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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후 ‘포차’ 차렸던 20살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고교 졸업후 포차로 시작, 20년만에 연매출 1000억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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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프랜차이즈’ 동참 ‘디딤’ 이범택 대표
포장마차로 시작, 마포갈매기, 연안식당 선보여
‘외식업계 전설’...미·동남아 등 해외진출도 활발
“초보도 사업으로 돈 벌 수 있게 디딤돌 되고파”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식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언택트(untact·고객과 직원이 만나지 않는 비대면 소비 현상) 선호도까지 오르면서 식당을 찾는 손님 발걸음도 뜸해졌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식당이 나오자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밥값보다 더 많은 금액을 얹어 미리 지불하는 ‘착한 선결제’ 움직임이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동네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자주 가는 식당에서 선결제했다”는 미담까지 나온다.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도 타격을 입은 건 마찬가지다. 가맹점주는 매달 본사에 일정 가맹비(로열티)를 지급한다. 고정비 부담이 커 매출의 급격한 감소는 폐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명륜진사갈비, 백종원이 이끄는 더본코리아 등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주에게 일정 기간 로열티를 받지 않거나 식자재 공급가를 깎아주는 등 상생 노력을 보여줬다.

이범택 디딤 대표.

출처디딤 제공

연안식당·백제원·마포갈매기 등을 운영하는 디딤도 2월 가맹점 로열티를 면제하고 계열사인 연안식당 주력 메뉴 꼬막비빔밥 1만개를 대구 의료진에게 기부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업계에서는 “20대 때 외식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대표가 가맹점주의 상황을 배려한 결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회사를 이끌면서도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범택(47) 대표는 포장마차로 시작한 ‘외식업계 전설’로 불린다. 그의 사연이 궁금했다.

출처디딤 홈페이지 캡처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포장마차 열어


이 대표는 199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장사를 시작했다. 손님은 많았지만, 불법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시민에게 신고당해 문을 닫아야 했다. 그 뒤로도 실내 포장마차를 했지만 주방장은 따로 있었다. 이 대표가 요리를 배우고 본격적으로 외식업을 시작한 건 1999년이다. 전 재산을 투자해 인천 연수구에 숯불갈비집 ‘대나무집’을 열었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 개점 이후 6개월 동안 이를 악물고 일했다. 입소문을 통해 매출이 늘기 시작했고, 6500원짜리 메뉴를 팔아 일 매출 600만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30평 남짓한 가게에서 하루에 900인분 넘게 판 셈이다.


매출이 고공행진하면서 분점도 여럿 냈다. 가맹점을 내게 해달라는 문의도 빗발쳤다. 큰 고민 없이 단골손님에게 가맹점을 내주기도 했다. 무분별한 확장으로 손님이 줄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금융위기까지 겹쳐 빚은 늘어만 갔다. 36살 때 그가 갚아야 할 돈은 18억원이었다. 결국 비교적 매출이 잘 나오는 매장 하나만 남기고 모든 가게를 팔았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쇠고기 양대창집이었던 가게의 메뉴와 상호를 바꿔 낸 음식점이 바로 갈매기살을 취급하는 ‘新(신)마포갈매기’다. 손님 반응은 뜨거웠다. 퇴사했던 직원들도 가맹점을 하나둘 열었다. 마포갈매기는 개점 2년 만인 2010년 100호점을 냈다. 2013년에는 450호점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화려한 부활이었다.

이 대표는 1999년 대나무집을 시작으로 20년 만에 연 매출 1000억원 기업을 만들었다. 오른쪽 두 번째가 이 대표.

출처디딤 제공

◇성공 안주 않고 외국 진출, 연안식당으로 대박


30대 때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쓴맛을 봤던 이 대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마갈비비큐’라는 이름으로 외국에도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홍콩·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대만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 LA·라스베이거스 등에서도 식당을 운영한다.


직영·프랜차이즈 브랜드도 늘렸다. 2013년부터 한정식집 백제원·일식집 도쿄하나·장어요릿집 오백년장어·이탈리아 음식점 풀사이드228 등을 연달아 선보였다. 디딤 매출은 2011년 356억원에서 2016년 690억원으로 2배가량 올랐다. 2017년 8월에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사업 확장에 성공한 뒤에도 이 대표는 공격적으로 브랜드를 출시했다. 2017년 9월 1호점을 연 해산물 요릿집 연안식당은 디딤의 제2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연안식당은 인천 출신인 이 대표가 마포갈매기를 이을 주력 브랜드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아이템이다. 시험 삼아 1호점을 열었는데 꼬막 요리로 대박이 났다. 연안식당은 2018년 12월 100호점을 돌파하고, 출시 1년 반 만인 2019년 4월 200호점을 냈다. 연안식당의 인기로 2018년 디딤 매출은 970억원, 영업이익은 44억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매출은 41%, 영업이익은 191% 오른 것이다.

디딤은 우리나라 최초 짜장면집으로 알려진 공화춘과 업무협약을 맺고 프랜차이즈를 열었다.

출처(왼)조선DB, (오)디딤 제공

◇외식업계 롤모델이 꿈, 가성비 브랜드 개발 매진


이 대표가 이끄는 디딤은 2019년 처음 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1999년 대나무집을 열면서 외식업에 뛰어든 지 20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이 대표는 성공한 외식업계 CEO지만, 별다른 외부활동 없이 계속 새로운 브랜드 발굴에 힘쓰고 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짜장면집으로 알려진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과 업무협약을 맺고 송도와 서울 서초에 공화춘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다. 이 대표는 공화춘 외국 시장 진출을 위해 2년 전부터 시장 조사를 하고 상표등록을 시작했다.


이 대표의 목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외식업계에서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아무 경험이 없는 사람도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디딤돌이 되고자 회사 이름을 ‘디딤’으로 지었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미국 등 외국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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