그 결과 남에게 준 상처가 고스란히 자신을 할퀴는 비수로 돌아와 끝내 파국을 맞이한 인물이다.


한소희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지인들로부터 50개가량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죄다 욕이었다. 지인들조차 극중 지선우(김희애)를 응원했다. 재밌는 건 금단의 열매를 취한 여다경은 욕을 먹은 반면 그를 연기한 한소희의 팬은 늘어난 점이다. “여다경은 싫지만 한소희는 좋다”는 응원이 적지 않았다. 


“대본을 보면서 이 드라마는 무조건 시청자의 흥미를 끌 거라 생각했어요. 높은 연령층만 환호할 줄 알았는데 20대까지 인기를 얻은 건 예상 밖이었죠. 20대 여성들이 다경이의 입장을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 그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해준 게 아닐까 싶어요.” 


여다경은 싫지만 한소희는 좋다 


살아가며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감정을 연기한 한소희는 스물여섯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여다경의 사랑은 씁쓸했고, 비참함과 패배감이 짙게 배어났다. 신뢰가 무너진 부부 사이가 유발한 지독한 염증은 〈부부의 세계〉에 ‘비혼 장려 드라마’라는 비판을 가져왔다. 직접 연기를 한 한소희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랑만으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부부의 세계〉 이후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내 자신이 단단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야 상대를 사랑하고 가정을 이끌 수 있겠더라고요. 드라마를 촬영하며 많이 고통받았어요. 도덕적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그들의 심정이 이해 가는 게 불쾌했거든요. 그래서… 저, 결혼은 못 할 것 같아요.”


작은 얼굴에 선명한 이목구비로 묘한 매력을 풍기는 한소희는 첫 등장부터 눈길을 모았다. 불륜녀임에도 대범하게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쟁쟁한 선배 배우들 틈에서도 자극적인 장면조차 여유 있게 소화하며 자기 몫을 해냈다. 특히 가족들과 식사 자리에서 불륜 사실을 폭로하는 지선우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들 정도였다. 이제 데뷔 3년 된 배우가 37년 대선배를 가격하는 아찔한 순간. 한소희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그 장면을 많이 생각했어요. 사실 저도 너무 충격이 커서 그때 상황이 잘 생각나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한소희에게 김희애는 특별한 존재다. 〈내 남자의 여자〉 속 김희애의 불륜 연기를 보며 캐릭터를 연구했고, 김희애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이제 막 연기의 맛을 알아가는 신인 배우의 연기관을 흔들어놓은 것도 김희애였다. 


“김희애 선배님이 ‘배우는 가장 정상적 일상을 하고 있을 때 건강한 연기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연기에 집중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쌓여야만 원숙미 있는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슬픔을 표현하는 결이 두 가지 정도 된다면 김희애 선배님은 다섯 갈래, 열 갈래로 표현하는 분이에요. 연습과 노력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결이 있는 거죠. 저도 많은 경험을 쌓고 여러 방면에서 영감을 받으려 해요.” 


한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한소희는 배우 활동 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먼저 주목받았다. 광고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모델 일을 하다가 2017년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로 정식 데뷔했다. 〈돈꽃〉 〈백일의 낭군님〉 〈옥란면옥〉 〈어비스〉에 이어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으로 활약하며 제56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신인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데뷔 3년 만에 슈퍼 루키의 자리를 꿰찬 것. 광고계의 러브콜도 쇄도했다.

드라마의 후광을 무시할 수 없으나 그의 진짜 인기 비결은 요즘 20대 여성을 대변하는 데서 나왔다. 예쁘고 단정한 이미지의 여배우는 많다. 솔직하고 당찬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한소희는 다르다. 〈부부의 세계〉 시청률이 승승장구하던 무렵 덩달아 그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는데, 쇼핑몰 모델로 활동하며 찍은 타투 모습과 흡연하는 과거 사진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졌다. 한창 주가를 높이는 신인 배우 입장에서 전전긍긍할 법도 한데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때의 모습도 저고 지금의 모습도 저예요. 그 사진들은 불과 3~4년 전의 모습인 걸요. 드라마가 잘될수록 저의 많은 부분에 집중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전혀 아무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부분들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죠. 제가 자신에게 솔직하면 된 거 아닌가요?” 


이후 한소희의 인기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매력을 어필하는 기회가 됐다. 지금까지도 포털사이트에 한소희를 검색하면 ‘타투’ ‘담배’가 가장 먼저 뜬다. 연관 검색어를 삭제하며 대처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말처럼 신경 쓰지 않는모양이다. 묘한 분위기에 당당한 이미지가 더해지자 한소희는 ‘한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이 점차 개방적으로 바뀌며 30~40대 연예인을 중심으로 변화된 인식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20대 여배우에겐 아직 조심스러운 게 사실. 그 간극에서 20대가 느끼는 갈증을 한소희가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광고업계가 그를 눈여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륜녀 캐릭터, 흡연하는 여배우는 광고와 거리가 멀었다. 모델 이미지가 자칫 제품 이미지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소희는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드라마 배우 브랜드 평판에서 김희애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로레알파리’ 헤어제품, 섬유향수 ‘에프다이어리’, 음료 ‘따옴’, 스포츠 의류 ‘배럴’ 등 젊은 여성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 등장하며 대세를 입증하고 있다. 한소희는 분명 틀을 깨고 있다. 


미술 전공생 울산 아가씨의 씩씩함 


한소희가 2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근저에는 자신의 치열했던 과거의 경험이 깔려 있다. 아무것도 없이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주얼리숍, 옷가게, 고깃집, 호프집, 장난감 가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팍팍한 서울 살림을 해나가던 중 우연히 시작한 모델 일을 하며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돈 대신 꿈을 좇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 익숙해져 고정 수입이 없으면 불안하기도 했다.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에 출연한 후에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20대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요즘처럼 밀려드는 스케줄에도 “바쁘고 힘든데 힘들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의 경험에서 비롯된 마음가짐이다. 한술 더 떠 “몸이 힘들어도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기분이에요. 육체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론 전혀 힘들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울산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한 한소희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올린다. 블로그는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고 일기장처럼 하루를 쏟아내는 곳이다. 공식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팬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서로를 격려하는 장이 됐다. 한소희는 예전의 자신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잔잔한 응원을 띄우기도 한다. 


“보다 인간적으로 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블로그에 글을 자주 남겼어요. ‘감사해요’ ‘행복해요’가 아니라 ‘힘들지 않나요’ ‘밥 잘 챙겨 먹어요’와 같이 일상에서 하는 말을 적었죠. 제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에 20대 또래들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한 거예요. 저도 소소한 하루의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걸 나눌 상대가 없었나 봐요.” 


한소희를 향한 수많은 스포트라이트.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법을 안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감사한 마음과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며 자신을 낮출 줄도 안다. 또 타인의 고단함에 공감하며 위로할 줄도 안다. 20대 또래의 ‘워너비’ 스타로서 자질은 충분하다.


“기초가 튼튼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을 텐데 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게 기초가 튼튼하면 좋겠어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거든요. 더디더라도 천천히 오래가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오른 기나긴 레이스, 이제 겨우 시작점을 밟았을 뿐이다. 한소희의 세계는 지금부터다. 


글 톱클래스 선수현 

사진제공 9ato엔터테인먼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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