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끝에서 탄생한 건..미국 서부 뒤흔든 한국여성

조회수 2020. 9. 21. 10: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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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애니메이션 촬영감독 하고 있지요
쥬라기공원 보고 영화감독 꿈꿔
애니멀 로직서 ‘레고무비’ 제작 참여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등 제작
‘김아름’ 스튜디오로 애니 만들 것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화려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 분야와 기술 분야를 통틀어 수많은 아티스트가 제작에 참여한다. 그중에 촬영 감독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레이아웃 아티스트(Layout artist)'다. 화면의 구도를 잡고 카메라 연출을 통해 스토리에 따른 영상의 틀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김아름(34) 씨는 현재 미국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레고 닌자고', '스몰풋',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등 다양한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소니픽처스를 거쳐 현재는 뉴욕에 있는 디즈니 산하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출처: jobsN
김아름씨

- ‘레이아웃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설명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영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한마디로 영화에서 촬영감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면마다 카메라를 어디에 두고 어떤 렌즈를 사용해서 화면 구도를 어떻게 잡고 캐릭터의 동선을 어떻게 할지 정하죠. 영화 화면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장 처음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주로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해요. 그리고 일반 영화에서 CG가 들어갔을 경우 이 장면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미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 ‘프리 비즈(Pre Visualization)’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마블 영화같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주로 프리비즈 작업을 하죠.” 


- 지금 일하고 있는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어떤 곳인가.


“뉴욕에 있는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원래 21세기 폭스 산하에서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회사였어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리오 시리즈, 피너츠 등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왔습니다. 작년에 디즈니에서 폭스를 인수하면서 현재는 디즈니 계열사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출처: 김아름씨 제공
블루 스카이 동료들과 함께

-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이 참여하는지.


“영화의 규모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300~500명 정도의 아티스트들이 제작에 참여해요. 스토리, 콘셉트 아트, 레이아웃, 모델링, 라이팅, 이펙트, 룩뎁, 합성, 편집 파트 등으로 나뉘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듭니다.”


- 그동안 제작에 참여했던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애니멀 로직이라는 회사에서 일할 때는 ‘레고 닌자고’ 같은 레고 무비를 주로 만들었어요. 소니 픽쳐스에 있을 때는 ‘스몰풋’과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제작에 참여했어요.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만큼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곧 개봉할 영화 ‘니모나(NIMONA)’라는 애니메이션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애니멀 로직, 소니 픽쳐스 제공
영화 '레고 닌자고', '스몰풋' 포스터

- 대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고. 원래 꿈이 뭐였나.


“초등학교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쥬라기공원을 봤는데 뇌리에 강하게 남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섭긴 했지만,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할리우드 영화를 시작으로 중학교 때부터는 유럽 영화에 빠졌어요. 영화 잡지를 매번 사서 정독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는데 제 모습을 보고 포기하셨어요. 결국 단국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들어갔습니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죠.”


- 영화를 전공했는데, 특별히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에서 실사영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실험 영화를 다루는 작은 영화제에 자주 참석했어요. 거기서 봤던 작품들에서는 초기 CG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많았는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당시에 CG라고는 영화 매트릭스 같은 초대형 영화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접하기 힘든 시절이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전통적인 영화 제작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이 구현되는 걸 보고 그때부터 CG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김아름씨 제공
(왼)2009 부산단편영화제 무대 위에 오른 김아름씨, (오)필름메이킹 파티에서 찍은 사진

픽사나 디즈니, 드림웍스 같은 곳에서 만든 3D 애니메이션을 보며 기존의 2D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졌어요. 내가 봐도 전문적으로 촬영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완벽하게 촬영 구도를 잡은 작품이었던 거죠. 대체 이건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다가 레이아웃이라는 영역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제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레이아웃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도 없었어요. 미국은 할리우드라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큰 시장에서 다양한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출처: 김아름씨 제공
UCLA에서 공부했을 때의 모습. 첫번째 사진은 김아름씨가 대학원 시절 만들었던 영화의 촬영 모습이다

- 미국 UCLA에서 공부했다고. UCLA는 무엇이 특별했는지 궁금하다.


“UCLA 대학원 영화필름 앤 텔레비전과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공부했어요.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직접 가르쳐주는 수업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특히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수업도 이론보다는 대부분 작품 제작에 집중돼있었고, 커리큘럼도 학생 개인이 본인의 작품 연구에 맞게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아카데미, 애니 어워드 시상식이나 유명 스튜디오 견학, 인턴십 기회도 얻을 수 있어서 학생 때부터 영화 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체험해봤어요. 자연스럽게 프로페셔널로 넘어갈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는데, 어떤 일들을 했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에 LA에 본사를 둔 ‘서드 플로워스(The Third Floor)’에 들어갔어요. 제 첫 직장이었습니다. CG가 많이 들어간 영화를 만들 때 미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 ‘프리비즈(Pre Visualization)’를 하는 회사였어요.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스토리보드를 만든 것이 화제가 됐었는데, 스토리보드 대신에 프리비즈 팀을 운영하려면 무척 돈이 많이 들어요. 영화 제작비를 많이 쓰는 할리우드에서는 프리비즈 수요가 무척 많습니다. 그다음으로 레고 무비로 유명한 ‘애니멀 로직(Animal Logic)’에서 일했어요. 레고 무비를 여러 개 만든 후에 소니 픽처스로 옮겼습니다. 소니 픽쳐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스몰풋’이었고, 애니메이션 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제작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성취감을 느껴보기도 했어요.” 

출처: 소니 픽쳐스, 김아름씨 제공
(왼)영화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포스터, (오)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엔딩크레딧에 올라온 김아름씨 이름

- 레이아웃 아티스트로서 여러 군데서 일했는데, 직장을 옮겨 다니며 일한 이유는.


“외국 영화계는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요. 작품별로 계약하는 계약직인 셈이죠.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지만,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에서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러 회사를 옮겨 다녔던 측면도 있어요. 예를 들어 ‘애니멀 로직’에서 일할 때 레고 무비를 여러 편 연속으로 만들다 보니 상상력의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다양한 캐릭터를 접하며 다양한 앵글을 떠올려야 하는데, 레고 캐릭터만 접하며 레고가 예쁘게 나오는 구도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이 스타일에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옮겼던 회사 소니 픽처스에서 ‘스파이더맨’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레이아웃 아티스트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레이아웃을 한다는 건 애니메이션 영화의 첫 밑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제가 작업한 것을 바탕으로 나머지 아티스트들이 하나씩 덧붙이게 되죠. 장면에 있어서 주도적인 일을 한다는 느낌도 있어요.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레이아웃 아티스트를 하다 보면 내가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카메라 구도를 잡고 캐릭터 동선을 제가 결정하다 보면 연출의 맛을 맛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출처: 김아름씨 제공
(왼)소니픽쳐스에서 찍은 사진, (오)소니픽쳐스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팀 단체사진

- 본인이 만든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스파이더맨의 마지막 배틀씬이 있어요. 클라이맥스 부분 중에 열차 위에서 싸우는 장면을 만들었는데, 장애물이 많아서 기술적으로도 무척 복잡한 장면이었죠. 다이내믹한 액션씬과 더불어 흑인 스파이더맨과 친구들이 슬프게 인사하면서 작별하는 장면이 이어져요. 가장 감성적인 장면과 액션씬 이 두 가지 장면을 함께 만들 수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만들면서 감동받은 장면이에요.”


-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시는지.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있는 작업이다 보니 야근이 많아요. 소니 픽처스에서 스파이더맨을 만들었던 1년 동안은 거의 대부분 야근을 했었죠. 데드라인에 가까워서는 주 7일을 일해보기도 했어요. 야근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은 확실히 해주지만, 바쁠 때는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재밌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라 늘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 김아름씨 제공
취미는 클라이밍과 하이킹

- 개인적인 취미가 있다면.


“늘 일만 보고 달려왔어요. 스파이더맨 작품을 맡으면서 각종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즐겁기도 했죠. 그런데 스파이더맨을 만들었던 2017년을 떠올리면 일한 것 밖에 기억이 안 나요.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삶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크로스핏 같은 운동을 자주 해요.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합니다.”

출처: jobsN
김아름씨

- 꿈이 무엇인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개인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시나리오를 써보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늘 기록해둡니다. 지금은 많은 작품을 해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러다 언젠가는 내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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