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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자퇴 후 방황하다 29살 재입학, 그게 신의 한수였죠

조회수 2020. 9. 16.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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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에 대학 졸업장 딴 한국인 구글 디자이너가 하는 말
대학 중퇴→재입학 후 10년 만에 졸업
한국·독일에서 7년 경력 쌓고 구글 이직
“작은 성취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무슨 일을 하든 대학 졸업장은 따 놓자고 생각했어요. 29살 때 4학년으로 재입학했는데, 그 선택이 인생을 바꿨습니다.”


최영우(40) 구글 제품디자이너는 미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시골 학생이었다. 2001년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했지만, 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했다. 2004년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20대를 보냈다. 2009년 4학년으로 재입학한 그는 서른 살에 디자이너의 길에 뛰어들어 7년 만에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 입성했다. 늦깎이 대학 졸업생에서 한국·독일·미국 3개국에서 활약한 디자이너가 된 그의 사연이 궁금했다.

출처: 본인 제공
최영우(40) 구글 제품디자이너.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구글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국내 산업디자인 회사 SWBK에서 3년, 클라우드앤코에서 2년 동안 경력을 쌓았어요. 그 후 독일 뮌헨 designaffairs에서 2년 일하고 2018년 구글 본사로 이직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주로 모바일 관련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는지.


“원하던 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학교에 가서 보니 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2004년 중퇴하고 2009년 재입학하기까지 몇 년을 방황했어요. 돈을 벌어서 카페나 레스토랑을 차릴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학교로 돌아갔어요. 뭘 하든 일단 대학 졸업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4학년으로 재입학해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가 전환점이었어요.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즐거운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현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내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졸업한 뒤에는 무슨 일을 했나.


“졸업하기 전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이 디자인 에이전시 SWBK를 시작하면서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성적은 평균 수준이었지만, 반 친구들과 재미있게 디자인하는 모습을 교수님이 좋게 봐주셨어요. 삼성·LG·CJ·대림·코웨이 등 기업 고객을 상대로 수십여가지 제품·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했습니다. 그 후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클라우드앤코로 이직했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시계 ‘닷 스마트워치’와 일레븐플러스의 탁상용·휴대용 선풍기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이때까지 5년간 쌓은 경력이 외국으로 이직할 때 큰 도움을 줬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최 디자이너가 클라우드앤코에서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닷 스마트워치’와 일레븐플러스 선풍기.

-한국 생활을 접고 독일로 갔다. 외국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


“우리나라는 디자인 선진국이지만, 애플·MUJI·나이키 등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곳은 대부분 외국 회사예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일하는 걸 꿈꿨어요. 내 실력이 한국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해마다 도전 의식도 커졌어요. 디자이너에게 독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현대 건축·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Bauhaus)가 태어난 곳이니까요.”


-독일 생활은 어땠나.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문화 덕분에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연봉이 높은 편이고, 안전해서 가족과 함께 살기에도 좋아요. 다만 직장 생활은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독일 디자인은 실용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가 있어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취향이 들어간 디자인이 그리웠습니다. 또 언어 문제도 있었어요.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영어로 하지만, 독일 직원이나 저나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완전하게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고객이 영어를 쓰기 불편해하기도 했고요.”


-구글로 자리를 옮긴 계기는 뭔가.


“지금은 구글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내부 추천을 받았어요. 구글로 이직하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브랜드를 알아줄 만큼 인지도도 높고, 하드웨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디자인 분야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고 더 발전하고 싶었어요.”

출처: Google 유튜브 캡처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식사하는 직원들.

-면접과 비자 발급 과정은 어땠나.


“구글은 디자이너로서 능력도 평가했지만, 기존 팀원과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중요하게 봤어요. 2~3주에 걸쳐 전화·대면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취업비자가 필요해요. 면접을 보기 전 채용 담당자와 함께 비자 발급 가능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발급하는 O1 비자를 받았어요.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매체에서 소개한 작업물, 수상 내역과 추천서 등을 제출했습니다. 발급까지 3개월이 걸렸어요. 요즘 미국 회사에서는 현지에서 학교를 나와 취업하는 게 아니면 취업비자(H1B)보다 O1 비자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구글 근무환경도 궁금하다. 장단점이 있다면.


“기본적인 근무시간과 휴가는 일반 회사와 비슷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팀 단위로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근무 시간은 본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어요. 휴가는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쓰는 편입니다. 미국에 와서 둘째가 생기는 바람에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개월 동안 유급 출산휴가를 썼어요. 팀이 바쁠 때였는데 동료들에게 축하도 많이 받았고, 어려움을 겪지 않게 챙겨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복지 쪽으로는 사내 레스토랑과 카페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데 구글에 온 뒤 체중이 많이 늘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업무가 아닌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하게 지냅니다.”


-한국·독일·미국의 사내 문화를 비교해 달라.


“회사 규모가 달라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선 일이 많아서 야근을 자주 했어요. 인턴부터 대표까지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했어요. 독일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이 완벽한 생활을 했어요. 상사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개인의 삶을 중요시했어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복지가 좋아서 근무환경에 의미부여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움받을 수 있어서 편안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요. 직원의 판단에 일을 맡기는 문화가 있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큽니다. 미국은 조직을 우선시하는 한국 문화와 독일의 개인주의가 섞여 있어요.”

출처: 본인 제공

-디자이너로서 꼭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디자인을 사랑하는 겁니다. 일 자체가 즐거우니 일할 때도 행복해요. 자연스럽게 열정도 생기고요. 주변에 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를 보면 모두 본인의 일을 즐겨요. 이 마음가짐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


“‘Better late than never(안 하는 것보다 늦은 게 낫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우등생도 아니었고, 30살 때 대학 졸업장을 땄어요. 그때만 해도 ‘당장 내 몫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작은 성취가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포기하지 말고, 조금은 늦어도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구글에서 계속 성장하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앞으로 경험이 더 쌓이면 더 의미 있는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보다 먼 꿈은 개인 디자이너로 독립하는 거예요. 제가 디자인한 제품에 둘러싸여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업무가 끝난 뒤에도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언젠가 디자이너 최영우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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