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처음 만난 '태그호이어'가 제 인생을 바꿔놨죠

조회수 2020. 9. 17. 09: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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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최초이자 유일한 동양인 시계 복원가입니다
‘제임스 안티크’ 오승현 대표
시계에 빠져 종로학원서 배우다 영국 유학
고시계 복원 기술 배우며 대영박물관 입성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800만점 이상의 역사유물과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또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유일하게 일했던 한국인이 있다. 바로 오승현(39)씨다. 그는 영국 박물관에서 수십, 수백년 전에 만들어져 멈춘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했다. 지금은 유럽에서 오래된 시계뿐 아니라 몇 백년 전 반지, 고서, 페이퍼 웨이트, 그림 등을 직접 사와 복원해 되파는 골동품 가게 ‘제임스 안티크’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본인 제공
오승현 대표

◇시계 좋아해 종로 시계 학원 거쳐 영국으로


오승현 대표는 여행을 가면 선물로 시계를 사오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세계 각국의 시계를 즐겨찰 수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3년 때 처음 태그호이어 시계를 차보고 고가 시계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관심은 계속됐다. 그러다 시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싶게 만든 시계를 만났다.


"25살 때 넉넉했던 집안 형편 덕분에 꿈의 시계라고 불리던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계를 손목에 차보니 시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군대에서 진로를 확실히 굳혔고 전역 후 종로에 있는 시계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진로가 나랑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하루 8시간 넘게 해도 지루한 줄 몰랐거든요. 시계 안을 들여다보면 시계의 가치가 드러나요.


고가의 시계는 열었을 때 사소한 부분이 달랐어요. 같은 부품이라도 손으로 직접 각인하고 깎기 때문에 디테일이 살아있거든요. 명품 시계가 그 값을 하는 이유지요. 그러나 화려한 디자인만 갖추고 비싸게 파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가격은 700만~1000만원대인데, 들여다보면 무브먼트(movement·수백 개에서 천 개가 넘는 미세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의 동력장치)가 쿼츠(quartz·전자식)거나 질이 낮은 경우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 시계의 가격은 10만원 안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 대표는 학원을 다니다 더 배워보고 싶어 유학을 결정했다. 부모님 반대도 있었지만 의견을 굽히지 않고 설득해 결국 응원을 받으면서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스위스 유명 시계 학교 보스텝(WOSTEP)과 영국 웨스트 딘 칼리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스위스는 아카데미, 영국은 대학원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시계 복원 분야에서는 세계 1위라고 알려진 웨스트 딘 칼리지 시계 복원과로 결정했어요. 학교에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실기·필기 시험을 봐야 한다고 답장을 받았습니다. 바로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영국 유학 당시 오승현 대표.

◇영국에서 시계복원과 진학


실기와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해 2010년 웨스트 딘 컬리지에 입학했다. 실기는 도면에 맞게 부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필기는 교양·지식을 묻는 시험이었다고 한다. 실기는 이틀에 걸쳐 진행했고 시계 복원에 필수인 손재주를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었다고 한다.


"운 좋게 입학했지만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말도 빠르고 억양도 다양해 영국 영어를 알아듣기가 벅찼거든요. 맥도날드에서 주문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수업은 20%만 이해했어요.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께 매번 질문했고 기숙사에서의 예습과 복습은 필수였습니다. 3개월 후 영국 영어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처음 접한 시계 복원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시중 제품은 고장 나서 A/S를 맡기면 부품을 교환해줍니다. 그러나 복원은 기본이 몇십 년 전 제품이고 100년~300년 전 물건도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부품을 만들어야 해요. 부품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계학, 산술학적으로 문제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어려웠지만 수백년 역사가 깃든 시계를 직접 복원한다는 짜릿함과 벅참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세계 어디서든 복원이 필요한 고시계가 생기면 웨스트 딘 컬리지로 문의를 한다. 고객이 시계를 맡기면 시간당 복원비를 낸다. 그 비용을 학교 운영에 사용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시계 상태와 수준을 파악하고 해당 시계와 잘 맞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일을 맡긴다. 고 시계 복원은 과정마다 클라이언트에게 상황을 공유한다고 한다.


“복원 전 시계 상태를 서류와 사진으로 남겨 고객에게 보내 복원 계획을 설명합니다. 나중에 자료나 (문제가 생길 때)증거로 씁니다. 만약 복원이 잘못되거나 훼손이 되면 가치가 높은 시계기 때문에 고객이 고소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에요. 복원할 때는 메이커 컨셉과 해당 제품 컨셉을 충분히 공부한 후 시작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시계 복원을 위해 분해한 모습(좌), 대영박물관에서 일할 때 복원한 슬레이브 클락. 지금도 전시돼있다.(우)

◇대영박물관 최초이자 유일한 동양인 시계 복원가


2년 정도 공부한 후 교수 추천으로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고 운과 실력이 따라야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당시 오승현 대표가 유일하게 박물관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복원가라면 대영 박물관을 꿈꿉니다. 당시 대영 박물관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승인을 받을 수 있었어요. 꿈만 같았지요. 출근하자마자 '워치앤클락' 갤러리에 있는 마스터 클락(Master Clock) 복원을 맡았습니다. 지금처럼 전자시계가 없던 때에 각종 관공서에서 기준으로 사용하던 시계에요. 이 마스터 클락에는 슬레이브 클락(Slave Clock)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입사했을 때 마스터 클락만 전시돼있고 슬레이브 클락 두 개는 창고에 잠들어 있었어요. 이걸 살리는 게 임무였습니다.


녹슨 부품은 잘 복원해 연결했고 없어진 부품은 새로 만들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시계였고 녹이 많아서 하면서도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결국 복원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어요. 일 시작한 지 3개월 후 정식 입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졸업 전에는 학생비자로 공부도 하고 일도 했지만 정규직으로 입사하려면 정식 비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직원 채용을 위한 비자 발급을 하기엔 영국 정부 정책상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EU 소속이 아닌 국가 출신을 채용하려면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하고 예산도 추가로 써야 하죠. 기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비자 문제는 계속됐다. 오 대표의 이력을 보고 채용을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비자 문제를 얘기하면 발을 뺐다고 한다. 그는 “내가 이상한 나라에서 온 것도 아닌데 내 국적을 무시 받는 느낌을 받았다”며 “귀국 계획이 없었지만 비자로 더 속 썩고 싶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출처: 제임스 안티크 캡처
1917년대 골드 Omega와 1920년대 골드 롤렉스 Oyster
출처: 제임스 안티크 캡처
1880년대 프랑스 탁상시계

◇명품 브랜드 다루다 내 몸에 맞는 옷 찾아 퇴사


2013년부터 2019년 말까지 프랑스, 스위스 명품 회사에서 일했다. 본사와 프로젝트 진행, 사업 분석 등을 담당했다. 영국에서는 직접 시계를 만지고 현장에서 일했다면 한국에서는 서류 업무를 맡은 것이다. 한국과 해외를 오가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도 받았지만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사무실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2019년 말 퇴사했다.


“한국에서 유럽 시계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유럽의 고시계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임스 안티크(james’ antique)’를 차렸습니다. 유럽에서 직접 산 오래된 물건을 복원해서 판매하는 곳이지요. 1910년대 롤렉스 시계, 1900년대 반지, 1880년대 탁상시계 등이 있습니다.


그 중 영국 유학할 때 직접 경매에 참여해 산 1880년대 탁상시계가 가장 소중합니다. 1880년대에 흔치 않은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시계고 보자마자 꼭 사서 복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지금은 매출을 내기보다는 한국에서 이런 앤틱 제품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조금 주춤하지만 앤틱 제품을 사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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