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연아'로 불렸던 그녀는 지금 이렇게 지냅니다

조회수 2020. 9. 21.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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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꿈 키운 곽민정, 올림픽 코치·국제 심판을 목표로
전 국가대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곽민정(26)
한국 피겨 싱글 최초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은퇴 후 지도자·해설위원으로 새 삶 살아

곽민정은 ‘피겨 황제’ 김연아를 이을 선수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그는 2010년에 김연아와 함께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13위라는 성적을 냈다. 뒤이어 2011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피겨 여자 싱글 역사상 첫 동계 아시안게임 메달이다. 당시 나이는 17세. 하지만 연이은 부상과 슬럼프가 문제였다. 결국 2015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지도자로서, 경기 해설위원으로서 제 2의 피겨 인생을 살고 있다.

출처: 곽민정 선수 제공
2018 평창동계올림픽 해설위원을 맡은 곽민정 선수.

-은퇴 후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스케이트 관련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요. 안양종합운동장 아이스링크에서 피겨스케이팅 코치를 맡고 있어요. 방송 해설은 시합이 있을 때만 합니다. 그 외 시간에는 전부 선수들을 가르쳐요. 취미로 스케이트를 즐기는 일반인부터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출처: 곽민정 선수 제공
빙상장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한국 여자 피겨 사상 최연소로 올림픽 무대 밟아


-언제 운동을 처음 시작했나요.


“9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어요. 11살에 처음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어요. 14살 때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나 경기가 있다면.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요.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잖아요. 출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어요. 다음은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싱글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거든요. 기록을 세웠다는 것이 뿌듯했어요.”

출처: 곽민정 선수 제공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연기를 펼친 곽민정 선수.

-선수생활을 할 때 가장 부담이 됐거나 압박으로 다가왔던 것은 무엇인가요.


“부담도 부담이지만 일단 부상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경기력이 떨어지니까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 자체가 부상이 많은 종목이거든요. 또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면 안되겠다는 부담감도 있었습니다.‘내가 피겨를 타고 싶어서 타는건가, 아니면 사람들이 기대를 하니까 타는건가’라는 고민도 했어요."


-은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2015년에 은퇴했어요. 부상때문에 경기력이 계속 떨어지니까 제 자신도 주춤했던 것 같아요. 그 때 느꼈죠. 지금이 은퇴 할 타이밍인 것 같다고요. 전국 피겨 랭킹전에 마지막으로 출전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어요.”

◇내 무대보다 후배들 무대 볼 때 더 떨려

출처: 곽민정 선수 제공
KBS 피겨 해설위원 프로필 사진.

-은퇴 후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데 코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자들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해설위원은 공정하게 경기 내용을 전달해야해요. 또 해설 할 때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설명을 해야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으로 얘기해야합니다. 시청자들도 피겨스케이팅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요.”


-경기 해설위원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은퇴 후 줄곧 코치로만 활동을 했어요. 인생이 무료하다고 느낄 때 쯤, KBS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한 번 해보라는 어머니의 제안도 있었고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경기 자체가 일년에 몇 번 없어요. 피겨 스케이팅 대회가 있는 기간에만 해설을 맡죠. 처음에 한 두번 정도 경기 해설을 맡았고 그 다음에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 해설위원을 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경기를 링크장이 아닌 중계석에서 바라본 소감은.


“선수로 출전했을 때 보다 더 떨렸어요. 선수들이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크지만, 중계석에 있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만큼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내면 감동이 더 크게 밀려오더라고요.”

◇피겨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일해보고파

출처: 곽민정 선수 제공
피겨스케이팅 지도자로서의 모습.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피겨와 관련된 여러 방면의 일을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 가르치는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도자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해설위원도 계속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피겨 안무가로도 활동 해보고 싶어요. 안무가는 시합 때 쓸 안무와 쇼트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요. 코치가 하는 일과 달라서 흥미가 생겼어요. 또 국제 피겨 심판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어요.”


-도전하고자 하는 다른 분야의 일이 있다면.


“은퇴 후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바빠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약 10명의 선수들의 코칭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제가 피겨 관련 일을 관둔다면, 다른 분야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40대나 50대가 되어서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어렸을 때는 생각 못했던 부분인데요, 운동선수는 10대에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걸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어렸을 때 운동하는 게 정말 힘들고 괴롭지만, 20대에 들어서면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요. 기술 연마하는게 예전보다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지금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글 jobsN 박채원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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