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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친 선물에 '찌릿'..그렇게 제 직업도 바뀌었죠

조회수 2020. 9. 18. 15: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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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여자로 산다는 거.."우리도 피어나야지요"
네이버웹툰 ‘아홉수우리들’ 박수현 작가
미술학원 강사하다 웹툰 작가로 데뷔
29살 여자 세 명 이야기 현실감 있게 그려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어. 감각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쇄도하는 잡지 인터뷰·망원동에 위치한 내 작업실은 녹색벽지에 핑크타일 벽···.’


하지만 현실은 조그마한 잡지사의 편집 디자이너. 매일 야근수당 없는 야근에 세후 180만원 받는 비정규직. 네이버 토요웹툰 ‘아홉수우리들’에 등장하는 스물아홉살 ‘봉우리’ 이야기다. 잘 나가는 항공사 승무원이지만 집안 가장인 차우리, 의사·교수 집안에서 혼자 공시생인 김우리, 봉우리. 이렇게 세 명의 동갑내기 ‘우리’들이 주인공이다. 어린시절 함께 꿈꿔온 멋진 미래와 달리 씁쓸한 현실을 겪는 스물아홉 여자 세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네이버 베스트도전만화를 거쳐 1년 전부터 정식 연재를 시작한 박수현(32) 작가를 만나봤다. 

출처: jobsN
박수현 작가.

◇그림 못 그려 매일 울던 지망생···31살에 작가 데뷔


-언제부터 웹툰 작가를 꿈꿨나요.


“그림을 좋아했고 미대를 나왔지만 처음부터 웹툰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집에도 만화책이 엄청 많았지만 내가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고요. 원래 꿈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요.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소설가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 감독, 작사가 등 다양하잖아요.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라 드라마 작가는 안 될 것 같았고, 동화 작가를 꿈꾼 적도 있었죠.


그러다 예전 남자친구한테 만화책을 하나 선물받은 적 있어요. 그걸 보자마자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림체가 너무 예쁘고 내용이 좋아서 그 책을 닳도록 봤어요. 인터넷을 뒤져서 그 작가님이 낸 만화책을 모두 사서 보고 또 봤어요. 그러면서 ‘나도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결심하자마자 프로 작가들이 쓰는 350만원짜리 액정 태블릿을 덜컥 샀어요.”


-결심하자마자 웹툰 데뷔를 준비했나요.


“그건 아니에요.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결심한 26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3~4년 정도 미술학원 강사로 일했어요. 미술학원 실장님이 연결해주신 광고 만화 외주 작업을 틈틈이 하며 용돈을 벌었어요. 그전까진 그림 그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외주 제작을 계속 하다보니까 나름 노하우가 생겼죠. 재밌고 적성에 잘 맞았어요. 그러다보니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을 직접 해보고 싶어졌죠. 30살쯤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만화만 그려보기로 결심했습니다. 1년 동안 일도 안하고 네이버 ‘도전 만화’를 거쳐 ‘베스트도전 만화’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고, 작년 3월부터 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웹툰 작가 데뷔를 준비하면서 힘들지 않았나요. 


“힘들어서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무작정 태블릿을 사고 만화를 그려봤는데 절망적이었어요. 그림을 너무 못 그리는 거에요. 스토리도 짜본 적 없고, 만화체도 처음 그려보니 모든 게 어려웠죠. 매일같이 그림 그리다 책상에 엎드려 울었어요. ‘난 왜 재능이 없는걸까’ ‘꿈을 못 이루면 어떡하지’란 불안감이 매일 덮쳐왔죠. 미술학원 강사를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어요. 그래서 제 20대 중후반은 너무 끔찍하고 힘들었어요. 매일 밤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 생각하며 잠들었고 아침엔 ‘오늘도 끔찍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눈을 떴죠.


그때 겪은 불안감, 절망감을 아홉수우리들 주인공들에게 많이 투영했어요. 지금 제 작품에 달리는 ‘스토리 좋다’ ‘그림 예쁘다’는 반응이 아직도 신기해요. 20대땐 그림 못 그리고 스토리 못 짜서 매일 책상에서 울었는데 말이에요.” 


◇아홉수우리들은 ‘20대를 보내는 굿바이 인사’


-주인공이 29살 여자 세 명입니다.


“20대 여자 이야기를 다루기엔 캐릭터 한 명만으론 부족했어요. 작은 잡지사에서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는 봉우리. 모자랄 것 없어보이는 항공사 승무원이지만 소녀 가장인 차우리. 의사·교수집안에서 몇 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김우리. 이렇게 서로 가장 친한 세 명의 ‘우리’가 등장하죠.

출처: 네이버웹툰 캡처
웹툰 아홉수우리들 1화 표지.

메인 주인공인 봉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20대 여자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예요. 평범한 회사에 다니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도 하지만 앞날이 불안하죠. 제 20대와 가장 닮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일 잘하고 당당한 20대 여자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 차우리라는 캐릭터도 넣었어요. 친구들 중에 승무원이랑 대기업 비서로 일했던 친구 여럿을 조합했죠. 주변에 보면 자립심이 유독 강하고 커리어우먼같은 친구들이 꼭 한 명씩은 있잖아요.


공시생 김우리는 가장 마지막에 구성했던 캐릭터예요. 이야기를 풀어내기 가장 어려웠죠. 저랑도 닮은 구석이 없고 주변에 공시생 친구도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공시생이 많으니까 그들과 취준생 전부를 대변하는 캐릭터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림체와 색감이 예쁜 웹툰으로 유명한데요.


저는 웹툰 작가들 중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에요. 경험도 적고요. 그림을 잘 못 그리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란 생각이에요.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고 잘해요. 등장인물들이 입는 옷이나 배경, 인테리어·소품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써요. 만화 중간에 삽입되는 표지 그림에 공들이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해당 에피소드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 그리죠. 특히 주인공 봉우리가 남자친구 준이와 헤어졌을 때는 미켈란젤로 '피에타'를 연상시키는 구도로 둘을 그렸어요. 원고를 그릴 때 표지 그림을 가장 먼저 그리고 시작해요. 앞으로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잡을 수 있거든요.


-'아홉수우리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자님들이 만화를 보면서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공감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20대는 아름답고 행복할 나이라고들 하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거죠. 제 만화 댓글창을 보면 본인의 사연을 아주 길게 써놓는 분들이 유독 많아요. 댓글 단 사람들끼리 서로 '00님 힘내세요' '저도 옛날에 그랬어요'라며 소통하는 모습도 좋아요. 제 작품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감사하죠.


처음부터 이 만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20대 때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일기처럼 적어낸 작품이죠. 그런 의미에서 아홉수우리들은 지나온 20대를 보내주는 '굿바이 인사' 같은 작품이에요."

출처: 네이버웹툰 캡처
웹툰 아홉수우리들 40화 표지.

◇"히트작보단 오래 연재하는 게 목표"


-아홉수우리들을 연재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예전보다 저를 많이 좋아하게 됐어요. 꼭 만화를 그려서, 인기가 생겨서가 아니에요. 하고 싶던 걸 끝까지 해냈기 때문이에요. 매일 울면서 그림 연습하던 힘든 시기를 다 견뎌낸거잖아요. 경제활동을 아예 그만두고 1년 동안 작가 지망생으로만 보낼 때도 엄청 불안했죠. 웹툰 작가로 데뷔를 못하면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채로 30대가 되는거라 생각했어요. 딱히 쌓아놓은 커리어도 없고, 돈도 많이 못 모았고, 있는 건 몸뚱아리와 태블릿 하나가 전부였으니까요.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고요.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를 버텼더니 원하던 일들이 이뤄졌어요. 네이버웹툰에서 데뷔도 했고 첫 작품도 한 시즌이 끝나는 60화까지 무사히 왔고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저는 히트하는 작가가 되기보단, 오래오래 연재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더 노력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다음엔 더 좋은 작품, 다음엔 더더 좋은 작품이요. 남들보다 늦게, 어렵게 얻은 기회인만큼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 잘해나가고 싶어요. 우선 아홉수우리들은 곧 시즌1이 끝나고 바로 시즌2에 들어갈거예요. 시즌2는 1보다 밝고, 로맨틱코미디적 요소가 더 많아진답니다. 아마 더 대중적인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홉수우리들을 보는 '우리'들에게 한마디.


“이제 시즌1이 거의 끝나가요. 주인공 봉우리가 이별에, 실직에 힘들어하다 며칠만에 집 밖에 나와서 꽃이 핀 걸 보는 장면이 있어요. ‘나는 불행한데 나의 불행과 상관없이 꽃이피었네’ 생각하면서 ‘나도 피어야겠다’고 결심하죠.


아무도 추운 걸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은 매번 오는 것처럼, 불행도 숨쉬듯 찾아올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본인 잘못이라 생각하고 끝나지 않을 거라 느끼죠.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겨울을 잘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뜻해지는 날이 올거예요. 그러니 봄을 맞이할 때까지 추운 겨울을 조금만 잘 보냈으면 해요. 차도 마시고 고구마도 먹고, 귤도 까먹으면서요.”

출처: 본인 제공
박수현 작가.

박수현 작가는 31살에 웹툰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연재 1년째인 지금 웹툰 '아홉수우리들'을 즐겨찾기 해놓은 독자들만 10만명이다. 그는 "돌고돌아 찾은 일"이라며 웃었다. "사실 처음 '웹툰 그려볼까 한다'는 얘기 꺼냈을 땐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직접 말은 안 해도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요새는 아무나 웹툰 그린다고 하네' '뜬구름 잡는 소리하네' 같은 시선들이요. 하지만 웹툰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바로 액정태블릿을 사버렸죠. '그림이 좀 더 나아진 다음에 시작해야지'하고 계속 미뤘다면, 어쩌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글 jobsN 박새롬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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