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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울린 '사채업자 1'로 불리는 무명 배우의 사연

조회수 2020. 9. 21. 10: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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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기름 배달, 수행원 등 20년간 생업 종사하다 배우된 이 사람
'연기'에 대한 고민, 왜 재미있고 설레죠?
나이 40에 연기에 뛰어든 배우 금광산씨
엑스트라, 단역뿐이지만 "가장 행복한 나날"
미국 할리우드 영화 출연이 '꿈'

무명 배우 수십 명이 한 명씩 무대에 올라 노래를 시작한다. 서영은이 부른 드라마 '김과장' 주제가 '꿈을 꾼다'를 합창한다. 객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스타 배우 가운데 유난히 한 사람이 감정을 쉽게 추스르지 못한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바로 본인이 출연한 영화 누적 관객수가 1억명을 넘는 명실상부한 '국민 배우' 유해진(50)씨다. 유씨는 20대 때 10년이 넘는 무명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배우 금광산(44)씨도 2017년 제53회 백상예술대상 무대에 오른 33인 단역배우 중 한명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을 막노동, 기름 배달 등을 하며 보냈다. 어렸을 때 간직했던 배우의 꿈을 40살이 넘어 도전했다. 단역이나 엑스트라를 맡다가 최근에는 KBS2 드라마 '포레스트'에서 조연도 맡고 있다. 금씨의 사연이 궁금했다.

출처: 백상예술대상 유튜브 캡처
백상예술대상 무대에 오른 금광산씨(오른쪽).

◇축구선수 출신의 늦깎이 배우 지망생


본명 김명호. 1976년생의 농익은 귀여움이 매력적인 배우다. 데뷔는 영화 <아수라>에서의 작은 단역이었다. 40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라는 직업에 첫 발을 들였다. ‘금광산’이라는 예명은 자신의 성 ‘광산 김’을 거꾸로 배치한 것. 많은 이들이 영화 <범죄도시>에서 마동석에게 계란을 까주는 역할로 기억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 <안투라지>, <나쁜 녀석들> 등 경력은 짧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외모와 체형으로 팬층이 두껍다. 주로 조연으로 등장하며, 대사도 많지 않은 편. 눈빛 연기가 예술이다. 2018년에는 Road FC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으나 아직 격투기 대회에 출전한 적은 없다. 지금은 수목드라마 <포레스트>에 출연 중이다.


그는 서른아홉이던 2015년 배우가 되기 위해 고향인 경북 포항을 떠나 서울에 왔다. 2017년까지 금씨는 단역으로 영화와 드라마 20여편에 출연했다. 대부분 대사가 없는 ‘이미지 단역’이었다. 보조출연(엑스트라)한 것까지 합하면 출연작은 수십 개에 달한다. 주로 건달, 사채업자 부하, 레슬링 선수 등과 같이 폭력적이고 험악하거나 거친 역할을 맡았다.


“영화 ‘조선마술사’에서는 배우 곽도원씨 부하 역할을 맡고 표정에 엄청 신경 썼는데, 영화에는 무릎 아래만 나오더라고요. 그 씬을 찍으려고 낮 12시 현장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7시까지 촬영했어요.”


금씨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다. 1995년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간 생업에 종사했다. 공사판 막노동부터 기름 배달, 바닥과 외벽에 대리석 까는 일, 가게 내부 철거, 해수욕장 보트·파라솔 대여, 수행원 등 온갖 일을 했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포항오천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축구화를 신었다. 방과 후 연습이 끝나면 빵과 우유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포항대도중, 대구공고에서도 축구부 주전으로 활약했다. 주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였다. 그밖에 측면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등 수비 포지션을 폭넓게 맡았다. 선수들 중에서도 돋보일 만큼 체격이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맡은 역할이었다.


축구로 먹고 살 줄 알았던 금씨는 고3때 전국대회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을 접었다. 오른쪽 무릎이 크게 돌아가면서 연골 수술을 받았다. 이후 닥치는대로 먹고 살기 위해 일했다.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배운 기술도 없었다. 몸으로 때우는 일들을 주로 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출처: 금광산씨 제공

◇3년 전 만난 아내의 격려 덕에 생업 접고, 배우의 길로


금씨가 늦깎이 배우지망생이 된 건 아내 김민희(40)씨의 영향이 컸다. 금씨는 학창시절부터 미국 할리우드의 ‘근육질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을 동경해왔다.


금씨는 “축구를 그만둔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건장한 몸을 무기로 근육질 영화배우나 모델이 되는 것을 잠시 꿈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꿈은 그냥 꿈으로 버려뒀다. 금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후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2014년 아내 김씨를 만난 것은 금씨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금씨는 가끔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아내는 두어 번 들려서 와인을 샀던 가게의 종업원이었다. 두 사람은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고 연애를 시작했다.


2015년 금씨가 서울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살림을 합쳤고, 혼인신고를 했다. 금씨는 20대 초반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했는데, 그때 얻은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금씨의 과거는 두 사람의 사랑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금씨가 배우의 꿈을 오랫동안 간직해왔다는 말을 듣고, “뭘 망설이느냐, 나이 더 먹으면 시도조차 못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라”며 금씨를 지지해줬다. 직장인인 아내는 “부부 중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금씨를 격려했다. 금씨는 아내 말에 큰 힘을 얻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금씨는 보조출연(엑스트라)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한 달 평균 3~4회 자리가 났고, 최저시급을 받았다. 한 번 촬영장에 가면 30분을 하든 10시간을 하든 4만8000원 정도를 받았다. 차 기름값을 빼면 일을 나가는 게 마이너스였지만,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2~3개월 정도를 열심히 나갔다.

출처: /jobsN

보조출연으로 촬영장 분위기를 익힌 금씨는 이후 적극적으로 배역을 잡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경력 사항과 이미지를 넣은 개인 프로필을 만들어서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 수십 곳에 돌렸다. 처음 한 달여간 돌린 프로필이 400부였다


금씨는 “아무런 인맥도 없고, 가진 돈도 없고,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나를 알리기 위해 무작정 프로필을 들이밀었다”고 말했다.


노력 끝에 금씨에게도 조금씩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대사 없는 ‘이미지 단역’이 많았다. 금씨의 건장한 체격과 우락부락한 모습이 필요한 배역들이었다.


금씨는 “원래 이미지 단역은 회당 15만~20만원 정도 받는데, 나처럼 머리가 없는 사람은 ‘삭발비’라고 해서 돈을 30만~40만원씩 주기 때문에 벌이가 그나마 좀 나았다”고 말했다.


이미지 단역을 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대사나 동작이 조금씩 있는 배역을 따내기 시작했다. 한 달 평균 10~20일 정도 촬영장에 나가면서 금씨가 2016년 번 돈은 3000만원 정도. 교통비 등을 빼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금씨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금씨는 지난해 말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연기 레슨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비교적 쉽게 단역을 맡고 있지만, 연기적으로 성장 정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2016년 1월부터는 엑스트라는 안하고 있어요. 2017년부터는 대사가 없는 역할은 자제하면서 내공을 키우는데 주력했습니다.”

◇"유명인보다는 좋은 조연되고파…5년 내 美 할리우드 영화 출연 목표"


금씨의 최종 목표는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가 돼서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촬영장에 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해 ‘근육질의 동양인 액션 배우’가 돼 보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금씨는 언젠가 이뤄질지 모르는 꿈을 위해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2년 정도 후에는 맡은 역할에서 대사가 조금씩 늘어날 테고, 그러면 영상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할리우드 영화사들에 프로필을 보낼 겁니다."


금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미국 LA의 할리우드 지역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워진 간판인 ‘할리우드 사인’이 배경으로 돼 있다.


“사실 주연은 생각도 못해요. 원하지도 않고요. 단역을 넘어서 조연으로 캐스팅 되고, 나이 들어서도 촬영장에서 꾸준히 찾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싶다기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을 해왔지만, 이 일만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해본 게 없어요. 

요즘 제 스트레스는 ‘연기’ 하나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해요. 그런데 그 고민이 머리가 아프고 힘든게 아니라 재미있고 설렌다는 게 신기합니다. 5년 안에 단역이라도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근육질의 액션 배우를 동양인이라고 해서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최근 금광산 배우는 다수의 광고와 차기작을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좋은 연기와 좋은 배역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할 것 입니다."


글 jobsN 송영조·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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