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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후 정신 번쩍" 바로 퇴사한 PD, 지금은..

조회수 2020. 9. 21. 1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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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드라마 PD가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사장님으로 사는 사연
와인바 '십분의일' 이현우 대표
PD에서 교통사고 겪고 퇴사
'청년 아로파' 월급 10분의 1씩 매달 회비로

오래된 인쇄소와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을지로 3가. 지도 앱을 켜고 '십분의일'을 찾아 좁은 길 사이 사이를 지나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커피, 와인, 치즈, 맥주, 소주 없음, 각종 안주'라고 써 있는 허름한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와인바 십분의일이 자리하고 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2018년 을지로에 청년 창업가들이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로 소문이 나 지금까지도 청년층이 많이 찾는다. 십분의일은 그보다 이른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1.5세대인 셈이다. 이뿐 아니라 와인바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0여명의 청년이 모인 '청년 아로파'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중 이현우(33) 대표가 중심이 되어 이끌고 있다. 서울시 중구 저동에서 이현우 대표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십분의일 이현우 대표

◇각자 월급 ‘10분의 1’로 운영하는 와인바


-십분의일에 대해 더 소개해주세요.


"10여명의 청년이 모인 공동체 '청년 아로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캐주얼 와인바입니다. 제가 전담해서 대표로 운영하고 있고 가게 내에 생기는 크고 작은 이슈는 모두 아로파에 공유하고 함께 결정합니다. 손님은 요일마다 다르지만 100명 안팎으로 찾아옵니다. 주말에는 조금 더 많아요. "


-'청년 아로파'는 뭔가요?


"일종의 경제 공동체입니다. 언론고시를 함께 준비했던 친구들이 모여서 시작했어요. 2012년 '최후의 제국' 다큐멘터리에서 아누타섬에 사는 아누타 부족이야기를 보고 영감을 얻었죠. 이 부족은 인구가 적고 서로 협동하면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공생의 가치를 '아로파'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름을 따왔어요. 나중에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자는 게 중점이었습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동체를 원했죠.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0명에 가까운 멤버가 생겼습니다. 월급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내면서 자금을 모았어요. 한 달에 한 번 총회를 열어요. 여기서 멤버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죠. 처음엔 부딪히는 일도 많아서 대학교 팀플을 매달 하는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토론하는 법, 의견 조율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또 공동 운영이기 때문에 십분의일에서 생긴 영업이익을 일정 비율에 따라 아로파 보유금, 직원 인센티브, 멤버 배당금 등으로 나눕니다. 배당금은 1/N 이죠."

출처: 이현우 대표 제공
십분의일에는 간판이 없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나오는 와인바. 이곳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청년 아로파'

◇드라마 PD 그만두고 와인바 시작


이현우 대표는 드라마 PD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드라마 PD를 꿈꿔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고 2014년 4월 입사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나왔다.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1년 차 때부터 퇴사 생각을 했어요. 글도 안 써지고 다른 사람보다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러다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작품을 할 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현장에서 밤샘 작업 후 집에 가면서 '차라리 사고 나서 병원에 누워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사고가 났죠. 이렇게 일하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청년 아로파도 점점 구체화할 때라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왜 와인바였고, 왜 을지로에서 시작했나요?


"여행을 다녀온 후 2016년 2월부터 아로파 멤버들과 함께 1년 정도 준비했습니다. 6개월은 무엇을 할지, 가게를 한다면 어떤 콘셉트로 할지 정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수익을 내서 먹고살 수 있는 분야를 택해야 했어요. 큰 자본이나 대단한 기술이 아니더라도 시작할 수 있어야 했죠. 그렇게 정한 것이 와인바였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익선동이나 연남동을 살펴봤는데 이미 권리금이 비쌌습니다. 준비할 때는 멤버 대부분 사회초년생이라 자본금이 적었어요. 저렴한 금액에 들어갈 수 있는 을지로를 선택했죠. 인테리어, 메뉴 등 모든 것은 멤버들의 의견 조율을 통해 결정했습니다. 이름은 소득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낸다는 청년 아로파 룰에서 따왔습니다. 2016년 12월 문을 열었습니다."

출처: 이현우 대표 제공
PD시절 이현우 대표.

◇네 번째 브랜드까지 오픈


처음에는 지인을 초대하거나 회사 회식을 이곳에서 열었다. 그렇게 오픈한 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가게를 찾는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이현우 대표는 "을지로에 레트로 공간이 많아지고 수요가 늘면서 사람이 늘면서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분들도 함께 많아졌다"고 했다.


-십분의일 시급도 높다고 하는데…


"처음엔 최저시급으로 시작합니다. 근속 3개월마다 시급을 500원씩 인상해주고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시급은 1만원으로 정했습니다. 좋은 복지를 제공하면 아르바이트지만 오너십을 갖고 오래 근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지금 있는 직원들 대부분 오래 일했고 다들 9500원~1만원 정도의 시급을 받고 있습니다."


-청년 아로파의 다른 브랜드도 있다고 합니다.


"십분의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 확장하고 싶어서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옆 건물에 들어갔는데 마침 빈 공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아로파의 두 번째 브랜드 와인바 '빈집'을 시작했습니다. 또 아로파 멤버 중 모임을 확장하고 싶은 멤버가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양조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모여서 노량진에 '밑술'이라는 와인바를 시작했습니다. 이게 세 번째 브랜드입니다. 네 번째 브랜드는 '아무렴, 제주'입니다. 제주도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예요. 십분의일처럼 사업장에서 생긴 영업이익은 나누고 있습니다.


멤버들의 꿈을 지원해주는 게 아로파 존재 이유기도 합니다.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한 멤버가 있습니다. 평소 제주도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제주도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이렇게 사업성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출처: 이현우 대표 제공
청년 아로파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브랜드. 십분의일의 허름해 보이는 문을 책 표지로 결정했다.

◇낮에는 출근, 밤에는 와인바 운영


이현우 대표는 2019년 6월 재취업에 성공했다.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와인바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이 가게를 운영한 지 3년 차였습니다. 매너리즘이 찾아왔어요. 골목 안에 고인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주변에서 술집이나 다른 창업을 할 때 제게 많이 물어봤습니다. 이걸 직업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한국협동조합 창업지원센터’를 발견하고 지원했습니다. 공동체를 운영하고 실제 창업을 한 경력을 인정받아 합격했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해드리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배우는 단계입니다.”


최근 에세이 ‘십분의일을 냅니다’도 출간했다. 청년 아로파 탄생 과정, 십분의일 준비 과정과 오픈 하고 1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원래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지만 가게 운영으로 바쁘고 메모리 카드도 분실해 글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현우 대표는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우리들의 얘기다. 4년째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함께 하고 있다.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나름 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일, 사람, 돈 그리고 꿈 같은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공동체나 모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혼자’를 말하지만 새로운 공동체, 협업 등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게 운영을 잘하고 싶습니다. 경험을 공유하려면 좋은 사례가 있어야 하니까요. 또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공동체에도 다양한 모델이 많은데 이를 공부하고 습득해서 전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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