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부터 총리까지..제가 이름 써줘야 고위직 됩니다

조회수 2020. 9. 17.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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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단 3명만 경험한 공직..조선시대 이조 좌랑급인 이 직업
국내에서 3명만이 거쳐 간 공무원 필경사
1년에 7000~8000장 임명장 작성
조선시대 이조 좌랑급에 해당
임명장

정부청사관리본부 시설관리과장 기술서기관 심홍근

국가공무원법 제40조의4 제1항 제4호에 따라 부이사관에 임함

2019년 10월 31일

대통령 문재인

가로 26㎝, 세로 38㎝의 임명장. 정갈한 반흘림 궁체에 인쇄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5급 공무원부터 국무총리까지 대통령 명의의 국가직 공무원 임명장을 쓰는 공무원이 따로 있다. 인사혁신처 심사임용과 소속 5급 공무원으로 흔히 '필경사(筆耕士)'라고 불린다. 과거에도 관리를 임명할 때 이름과 직책을 썼다고 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정확하진 않지만 조선시대 이조가 인사혁신처 역할을 했다면 심사임용과 소속 공무원은 좌랑(佐郎·육부 또는 육조 정6품 관직)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대째 이어오는 필경사


현재 우리나라 3대 필경사는 김이중(45) 사무관이다. 1962년 필경사 보직이 생기고 1대 필경사 정태룡 사무관이 1995년까지 일했다. 2대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근무했는데, 당시 실·국장을 제외한 부처 직원 중 유일하게 삐삐를 소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떨어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 사무관은 1대와 2대를 이어 2008년 5월부터 3대 필경사로 근무하고 있다. 전에는 장·차관급 임명장만 손으로 썼지만 2009년부터는 사기를 북돋우려고 5급 공무원부터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일이 많아져 김동훈(43) 주무관과 함께 임명장을 쓰고 있다.

출처: jobsN
김이중 사무관

◇1년에 8000장, 하루 평균 30장 작성


김이중 사무관과 김동훈 주무관이 1년에 쓰는 임명장만 7000~8000장이다. 하루 평균 각 15장을 쓰는 셈이다. 인사가 몰려있는 연말과 연초에는 더 바쁘다. 정부 기관마다 60~70장의 임명장을 써야 한다. 임명장은 미리 써놓을 수 없기 때문에 밤새거나 주말에 근무할 때도 많다고 한다.


임명장 한 장에 들어가는 글자 수는 30자 정도. 임명장은 한글 중 가장 알아보기 좋고 대중화한 궁체(宮體)로 쓴다. 이걸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이다. 이 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해야 제대로 된 임명장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중간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누군가 말을 걸면 흐름이 끊겨 쓰던 임명장을 버리고 새로 쓴다고 한다. 김이중 사무관은 한 장의 임명장을 위해 4장의 파지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이 쓰는 벼루는 40만원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붓과 벼루를 쓴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 30분 정도 먹을 갈며 마음을 다듬는다고 한다.   

출처: jobsN
김이중 사무관이 쓴 임명장

◇경쟁률 9대1 뚫고 합격


김이중 사무관이 서예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고 재능이 있어 대학에서도 서예과를 전공했다. 군대에서도 '모필병(붓글씨를 쓰는 병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필경사를 처음 알았다. 그는 jobsN과의 인터뷰에서 "빨간 국새가 찍힌 훈장증을 봤는데 멋있었다. 글씨는 누가 썼을까 궁금해하다 필경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졸업 후인 2003년 행정자치부 상훈과(훈장증을 필경하는 부서)에서 훈장과 표창장을 쓰는 직원이 퇴직하면서 필경 직무 개방형 공모가 올라왔다. 서예학회와 학교 추천을 받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원했다. 주어진 시간에 임명장을 작성하는 실기 시험과 면접을 보고 9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김 사무관은 "당시 손을 바들바들 떨 만큼 긴장했지만 운이 좋아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6급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름으로 주는 표창장을 쓰는 일을 담당하다가 2008년 5월부터 임명장을 쓰는 일을 맡으면서 3대 필경사가 된 것이다. 2015년 4월에는 사무관 임명장을 받았는데, 그 임명장도 직접 썼다. 연봉은 5급 사무관 호봉을 받는다.

출처: 인사처TV 유튜브 캡처
제 64기 5공채 입교식

◇10년이 지나도 계속하는 글씨 연습


표창장부터 시작해 글씨를 쓴 지 17년째지만 글씨 연습은 계속한다. 김 사무관은 "아직도 글씨에 만족 못 한다. 필경사들은 평생 먹을 갈아도 벼루 하나를 다 못 쓴다. 추사 김정희는 먹을 갈다가 벼루를 몇 개씩 뚫었다고 하는데, 벼루에 구멍 뚫는 날이 오면 달인으로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이중 사무관은 글씨를 쓸 때마다 항상 ‘돈 벌기 위해 글씨 쓰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한다. 그는 “5급 이상 임명장은 평생 한 번 받는 사람이 많다.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는 만큼 정성껏 만들자고 항상 되새긴다. 또 이 임명장이 공직자로서 초심을 다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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