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부르고 '탕탕탕'하는 직업의 연봉은 이렇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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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탕!' 천경자·김환기·퇴계 이황 가치를 올리는 금손

미술품 경매사 -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6억 6000, 6500, 7000, 7500…”, 금액은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속도감에 장내는 뜨거워지고 덩달아 긴장감이 고조됐다.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불쑥 올라가려는 손을 이성의 끈이 간신히 붙잡아줬다. 하마터면 패가망신 예약할 뻔. 


그 순간, 단 하나의 패들이 남았다. 경매사는 번호를 호명했다. 경매장을 떠나는 이들의 표정에 결과가 묻어났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거나, 꾹꾹 눌러 담은 환희가 입꼬리 밖으로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7억, 7억, 7억. 현장 ○○번 손님께 7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탕탕탕!)


단상에서 최종 금액을 세 번 부르고 봉을 두드렸다.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됐다. 경매 시작가 6억 6000만 원에서 최종 7억 원까지 이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그나마 경합이 치열해 오래 걸린 편, 다른 거래는 평균 15초를 넘지 않는다. 이날 경매의 전체 낙찰률은 74%, 낙찰 총액은 61억 8750만 원을 기록했다.


초 단위로 거액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50분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진행을 이어간 주인공은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다. MBC 〈무한도전〉, tvN 〈어쩌다 어른〉 등에 출연해 대중에겐 친숙한 인물이다. 


손이천 경매사는 2009년 케이옥션 홍보팀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한 후였다. 입사 1년 차, 사내 미술품 경매사를 모집하는 공고가 떴다. 그는 대표이사의 권유로 지원을 했다. 다른 지원자와 경합을 거쳐 6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은 후 2010년 6월 경매사로 데뷔했다. 그런데 뜻밖의 전개가 이어졌다. 사내 경매사는 두 명. 앞의 선배들이 잇달아 그만두는 바람에 그는 1년 만에 수석경매사가 됐다.


“미술품 경매사는 별도로 채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경매회사에 들어와 우연한 기회에 수석경매사가 돼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데, 홍보실 업무를 겸하고 있죠. 새로운 경매사가 설 무대가 많지 않은 현실이에요.” 


미술품 경매 시스템은 간단하다. 입찰을 희망하는 고객이 사전에 부여받은 패들(번호)을 들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고객이 물품을 갖게 된다. 동일 금액으로 경합할 경우 서면-현장-전화 순으로 자격이 주어진다. 서면은 사전에 최고 한도 희망가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모든 경매는 대리 응찰이 가능하다. 단 낙찰받은 작품은 취소할 수 없으며, 별도의 낙찰 수수료가 부과된다. 케이옥션의 수수료는 16.5%. 낙찰받은 작품이 1000만 원이라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총 1165만 원이다. 따라서 입찰자는 호가가 높아질수록 수수료를 염두에 둬야 한다. 


‘억’ 소리 나는 최고가 경신만 세 번! 

미술품 경매사의 역할은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의 경합을 유도해 최대한 높은 금액에 작품이 낙찰되도록 리드하는 일이다. 손이천 경매사는 1년에 여섯 번 있는 메이저 경매에 참여한다. 메이저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은 170~240개, 경매사 두 명이 꼬박 세 시간을 진행한다. 입찰자가 고민하거나 진행상의 공백이 생기면 작품 설명도 곁들인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은 필수다.


“경매사는 입찰자 사이의 경쟁을 한 번이라도 더 이끌어내야 해요. 두세 명이 경쟁하고 있을 때 ‘한 번 더 하실래요?’ ‘마지막 기회예요’ 같은 말로 실례되지 않는 선에서 참여를 권하는 거죠. 높은 낙찰 가격을 끌어내려면 경매사의 스킬, 숙련도 등이 필요하고 고객의 성향도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1년에 4~6차례에 불과할 만큼 미술품 경매사가 단상에 오를 기회는 많지 않다.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충분한 연습은 기본이다. 손이천 경매사는 “가장 중요한 훈련은 호가 연습”이라고 말한다. ‘200, 220, 240, 260…’, 생각할 때는 쉬운 이 순서가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면 종종 꼬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 숫자를 건너뛰기라도 하면 아찔한 순간이 연출될 수 있다.


“호가는 생각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경합이 치열하면 경매사의 재량으로 단위를 높일 수 있는데요. 20씩 올라가다가 갑자기 50씩 올리면 쉽지 않거든요. 때문에 모든 가격대 연습을 해야 해요.” 


경매 시장은 예술작품의 시장 가치가 정점에 이르는 곳이다. 10년간 경매를 진행해온 그로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단연 최고가를 경신했을 때다.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그 첫 작품이 2012년 ‘퇴우이선생진적’이다. 현재 고미술품 경매가 3위에 이름을 올린 이 작품은 26억 원에 경매를 시작해 34억 원에 최종 낙찰됐다. ‘퇴우이선생진적’은 보물 585호로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 등이 수록된 16면짜리 서화첩이다. 이 서화첩에는 1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실린 ‘계상정거도’의 원본도 들어 있다. 


당시 세간의 관심사는 낙찰자였다. 낙찰자의 개인정보는 철저한 대외비로 경매사조차 알 길이 없지만 이 작품은 특별히 밝혀졌다. 국가 보물은 소장자가 바뀌면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낙찰 주인공은 삼성문화재단이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그의 손에서 2016년, 2017년 두 차례나 최고가를 경신했다. 김 화백의 그림은 예술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 미술계의 블루칩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그의 작품은 65억 5000만 원으로 낙찰 기록을 세웠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신을 거듭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1억 8750만 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돼 그 명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낙찰률 100%를 기록한 경매 역시 손 경매사의 기억에 생생하다. 2013년 검찰이 전두환 씨의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아들 전재국 씨의 압수 컬렉션을 경매회사 두 곳에 위탁했다. 전 씨 부자의 소장품 리스트는 수백억 원대를 호가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감이 컸다. 천경자의 원화는 실제로 보니 판화였고, 모조품도 더러 있었다. 직원들은 70%만 낙찰돼도 잘된 거라고 단념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100%를 기록했다. 소장 이력이 작용한 탓이었다. 


“미술품은 누가 작품을 소장했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져요. 소장 이력(프로비넌스)은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에요. 연예인이 갖고 있던 셔츠가 인기를 끌듯, 어쨌든 대통령가에서 소장한 작품이란 프리미엄이 붙은 거죠.” 


그들만의 리그? 경매 시장은 열려 있다 


예술품의 특성상 작품은 오래 시간 여러 소장자를 거치게 된다. 경매회사는 작품을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게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을 사전에 전시한다. 이 전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경매회사를 방문하면 미술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고가의 작품만 경매에 나오는 건 아니다. 20~30만 원부터 시작하는 미술품 경매 시장도 있다. 케이옥션의 경우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위클리 경매와 프리미엄 경매가 있는데 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작가·갤러리가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1차 시장과 달리 경매 시장은 고객이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 철저하게 수요 공급의 시장 법칙이 우선인 분야다. 미술품 경매를 두고 예술을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책에서 봤을 법한 작품들도 모두 컬렉터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또한 저가의 예술품부터 활발하게 거래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예술가의 생계 문제 해결에도 단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아요. 언론에서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 보도해서 그럴까요? 요즘은 카페만 가도 작품이 하나씩 있잖아요. 그만큼 미술품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어요. 거래도 경매를 통한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 가격이 결정되면서 점차 투명하게 바뀌고 있고요. 이 일을 하면서 미술품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미술품 경매사 


치열한 경합이 펼쳐지는 미술품 경매 현장 ‘지휘자’ 


우리나라 미술 시장 규모는 GDP 대비 0.02%로 추정된다. 미국, 중국, 영국 등이 0.2~0.5% 정도인 걸 감안하면 턱없이 작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매 시장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의 역사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각각 1998년, 2005년 설립되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세계 유수의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나 소더비(Sotheby’s)가 250년 이상 된 것과는 엄청난 격차다. 


국내 미술품 경매사 역시 전체 1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의미지만, 미술계 종사를 희망한다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다만 본인의 성향부터 파악해야 한다. 경매 시장은 빠르게 변한다. 경매마다 수백 점의 작품이 거래되기 때문에 시장의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품을 깊이 파고드는 부류라면 경매보다 연구 계통이 어울린다.


미술품 경매사는 현장의 지휘자와 같다. 안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장내 텐션을 변주할 줄 알아야 최상의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응찰자의 제스처, 경합 여부 의사 등도 잘 포착해야 한다. 경매회사의 직원, 패들을 들고 있는 현장 고객, 전화 응찰자 등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경매는 결코 경매사 혼자 잘한다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미술품 경매사가 하는 일?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던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역할이다. 미술품 경매사는 경매회사에 소속돼 경매 과정 전반의 일을 한다. 출품을 의뢰받은 작품의 경매 과정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경매 물품의 소장 경위, 이력 등을 파악한다. 또한 정확한 감정을 위해 전문감정위원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경매 물품의 도록 작성, 작품 설치, 낙찰자 통보, 금액 교환 등도 경매회사의 몫이다. 경매회사에서 이와 관련된 일을 맡고 있다면 잠재적인 경매사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현장의 미술품 경매사는 최고가 낙찰을 위해 응찰을 유도한다. 고가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자리인지라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두 명의 보조 경매사가 옆에 서서 메인 경매사가 전체 장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놓친 응찰자를 알려주기도 한다. 


미술품 경매사가 되려면?


채용 형태로 고용하지 않는다. 경매회사 직원 중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훈련해 투입하는 시스템이다. 메이저 경매는 1년에 열 차례 미만, 그것도 하루 두세 시간 이뤄지는 등 아직은 경매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프랑스는 경매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그 밖의 나라는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미술품 경매사가 되기 위해서는 경매회사 입사가 우선이다. 경매회사에는 홍보, 마케팅, 촬영, 아카이빙, 디자인 등 다양한 직군이 있다. 미술 분야의 경력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입사에 도움이 된다. 미술 세계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며, 고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한자를 알아두는 것도 좋다. 


연봉 및 처우 


‘값비싼 작품을 수십 개씩 다루는데 대체 얼마를 벌까?’ 궁금하겠지만 아쉽게도 미술품 경매사는 월급쟁이다. 거래가 늘어난다고 경매사의 연봉이 오르진 않는다. 회사의 이익이 늘어 성과급을 받을 때 경매사 역시 그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 경매회사의 양대 산맥,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의 평균 연봉은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 


글 톱클래스 선수현 

사진제공 kth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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