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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실명 이유 뒤늦게 알게된 중학생은 이렇게 됐습니다

“나처럼 억울한 일 당한 사람에게 힘이 되자” 중학생 때 결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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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실명한 김예원 변호사
사시 합격후 10년 넘게 인권 사건 변호 맡아
대형 로펌, 서울시 거처 장애인권법센터 개설
월급 포기하고 수임료 없이 소외계층 법률 지원

2017년 아동 폭행 피해자를 변호하기 위해 한 변호사가 판사 앞으로 나섰다. 당시 피해 아동은 폭행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사람들 앞에 선 변호사는 자신의 눈에서 의안을 직접 빼 보였다. 그는 "의안을 바꿔 넣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 피해 아동을 생각해 가해자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한쪽 눈을 잃었다는 1차원적인 피해만 인식해 답답한 마음에 큰 용기를 내서 꺼냈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다.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시각장애를 얻었다고 한다. 사법시험 합격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주로 인권 침해 사건에서 피해자 변호를 맡는다. 그래서인지 장애인권 대표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다. 곽정숙 인권상, 서울시 복지상 등도 수상했다. 

김예원 변호사

출처본인 제공

◇인권침해 피해자 변호하는 비영리센터


-장애인권법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인권 침해를 당해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지원하는 비영리 법률 사무소입니다. 비영리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수임료는 일체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문 상담, 기록 복사 등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강연이나 연구 등에서 생기는 부수입으로 센터를 유지하고 있어요. 변호 외에도 제도 개선 활동도 합니다."


-한 달에 몇 건의 의뢰를 맡나요.


"그때마다 다르지만 상담은 하루에 2~3건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단체에서 의뢰하는 건 40~50건 정도고 사건 진행은 20~30건씩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피해자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사건 담당 외에도 인권 관련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위원, 한국장애학회 감사, 한국장애인개발원 혁신자문단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출처본인 제공

◇의료사고로 시각장애 얻어, 변호사는 중학생 때부터 꿈꿔


김예원 변호사는 시각장애인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다. 태어날 때 겪은 의료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고였나요.


"겸자분만(집게 등으로 태아의 머리를 집어서 잡아당기는 방법) 과정에서 도구에 눈을 찍혔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를 모르고 높은 안압의 원인을 눈암으로 진단했어요. 안구와 주변 신경 그리고 근육조직까지 들어냈죠. 그렇게 시각장애가 생겼고 어렸을 때는 인조인간, 개눈깔 등 별명도 많았어요."


-변호사를 꿈꾼 계기가 의료사고와 관련이 있나요?


"중학생 때 제 눈이 왜 이렇게 됐는지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어리기도 했고 워낙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억울했어요. 이런 일을 확실하게 처리할 방법은 '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법 전문가가 돼서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잘못된 건 바꿔야 한다고 꼭 말해야 하는 제 성격과도 잘 맞았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법학과에 진학해 전문적으로 배웠습니다. 헌법이 너무 좋았어요. 헌법재판소 판례를 읽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반면 민법이나 상법은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장애인권법센터 홈페이지

출처장애인권법센터 홈페이지

◇대형 로펌 나와 장애인권법센터 열어


2009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김예원 변호사는 2010년~201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2012년부터 바로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형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 '동천'에서 일했다. 공익 변호사로서 장애인, 난민, 이주민 등 인권 관련 전반적인 사건을 맡았다.


2014년 장애인 노동자 의족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의족을 한 경비원이 일하다 넘어져 무릎을 다치고 의족이 파손됐다. 그러나 의족은 신체 일부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미 1, 2심에서 패소했지만 결국 김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다양한 사건을 맡으면서 장애인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2년 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직장을 옮겼다.


-왜 옮겼나요?


"태평양은 가장 큰 로펌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건, 큰 사건 의뢰가 많아요. 그러면 아무래도 사건 초반에 개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초반부터 함께한다면 피해가 커지지 않을 사건도 많은데, 그 시기를 놓쳐 기간이 늦춰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뛰어보자는 생각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일하다가 2017년 직접 장애인권법센터를 열었어요."


-센터를 직접 연계기는 무엇인지…


"서울시 세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서울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만 담당했습니다. 지역에 상관없이 사건을 담당하고 싶었어요. 분야도 장애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동, 젠더 등 더 폭넓게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또 고정적인 월급을 포기하면 일하는 범위, 방식, 대상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수임료를 받지 않기로 했죠.”

아이가 어렸을 땐 데리고 일하러 다녔다.

출처본인 제공

◇”아쉬움이 남는 사건도 있지만 지금처럼 오래 일하고 싶어요”


김예원 변호사는 많으면 한 달에 30건의 사건을 진행한다. 사건이 있는 곳이면 가능한 방문 상담을 하기 때문에 전국을 다닌다. 혼자 센터를 운영하고 제도 개선에도 힘쓰고 있어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다. 셋째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 법정에 데리고 간 적도 있다. 그는 “양가 부모님 모두 일하시고 재판도 해야 하니 양해를 구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한 지 9년째. 김 변호사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사건도 많다고 한다.


“사건을 대하는 원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는 해결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사건에 접근합니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해결해주겠다고 접근하면 당사자가 배제됩니다. 조금 느리고 힘들어도 당사자가 사건에 직접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저도 부족할 때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중증장애아동이 학대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장애가 심해 의사 표현이 어려운 친구여서 보호자와 소통했어요. 보호자 의견이 곧 아이의 의견이라고 착각한 거죠. 사건은 잘 마무리됐지만 끝나고 보니 너무 보호자가 원하는 방향 끌고 갔어요. 수사 진행여부보다 아이가 사건 전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 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아이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아무리 의사소통이 힘들더라도 직접 얘기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죠.”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고 원하는 사건을 맡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힘을 얻는다. 처음엔 힘도 없고 많이 울지만 갈수록 생기가 돌고 말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한다. 이런 그의 목표는 지금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공천 제안이 왔고 거절을 했습니다. 정치하려고 하는 거냐는 오해를 하십니다. 저는 그럴 수준이 안됩니다. 그냥 지금 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마음의 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성격이 워낙 급하고 에너지가 넘쳐서 실수할 때도 많습니다. 조금씩 여유를 가지면서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또 주위에서 제 덕분에 사회가 변화한다는 말씀도 해주시는데, 그냥 적성에 잘 맞아서 하는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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