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화장도구제조업' 청년의 현재 모습

조회수 2020. 9. 17.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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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듯 강하고, 고고한 듯 겸손한 남자
〈미스터트롯〉의 신데렐라 임영웅

“무얼 믿은 걸까 부족했던 내게서, 나조차 못 믿던 내게 여태 머문 사람.” 트로트 가수 임영웅(29)이 지난 4월 4일 담담 히 불러 나간 신곡 ‘이제 나만 믿어요’의 첫 소절은, 어쩌면 스스로 되돌아보는 말일지 모른다. 이 길 이 맞는지, 여기까지 오는 게 맞는지 몇 번이고 되 묻고, 포기할까 주저했던 시간들을 그는 곱씹고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마주 앉은 그는 “아직 도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명이나 다름없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고 제 음악을 많이 들어 주셔서 정말 좋아요.” 그는 섬세한 듯 자상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치 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겐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또 누군가에겐 평온한 위안을 선사한다. 부드러운 강함과 고고한 겸손. 임영웅은 공존하기 힘든 이 형용 모순적 성질을 두루 지녔다.


방송으로 약 3개월, 예심부터 6개월간 이어진 TV조선 〈미스터트롯〉에서 ‘진(眞)’의 영예를 안으 며 대장정을 마친 임영웅. 그는 최근 몰려드는 방송, 광고, 각종 화보 등으로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2㎝의 훤칠한 키에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을 가진 그는 팬들 사이에서 ‘비율 진 (眞)’으로 불린다. 머리 스타일 변화에 따라 ‘덮웅’ ‘깐웅’ ‘반깐웅’ ‘밤송이웅’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삐걱대는 듯한 춤 솜씨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으로 각종 ‘멍뭉미’(강아지 같은 귀여움) 짤을 대방출하는데다, 툭툭 터져 나오는 예능감까지…. 이런 그 에게 각종 러브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팬덤’도 막강하다. 그의 팬카페 ‘영웅시대’ 회 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극복을 위해 5일 만에 1억4500만원을 모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영웅은 하나의 신드롬이 돼가고 있지만, 그는 갑자기 오른 왕좌의 자리에 얼떨떨해했다. “이렇게 모든 세대가 트로트를 즐기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정말 너무나도 원하고 바라왔던 일인데, 이런 행운이 믿어지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미스터트롯〉에선 경쟁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이 사람과 경쟁하겠다’가 아니라 ‘내 노래를 잘하자’라는 마음이었어요. 무대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 순간을 오롯이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굶어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임영웅은 2016년 <미워요/소나기>라는 앨범으로 데뷔했다. 그의 말마따나 꿈에 그리던 데뷔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그 길로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며 말을 이었다. “앨범을 내도 불러주는데가 없었어요. 손 벌릴데도 없어서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노래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어요. 다른 노래를 부른 커버곡도 올리고, 행사 현장도 올리고.” 유튜브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구독자가 서서히 늘면서 팬도 생겼고, 〈미스터트롯〉이 시작할 때쯤엔 구독자가 2만5000여 명이 됐다. 그의 영상은 구독자 수에 비해 영상당 조회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유튜브로 수익이 난 건 아니지만,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구독자 2만명 달성하는데 5년 걸렸는데, 〈미스터트롯〉 방송 석 달간 40만명이 넘었어요. 자꾸 이게 꿈인가 싶어요.” 그는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팬들 사이에서 ‘애착모자’로 불리는 모자 아래로 미소가 찬찬히 번졌다. 무표정할 땐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수술 바늘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초등학교 때 다쳐서 30바늘 정도 꿰맸던 자국이다. 녹슨 쇠가 관통한 사고로, 그의 어머니 표현에 따르면 “피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성인이 돼 재수술도 고려해봤지만 입속부터 해야한다는 대공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성공 여부도 장담할 수 없어 포기했다.


“이 상처 때문에 노래 부르기 힘들거라 생각 한 적도 있어요. 트로트 가수는 웃는 얼굴이 생명이거든요. 관객과 눈 마주치며 어떻게 하면 그분들이 기분이 더 좋아질까를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제대로 미소를 지으려면 상처 난 쪽에 힘을 더 줘야 해요. 한 관객이 한껏 흥이 올랐다가 제 얼굴의 상처를 보자마자 놀라는 반응에 혼자 운 적도 있어요.”


인생을 걸고 출전한 〈미스터트롯〉


임영웅은 일찌감치 가수를 꿈꿨다. 경복대 실용 음악과를 졸업한 뒤 여러 노래대회에 참가했다. 차가 없어 각종 악기를 직접 이고 지고, 버스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전환의 계기가 찾아 왔다. “트로트가 어울릴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무심코 출전한 가요제에서 트로트로 대상을 받았다. 2015년의 일이다. 그즈음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나 트로트 가수로 자리 잡게 됐다. 지금이야 최고의 인기 트로트 가수로 우뚝 섰지만, 한때는 트로트로 인해 수많은 등 돌림을 경험 해야 했다. “유튜브에 차마 못 올린 버스킹 영상도 정말 많아요. 어떻게든 트로트를 알리려고 거리에 나왔는데, 발라드를 할 때는 그래도 들어주다가 트로트만 시작하면 등 돌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시는 분 붙잡고 한 번만 들어달라고 애원하기도 해 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 눈물은,
제가 자꾸 눈물을 흘렸던 건,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였어요.
왜 그 노래를 선택했는지 알려드릴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미스터트롯〉이 굉장히 잘 전달해줬지요.”

인생을 걸고 출전한 〈미스터트롯〉. 절실했기에 그의 어깨는 더 무거웠다. 언제라도 탈락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항상 그를 엄습했다. 녹화와 첫 방송 간의 시간 차는 두 달. 방송 뒤 인기를 미리 체감할 수도, 예감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가 최고의 무대로 꼽는 ‘트롯에이드’ 에이스 전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의미가 남다르다. 세 명의 다른 팀원의 목숨이 걸린 경연. ‘그냥’ 잘해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전보다 더 낫게 부를 순 없을까,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에 갇혀 숨이 막힐 것 같다고 느낄 즈음, 마이크로 쫙 빨려드는 소리에 귀가 트였다. 평소 즐겨 부르던 휘파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길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놓아버릴까 하는 순간 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축적된 시간이 길잡이가 돼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공식 유튜브에서만 20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임영웅이 가는 길은 곧 기록이었다.


눈물의 이유


경연에서 자꾸 흘러나온 눈물은 그런 세월이 복받친 결정체였다. 수많은 벽 앞에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섯 살 때 돌아 가신 아버지, 넉넉지 않은 삶, 쉽게 인정받지 못한 노래 실력…. 그에게 삶은 어쩌면 고단한 계단이었는지 모른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계단. 그는 대중에 자신을 대번에 알린 ‘바램’ 가사를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그는 목소리로 시를 썼다. 그가 속삭이듯 읊조리는 한 단어 한 단어는 듣는 이의 마음에 내려 앉아 위로의 손길로 다가왔다. 담담해서 더 절절 하고, 담백해서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인생곡 미션에서 선택한 ‘배신자’는 어머니에 게 바치는 노래였다. 현재의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홀로 됐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여자 홀로 아이 를 기르며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며 고른 곡이었다. 어머니를 향한 곡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눈물은, 제가 자꾸 눈물을 흘렸던 건,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였어요. 왜 그 노래를 선택했는지 알려드릴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미스터트롯〉이 굉장히 잘 전달해줬지요.”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한 적 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취업을 하려는데, 가족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오라는 거예요. 거기에 ‘세대주 사망’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었어요. 남편 떠난 충격을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남편 없는 여자라고 얼마나 무시할까, 이런 생각이 덜컥 밀려왔지요. 오죽하면 동장님한테 사망이란 글자 없는 건 없느냐고 물었어요. 아이 혼자 키우는 엄마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무시 안 당하고 떳떳하게 취업할 수 있게 도와주면 안 되냐고 울며 매달렸죠.”


환한 봄볕 같은 사람


임영웅은 어머니의 절규의 의미를 일찌감치 알았던 것 같다. 군 제대할 무렵 어머니가 그에게 “(가수 대신) 직업군인 하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했을 때, 임영웅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엄마 말대로, 말뚝 박을까”라고 답했다. 어머니 기대에 어긋난 적 없었고, 늘 어머니를 웃음 짓게 만든 아들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아 하고픈 건 뭐든 이뤄냈다. 축구 선수가 되겠다더니 학교 대표 축구선수가 됐고, 5년 넘게 태권도를 배우는 동안 직업으로 삼으라는 권유도 숱하게 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전국 노래자랑 출전 당시 그의 직업은 ‘화장도구제조업’ 이었다. 당시 그는 퍼프 만드는 일을 했다. “퍼프를 찍어서 자르는 일을 했는데, 화장 도구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BB크림만 찍어 바르다 파운데이션을 알게 됐고, 섀딩에 눈썹도 그려봤죠. 〈미스터트롯〉 안 나왔으면 아이라인 그리는 것까지 발전할 수도 있었어요.(웃음) 아이돌 눈 화장이 너무 예뻐서 저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하하.”


입대하면서 그는 “나 제대할 때 엄마 애인 꼭 만드는 거다!”라며 소리 높여 말했다. ‘2020년 엄마 1억’이라는 메모 이야기에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아기 때부터 엄마 뭐 해주겠다고 노트에 꾹꾹 눌러 수없이 썼던 아이예요. 길 가다 예쁜 집을 보면 ‘엄마, 저 집 이다음에 내가 지어줄게’라는 말을 꼭 했지요.” 누군가는 그에게 어둠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항상 봄볕 같은 사람이었다. 눈부신 어느 해 봄날 그들의 곁을 떠났던 아버지의 따스한 등처럼.


지독한 연습벌레


임영웅은 지독한 연습벌레다. 호흡을 어디서 쉴지, 어디서 세게 부르고 약하게 할지를 연습하고 또 했다. 노래 부르다가 멈춰도 보고, 강약도 주고, 긁어보기도 하고, 또 살살 불러보기도 하면서 수 만 개 조합 중에서 최적의 소리를 찾은 뒤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했다. 하루 연습시간이 열 시간을 넘기 일쑤였다. “당장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애초 마음은 ‘1라운드만 통과하자’였죠. 트로트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거든요. 영탁이 형도 그래요. 그렇게 가까운 사인데도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어요. 노래 들으면서 입이 떡 벌어졌잖아요. 저는 스스로도 엄청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좋게 봐주신 분들의 힘이 커요. 〈미스터트롯〉이 정말 신기한 게, 자신이 갖고 있는 걸 몇 배로 보여주는 무대 같아요.”

그는 트로트를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한 게
아니었다는 말을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위인전 한 토막 같은 그의 〈미스터트롯〉 서사가 영웅 신화로 승화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변함없이 노래하겠다”고.
임영웅은 임영웅이니까.

그렇다고 그가 형식에만 얽매인 건 아니다. 형식적 완성도를 넘어 임영웅식 감성 트로트 세계를 구축해왔다. 목소리에 서린 따뜻함과 배려는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이 됐다. 감정 이전에 발음 완성도부터 남다르다는 평가도 있었다. 유튜브 채널에서 화제가 된 ‘데스파시토’ 커버 영상에서 특히 그의 발음이 빛났다. “스페인어로 된 ‘데스파시토’(푸에르토리코 가수 루이스 폰시의 노래)가 유튜브 조회수 1위라는 걸 접하고 더욱 도전하고 싶었어요. 너무 불러보고 싶어서 이틀 밤낮을 새워가며 외웠죠. 팬분들 이 ‘딕션(발음)’을 말씀하던데, 어릴 때부터 반 친구 들 앞에서 소리 내서 읽는 걸 좋아했어요. 손 들고 나서서 읽곤 했죠. 지금 당시 영상을 보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지금은 좀 더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무대에서 불러보고 싶어요.” 빈틈없는 준비 덕인지, 누구보다 대범해 보인 임영웅. 동료들 역시 무대에 선 그의 의연함과 담 대함을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떨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엄청 떨었어요. 너무 긴장돼서 무대마다 죽을 것 같았어요. 바들바들 떨리는데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해야 하니까, 안 그런 척 연기한 거죠.”


고양이 같은 매력


그는 첫 경연에서 부른 ‘바램’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노래를 다시 들어봤는데, 너무 못한 거예요. 호흡도 다 떠 있고. 긴장을 많이 한데다 잠도 거의 못 자서 준비한 대로 못 불렀죠.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어요. 그 이후에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서 감정선은 좀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 그가 다시 웃었다. 몇몇 제작진은 그를 향해 “고양이 같다”고 말했다. 감당 못 할 매력이 넘친 다는 다른 표현이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가 하면 어느새 숨어드는 신비주의. 한 음, 한 음 밀고 당기기를 하듯 그는 감정의 조련사였다. 기자에게도 무언가 더 말을 할 듯하다가 숨을 고르며 말을 먹곤 했다. 얄밉게 애태우던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그가 예의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눈매로 말을 이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요. 긴 이야기를 더 잘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 이 자리도 정말 정말 감사해요.” 그는 트로트를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한 게 아니었다는 말을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위인전 한 토막 같은 그의 〈미스터트롯〉 서사가 영웅 신화로 승화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변함없이 노래하겠다”고. 임영웅은 임영웅이니까.


글 톱클래스 최보윤 

사진제공 뉴에라프로젝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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