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를 사랑했던 소문난 떡집 효자는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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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의 소문난 효자, 한국 대표 투수 되기까지

야구선수 김광현

출처: 조선DB
김광현이 2019년 12월 17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 기자회견 중 그의 전 소속팀 SK 와이번스에 감사를 표하는 플래카드를 든 채 미소짓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 떡집 현관에는 유명 야구선수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떡집 주인이 이 선수의 열광적 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1988년 7월 22일 김광현은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 안에는 배트, 글러브 등 야구 장비가 굴러다녔다. 그의 부모도 야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의 가장 큰 행복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야구장에 가는 것이었다. 안산 덕성초등학교 3학년이던 김광현은 자신도 야구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저도 야구를 하고 싶어요.” 


태권도에 소질을 보여 사범이 그를 탐냈지만, 김광현의 선택은 오로지 야구였다. 육상도 잘했고, 공부도 못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김광현의 이야기다. 


“아버지를 따라 잠실구장에 갔는데 이상훈 선배(야생마, 삼손으로 불린 유명 투수)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LG 팬이 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하겠다’고 부모님께 졸랐습니다.” 


결국 부모는 3남매 중 맏이의 부탁을 들어줬다. 안산리틀야구단에서 본격적인 야구 생활을 시작한 김광현은 고민이 있었다. 왜소한 체구 때문이었다. 부모는 떡집에서 각종 떡을 만들어 먹이고, 한약, 사슴, 녹용, 자라, 보신탕까지 몸에 좋다는 건 모두 구해다 먹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김광현은 중학교 때 키가 갑자기 크기 시작해 중학교 3년 동안 33cm나 자랐다. 


류현진과 라이벌 구도 

출처: 조선DB
안산공고 2학년 당시의 김광현

안산공업고등학교(안산공고)에 진학한 그는 야구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투수지만 타격도 좋았다. 졸업반이던 2006년 타율 0.415(41타수 17안타) 1홈런 8타점에 출루율 0.519, 장타율 0.659, OPS(출루율+장타율) 1.178을 기록했다. 안산공고가 당시 ‘광현공고’라 불렸던 배경이다.


안산공고는 야구로 잘 알려진 학교가 아니었지만, 김광현은 4경기 36이닝을 혼자 책임지며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컵을 모교에 바쳤다. 김광현이 안산공고로 진학한 것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 하나였다. 김광현의 어머니 전재향 씨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 마음에 좋은 학교로 보내고 싶었죠. 그때만 해도 안산공고는 야구로 잘 알려진 학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광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안산공고에 가겠다는 거예요. 광현이가 어렸을 때 LG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너 서울에 있는 학교 안 가면 LG에 못 갈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럼 LG는 나중에 가지’라고 하더라고요.”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쳐 2006년 프로야구 SK와이번스에 최고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김광현은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의 조련으로 한국프로야구(KBO) 최고 수준의 선수로 거듭나며 1년 선배인 괴물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고속 슬라이더 앞세워 메이저리그 도전


KBO를 평정한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800만 달러(약 97억 원)에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원래 김광현은 2014년 메이저리그에 갈 뻔했으나 독점 협상권을 따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협상 과정에서 연봉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제시하는 등 대우가 예상을 밑돌자 국내 잔류를 택했다. 


김광현의 주 무기는 슬라이더다. 슬라이더는 직구와 비슷한 궤적, 구속으로 오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던진 손의 반대 방향으로 휘거나 떨어지는 구종이다. 특히 타석 근처에서 변화하기 때문에 배트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빠르다. 2017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이후 슬라이더 구속이 상승했다. 2016년 평균 132.5㎞였던 슬라이더 구속이 2018년 136.2㎞로 3.7㎞나 상승했고, 지난해는 평균 136.7㎞가 찍혀 수술 전보다 4.2㎞나 빨라졌다. 지난해 기준, 김광현의 슬라이더 최고 구속은 147㎞까지 찍혔다. 


2007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릭 험멜 기자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극찬했다.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힘이 있고 휘는 각도도 예리하다. 빅 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다.” 


겸손한 인성까지, “이렇게 완벽한 선수는 처음” 


야구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성공을 점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김광현의 인성이다. 그는 부모의 겸손함을 똑 닮았다. 떡집을 운영하며 김광현을 키운 아버지 김인갑 씨와 어머니 전재향 씨는 겸손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야구선수 아들을 밖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김광현이 등판하는 날엔 조용히 야구장을 방문했다. 김광현이 뜻깊은 승리를 거두거나, 팀에 좋은 일이 있을 땐 손수 만든 떡을 가지고 왔다. 2016년 아들이 100승을 거뒀을 때는 특별 준비한 ‘100승 기념 떡’을 선착순 1000명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SK 한 직원은 “광현이 부모님은 어쩌다 우리와 마주치면 ‘항상 고맙다’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고 전했다. 


김광현은 인터뷰할 때도 어투에서 겸손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는 류현진과 자신을 비교해달라는, 지겹도록 많이 받은 이 질문에도 항상 이렇게 답했다. 


“현진이 형이요? 부담스럽죠. 너무 잘하시잖아요.” 


허정욱 SK 스카우트팀 과장은 “광현이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선수는 처음 봤다. 인성은 물론이고 경기 운영 능력이나 다양한 구질, 날카로운 변화구를 가진 광현이는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글 톱클래스 최우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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