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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안나가 노래 잘한다고요? 제 과거 때문이죠

조회수 2020. 9. 17. 09: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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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 관객이 사랑한 공주, 그 목소리 주인공이 접니다
겨울왕국 ‘안나’ 역할 성우 박지윤
KBS 공채 출신 16년 차 베테랑
“성우가 나의 마지막 직업은 아니었으면”

“사랑은 열린 문 (Love is an open door)”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속 주인공 안나가 노래를 부르는 유명한 장면이다. 2014년 개봉한 ‘겨울왕국 1’은 1000만명, 2019년 개봉한 ‘겨울왕국2’는 13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어 더빙판 관객만 1·2편을 합쳐 약 800만명.

출처: '겨울왕국' 장면 캡처
영화 '겨울왕국2'에서 주인공 안나가 노래 부르는 장면

영화의 주인공은 ‘엘사’와 ‘안나’ 공주 자매다. 박지윤 성우는 이 중 동생인 안나의 더빙을 맡았다. 그는 2005년 KBS 공채 31기로 입사한 16년 차 베테랑 성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박지윤 성우를 만나 그의 성우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우 일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광고 CM송을 따라 부르고 TV에 나오는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놀았어요. 또 아버지가 배우 일을 하셔서 일찍부터 본 것도 많고 관심도 있었죠. 그래서인지 저희 집이 3남매인데 큰 오빠와 남동생도 영화·예술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박씨의 아버지는 배우 고(故) 박용식씨다. 그는 1967년 TBC 공채 탤런트 4기로 데뷔해 2013년까지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성신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했어요. 사실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성악과에서 배운 것도 많지만 그때 좀 더 용기를 내서 실용음악과에 갔으면 어땠을까 가끔 후회하기도 해요.

출처: 본인 제공
박지윤 성우

대학 졸업 후 동네 음악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성악과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가 성우 준비를 한다는 거에요. 마침 아버지도 ‘지금 방송국에서 성우 원서를 받더라, 성우 직업 좋지’라는 말씀을 흘리듯이 하셨어요. 그때 처음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죠. 친구가 1차 합격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자신감을 얻었죠. 일을 그만두고 성우 공채를 준비했어요.” 


-성우 공채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3년을 준비해 6번째 시험에서 합격했어요. 지원자 2500명 중에 6명을 뽑았죠. 그나마 KBS는 공영방송이라 지금도 매년 성우를 뽑지만, MBC는 2005년이 공채 마지막 기수에요. SBS는 원래 안 뽑았구요.  


프리랜서로 나오면 경쟁은 더 치열합니다. 모든 성우들은 전속 기간이 3년이에요. 지금은 2년으로 줄어든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공채에 합격해도 2~3년이 지나면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해야 합니다.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역할을 따내야 해요. 약육강식의 세계죠.” 


-더빙 작업이 많습니다. 영상 속 입모양과 목소리를 맞춰가며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노하우가 있나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더빙도 많이 할수록 늘어요. 저는 캐릭터의 표정을 따라 하면서 감정을 똑같이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들숨날숨까지 따라 하려고 해요. 그러려면 미리 영상과 대본을 보면서 연습을 죽어라 해야 하죠. 녹음 전에 영상과 대본을 미리 받아 맞춰보는 과정을 ‘시사’라고 합니다. 대본 내용으로 꿈까지 꿀 정도로 연습했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첫 작품이 미국 시트콤 ‘아이 칼리’였어요. KBS에서는 주로 라디오 드라마를 해서 더빙은 초짜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덜컥 주인공 역할을 받았어요. 시트콤이다 보니 시즌도 길고 대사 속도도 빨랐죠. 처음 시사하던 날 너무 힘들어서 울었어요. 그런데 몇 달 동안 울면서 하고 나니 더빙도 몸에 익더라고요. 그 뒤로 웬만한 역할은 크게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겨울왕국 2' 포스터

-겨울왕국 2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녹음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영화를 보셨겠네요.


“그런 셈이죠. 성우들은 시사를 위해 개인 파일로 영상을 미리 받아요. 영화는 개봉 전에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합니다. 디즈니도 철통보안으로 유명해요. 겨울왕국은 1편 때도 그랬지만 2편도 시사용으로 받은 영상이 최종본이 아니었어요. 그림에 색이 칠해진 장면이 거의 없었고 흑백 선으로 스케치만 대충 나온 장면도 많았죠.” 


-겨울왕국은 어른들도 일부러 찾아볼 정도로 한국어 더빙판이 인기가 많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죠. ‘Let it go(다잊어)’처럼 명곡도 많고요. 한국어로도 감동을 느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요. 많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디즈니 영화 중에 처음으로 한국어 버전 OST 앨범을 내기도 했어요. 저는 총 18곡 중에 6곡에 참여했어요.” 


박씨는 2009년 남편 정형석씨와 결혼했다. 정씨 역시 2006년 KBS에 공채로 입사한 성우다. MBN 인기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내레이션 목소리로 유명하다.

출처: 본인 제공
정형석 성우와 박지윤 성우 부부

-부부가 함께 성우 일을 하고 있어요. 남편과 같은 직업이라 좋은 점이 있다면요.


“저희가 결혼할 때 다들 왜 굳이 성우끼리 결혼하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좋아요. 서로의 일에 대해 잘 아니까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죠. 같이 일을 할 수도 있고요. 둘 다 프리랜서다 보니 조금 덜 안정적이라는 단점은 있죠.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성우의 수익구조가 궁금합니다. 


“프리랜서 성우는 개인마다 격차가 커요. 연차가 높다고 계약금이 더 많지도 않고요. 제가 16년 전에 처음 입사했을 때 월급이 83만원이었어요. 대신 수당을 백만원 단위로 받았죠. 전속 성우도 사람마다 수당이 몇십만~몇백만원으로 달라요. 다만 예전에는 전속으로 일할 때보다 프리로 나왔을 때 돈을 더 버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오히려 전속으로 일할 때 돈을 모아서 프리랜서 초반 몇 년을 버틴다고 하더라고요.” 


-성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공채에 합격한다고 끝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나오고 나서가 진짜 시작이라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역할을 따내기 위해 오래 기다리기도 하고 일이 없어 힘든 시기를 버텨야 할 때도 있죠.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주변에 성우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성우라는 직업을 싫어하는 분은 못 본 것 같아요. 어떤 기사에서 봤는데 성우가 만족도 높은 직업 5위더라고요. 그만큼 이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성우가 될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또 같은 공채 기수 안에서 20살씩 차이 나는 경우도 있어요. 혹시 성우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싶은데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꼭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출처: MBC 방송 화면 캡처(좌) 유튜브 '월드부부' 채널 캡처(우)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한 박씨(좌) 박씨 부부의 유튜브 채널(우)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성우 일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성우가 저의 마지막 직업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50살에도 공주 역할을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대학 때부터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는데 도전을 못 해본게 후회가 커요. 노래도 계속하고 싶구요.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열고 영상도 3~4개 정도 올렸어요. 앞으로도 방송이나 노래 등 새로운 일을 해볼 기회가 있다면 계속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글 jobsN 오서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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