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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아들 잃었지만..수많은 서울대 아들딸 얻었죠"

조회수 2020. 9. 21. 10: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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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기술보다는 야구 정신, 팀플레이를 가르쳤다"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퇴임
프로 정상에 섰다가 10년 무보수 학생지도
“여기서 수많은 아들딸 얻어”

2월22일 서울대학교 야구부원들과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광환 감독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유니폼을 입은 재학생부터 정장 차림의 졸업생까지 제자 약 80명이 모였다. 이광환 감독은 2010년 5월부터 서울대 야구부를 맡아 10년간 지휘했다. 보수는 없었다.

출처: 조선DB·SBS 뉴스화면 캡처
퇴임식에서 제자들의 편지를 받은 이광환 감독. 오른쪽은 2010년 야구부를 맡기 시작했을 때 모습

◇매일 2시간 일찍 나와 운동장 정리


그가 처음 서울대 감독을 맡겠다고 했을 대 주변 사람들은 반대했다. ‘격이 안 맞는다’는 것. 이광환 감독은 1982년 프로야구 창단 당시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코치였다. OB에서 88년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았고, 92년부터 4년간 LG트윈스를 이끌었다. LG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94년 사령탑이 바로 이 감독이었다. 한화를 거쳐 2008년 우리 히어로즈를 마지막으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끝마쳤다. 쉽게 말해 그는 한국프로야구감독으로 정점에 올랐던 사람이다. 


KBO 육성위원장이었던 2010년, 서울대에서 야구 지도자를 육성하는 야구아카데미를 맡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고 경기하는 선수들을 본 그는 서울대 야구팀 감독을 자청했다. 물론 무보수였다.

출처: 서울대 야구부 페이스북
이광환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10년을 서울대에서 보냈는데 사실 감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도 아니고, 그냥 야구가 좋아서 모인 친구들이에요. 그 친구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종의 ‘도우미’였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오후 3시면 야구장에 나왔다. 야구부 훈련은 5시였지만, 미리 나와 운동장에 있는 돌을 주웠다. 물도 뿌리고, 고장 난 기구들을 손봤다. 운동장이 울퉁불퉁하면 불규칙 바운드가 생겨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다. 10년간 매일같이 돌을 주었지만, 이 감독은 “땅이 워낙 좋지 않아 애들이 다칠까봐 돌을 주었다. 내 아이들 같아서 힘든지 몰랐다”고 했다.

출처: SBS 뉴스화면 캡처
투수를 지도하고, 운동장에서 돌을 골라내는 모습

◇야구 기술보다는 정신 강조해


서울대 야구부는 야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통산 성적은 1승 1무 316패. .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 와서야 방망이를 잡아 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한 해 팀예산은 150만원. 후배들에게 유니폼을 물려줘야 해 이름 없이 번호만 적힌 유니폼을 입는다. 1976년 창단한 팀의 전성기는 2004년. 당시 선수들은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불가능이라던 1승과 1무를 거머줘었다. 사실 이 감독 재임시절 10년간 팀은 단 1승, 아니 1무도 거두지 못한 셈이다.

출처: 서울대 야구부 페이스북
(위) 서울대 야구부 통산 성적과 이광환 감독 소개 (아래) 이름 없이 등번호만 적힌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이 감독은 야구부원들에게 기술보다는 야구 정신을 강조했다. 서로 배려하는 법, 팀플레이를 하는 법을 가르쳤다.


“야구보다는 희생정신·단체정신을 가르쳤어요. 운동장에 쓰레기가 많은 데도 안 줍고 그냥 가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죠. 야구부뿐 아니라 일반 동아리들도 운동장을 빌려서 연습했는데, 따로 정비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지저분했어요. 우리라도 청소하자고 쓰레기도 줍고, 깨끗하게 청소시켰어요. 처음엔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다들 알아서 잘해요. 사회에 나가서도 솔선수범해서 궂은일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출처: 서울대 야구부 페이스북
2014년 동경대와 교류전을 한 서울대 야구부

◇앞으로도 매년 2월 전지 훈련 함께할 것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만의 특별한 규칙도 만들었다. 학점 3.5점이 넘어야만 야구부 활동을 할 수 있다. 부원들은 성적 경쟁에 힘들어하면서도, 야구가 좋아 매일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야구부 출신 의사나 판검사, 국가고시 합격생도 나왔다. 


이광환 감독은 최근 10년을 동고동락한 서울대를 떠나 제주도로 내려갔다. 폐 건강이 나빠져 공기 좋은 제주에서 살기로 했다. 그는 야구로 거쳐 간 수많은 직책 중에서 서울대 감독 생활이 가장 보람이 컸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오래 다닌 학교도 팀도 서울대다. 그는 앞으로도 매년 2월 제주도 전지 훈련에서 서울대 야구부를 만날 계획이다.

출처: 서울대 야구부 페이스북
2019년 2월 제주 동계훈련. 제주시 주니어 리틀팀과도 경기했다

“서울대 야구부가 매년 서귀포에서 겨울 전지 훈련을 하니까 자주 볼 겁니다. 또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오라고 말했어요. 살다가 어려운 일도 많고, 힘든 일도 있을 텐데 그때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내려와서 머리도 식히고 편하게 쉬고 갔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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