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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1위 이동국보다 12살 많은 일본 축구영웅의 근황

조회수 2020. 9. 21. 17: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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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살 현역 축구 선수 "헉, 대박이 아빠 보다 12살 많아요"

독일의 이적시장 전문매체 ‘트란스퍼 마르크트’가 2월16일(현지시각) 만 16세부터 40세까지 연령별 시장 가치가 가장 높은 축구 선수를 선정해 발표했다. 프랑스의 만 21세 선수 킬리안 음바페가 몸값 2억 유로(2780억원)로 전체 선수 중 가장 높은 시장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리오넬 메시(만 32세)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만 35세) 역시 동 연령대 선수 중 최고로 꼽혔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 프로축구의 전설 이동국(전북 현대)이 평가 대상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만 40세 축구 선수 중 최고로 꼽혔다는 점이다. ‘대박이 아빠’ 이동국은 지난 시즌 개인통산 K리그 300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며 불혹의 나이에도 건재함을 과시했고, 9골 3어시스트로 팀내 득점 3위에 올랐다. 

출처: J리그
현재의 미우라 가즈요시(52)

선수 생활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이동국이지만 일본의 이 선수에 비하면 굉장히 어린 편에 속한다. 바로 FC요코하마에서 뛰고 있는 미우라 가즈요시(만 52세)다. 이동국의 소속팀인 전북의 조제 모라이스 감독은 작년 5월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불혹에 접어들었는데 체력적 안배가 걱정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이동국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미우라를 보라"고 대답했다. 일본의 1세대 축구 영웅 미우라 가즈요시는 1967년생으로 2월26일이면 만 53세가 된다. 한국축구의 전설 황선홍보다는 1살 많고, 홍명보 보다는 2살 많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 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 그가 속한 요코하마FC가 올해 J리그(일본 프로축구 리그)로 승격함에 따라 미우라는 13년만에 1부 리그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울 예정이다.


한-일전 열기가 가장 뜨거웠을 때의 ‘공공의 적’


미우라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30대 이상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한일전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1990년대 중후반 일본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가 미우라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1997년 도쿄대첩’ 당시 일본 팀의 스트라이커가 미우라다. 당시 한국 축구팬 사이에서 ‘0순위 공공의 적’은 단연 미우라였다.   

출처: 나무위키
1990년대 전성기 시절의 미우라

과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국에 연전 연패해 ‘공한증’을 극복하는 게 목표였고, 1980년대부터 어린 청소년 선수들을 브라질에 유학보내기 시작했다. 미우라는 일본의 1세대 해외 유학파 축구선수로 1986년 브라질 산투스 FC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1990년대 들어 미우라가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한일 축구대표팀 간 경기력은 거의 대등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이 ‘도하의 기적’(1994년 미국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던 1993년, 한국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게 미우라였다. 당시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일본은 미우라의 결승골에 힘입어 한국을 1대0으로 꺾었다. 일본이 한국을 꺾은 것은 1984년 이후 9년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라크와의 최종전에서 종료 30초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너졌고, 북한을 3대0으로 이긴 한국이 월드컵에 극적으로 진출했다. 일본의 첫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은 물거품이 됐다. 

4년이 흘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에 나선 일본은 도쿄대첩에서 패했지만 한국과의 2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기어이 첫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예선전에서 주포로 활약했던 미우라로선 월드컵 잔디를 밟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정작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만다. 당시 일본을 이끌었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만 31세인 미우라의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젊은 선수 위주의 팀을 새로 꾸린 것이다. 반면 당시 만 19세였던 이동국은 한국 대표팀의 막내로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한 이동국은 팀이 5대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선보이며 단박에 한국팀의 에이스로 떠오른다.


2000년대 초반 일본서 박지성과 한팀에서 뛰기도


브라질과 이탈리아 등에서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낸 미우라는 2000년대 들어 고국에 돌아와 J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다. 초년병 시절의 박지성과 함께 교토 퍼플상가 소속으로 함께 뛰기도 했다. 박지성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미우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바 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구단 인터뷰에서 “미우라에게 진정한 프로 정신을 배웠다.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었다.


미우라는 2005년 요코하마 FC에 입단해 현재까지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만 49세였던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미우라는 “50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게 목표”라고 했으나, 현재 그는 현역 축구선수로 만 53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17년에는 만 50세 14일의 나이로 득점에 성공하며 잉글랜드의 전설적 축구선수 스탠리 매튜스(만 50세 5일)을 제치고 전 세계 역대 최고령 득점기록을 세웠다.


‘철저한 자기 관리의 표본’ vs ‘전형적 일본식 영웅 만들기의 산물’


많은 축구팬들은 미우라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으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우라가 과연 축구 선수로서 아직도 경쟁력이 있는가’를 두고 일본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우라가 아직도 축구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은 그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전형적인 일본식 영웅 만들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동네마다 50년, 60년 된 우동 가게를 찾기 쉬운 일본에선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출처: J리그
미우라

실제로 작년에 미우라가 뛴 경기는 3경기 109분이 전부다. 시즌 초반인 3월과 4월 각각 1경기 씩 나와 54분, 52분을 소화했고 이후 21경기동안 후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42분에 출장해 3분을 뛴 게 전부다. 앞선 2경기는 순위 싸움이 치열하지 않은 시즌 초반이고, 마지막 경기 출장은 사실상 레전드를 예우하기 위해 팀이 배려한 것이다.


이보다 한 해 전인 2018년에도 미우라는 9경기에 출장했으나 출장 시간은 총 56분이 전부였다. 2분, 7분, 16분, 1분, 1분, 18분, 3분, 10분, 1분씩 뛴 게 전부다. 사실상 경기 종료 직전에 투입되는,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출전이었다. 미우라가 최근 6시즌 동안 넣은 골은 6골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란에도 미우라는 올해도 다시 운동장에 나선다. 최근 진행한 J리그 개막 행사에서 일본 프로축구 연맹은 바르셀로나 출신 세계적 스타로 현재 빗셀 고베에서 뛰고 있는 안드레 이니에스타와 미우라의 만남을 성사시키며 미우라를 흥행 카드 전면에 내세웠다. 과연 미우라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할지, 허울 뿐인 영웅으로 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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