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사관학교→대통령상→보잉사 임원..지금은?

조회수 2020. 9. 21. 17:4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대통령상 받은 공군 반 대위가 보잉사 나와서 택한 이 사업은
‘헤어수트 매치’ 반은정 대표
공군 물류 개선으로 대통령상 받아
전역 후 보잉서 최단기간 임원 승진
나만의 아이템 찾다가 가발 시장 도전

트랜디한 스타일과 고품격 서비스로 가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자마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헤어수트 매치' 반은정 대표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대위까지 복무한 후 세계적인 항공기 회사 보잉(Boeing)에 입사해 6년 만에 임원까지 올랐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가발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밑바닥까지 파헤쳐 보는 성격이 강점이라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삼성동 ‘매치’ 사무실을 찾아갔다.

출처: jobsN
반은정 대표

- 왜 가발 사업에 뛰어들었나.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보잉에서 일하면서도 언젠가는 저의 아이템으로 저만의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K-뷰티 산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어요. 보잉에서 나온 후 잠시 미용 업계에서 임원으로 일했었는데, 그때 가발 산업의 시장성을 발견했습니다. 가발과 헤어 스타일링을 결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탈모를 고민하며 가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 데 가발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은 업계라서 잠재력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발 업계를 밑바닥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 가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가발 시장의 규모가 궁금하다.


“가발 사용하는 사람 중에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쓰는 분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탈모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가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죠. 가발의 연간 시장 규모가 1조5000억원 정도 돼요. 그런데 현재 가발 시장에는 절대 강자가 없어요. 가발 업계에서 1,2위 회사의 점유율이 5%가 안 될 정도로 개인 상호를 걸고 영업하는 소규모 가발 업체들이 대부분이에요. 미용실 업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출처: 반은정씨 제공
공군사관학교 시절 반은정 대표의 모습

-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밑바닥부터 파헤치며 공부하는 습관이 있어요. 가발 산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우선 직접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재를 털어서 직접 가발샵을 열었습니다. 1년을 계획하고 프로토 타입으로 운영했어요. 주말도 없이 매일 나가서 전단지 돌리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관련 기술이 없으니 스타일리스트 옆에서 손님 머리 감겨드리는 일을 돕거나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업계의 특성이 무엇인지, 고객들의 성향은 어떤지, 얼마나 힘든 직종인지 몸소 체험했죠. 동시에 가발 업계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발의 장인부터 제조 공장을 하시는 분, 망이나 클립 등 부자재를 생산하는 분, 유통을 하시는 분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모두 의아해하셨죠. 젊은 사람이 이 업종에 관심을 보이는 걸 처음 봤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경계하시다가 제 이야기를 듣고는 신선하다며 흔쾌히 가르쳐 주셨어요. 그렇게 1년 동안 공부한 후에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방에 틀어박혀서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사업 계획을 발표하니 투자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헤어수트 매치’가 시작됐어요.”

출처: 매치 제공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최상 등급의 재료와 수작업 공법으로 고객 만족을 실현하는 매치. 왼쪽은 반은정 대표가 유럽 마케팅 디렉터와 현지 시장 전략을 논의하는 모습, 오른쪽은 이탈리아 바버샵 매장에서 제품 성분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 가발을 필요로 하지만 숨어있는 고객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론 조사를 해보니 가발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자들이 꺼려 하는 성향이 있었어요. 부끄럽다, 창피하다, 촌스럽다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무척 강했습니다. 가발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고객과의 만남이 필요하죠. 고객이 가발샵에 걸어들어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해요. 그렇다 보니 드러내놓고 영업하는 가발샵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가발샵은 대부분 건물 위층 구석의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선 가발이라는 상품에 대한 브랜딩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어요. ‘매치’라는 브랜드를 소비할 때는 선택의 순간부터 경험하는 순간까지 고객이 움츠려드는 심리를 없애고 싶었어요. 내가 자발적으로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나도록 가발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 했던 작업이 가발이라는 말 대신에 ‘헤어수트’라는 단어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잘 맞춰진 정장 수트를 입는 것처럼, 머리에 입는 수트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한 거죠. 단어를 바꿔서 거부감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직영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들을 모두 고급 바버샵에 마련했어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바버샵에 샵인샵 형태로 만들었죠. 바버샵에 있는 프라이빗 공간으로 가서 친절한 직원으로부터 일대일 상담을 받으며 모든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구석진 곳에 위치한 가발샵이 아닌, 환하고 우아한 곳으로 당당하게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출처: 매치 제공
이탈리아의 80년 전통 가발가게에서 가발 장인과 제품 개발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중

- 소개하고 있는 가발들이 연예인 헤어스타일처럼 트랜디하다.


“가발과 미용 업계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을 모셔왔어요. 젊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분석해서 남자들의 헤어스타일 중에 가장 선호도가 높은 스타일로 시즌마다 9가지 가발을 소개하도록 했어요. 9가지 중에 선택을 하면 스타일리스트들과의 상담을 통해 두상과 얼굴 톤에 따라서 머리 색깔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결정하게 되죠. 선호도가 높은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만들다 보니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습니다.”


- 고급화된 서비스를 위해서는 우선 가발의 품질이 보장돼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보잉에 일할 때 품질 관리를 담당했었어요. 우리 고객들은 최고의 가발을 써야 한다는 의지 때문에 가발을 만들 때도 품질만큼은 일등이 되고 싶었습니다. 품질은 일단 좋은 재료를 가져오는 것이 기본이라고 배웠어요. 가발을 분해해 가며 제조업체에서 원산지를 따져 물었어요.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사용자가 알아채지 못한다는 이유로 저렴한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었어요. 그게 싫어서 원자재를 하나씩 다 바꿨습니다. 영국에서 망을 주문해서 가져오고, 형상 기억모는 일본에서 가져오는 등 가장 좋은 재료들로 바꿨어요.”

출처: 반은정씨 제공
보잉(Boeing)에서 일하던 시절. 왼쪽은 인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 그러면 생산 원가가 높아질 텐데.


“원가가 높아지죠. 그런데 전체적인 가격에서 따지고 보면 엄청난 차이는 아니었어요. 눈에 보일 정도로 품질이 향상되는 것에 비하면 충분히 지불해도 될 수준이었습니다. 영국산 망을 썼다고 고객들이 감탄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품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갈 생각입니다. 기존의 가발 가게들은 정가가 없는 경우가 관행처럼 돼있어요. 같은 가발의 가격이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하기도 하죠. 그게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제품 개발 비용과 서비스 비용을 계산해서 책정한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 실제 이용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업계 반응도 궁금하다.


“가발을 이미 사용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실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탈모 콤플렉스가 있으신 분들은 가발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것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처음 가발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어요. 가발이 필요했는데 기존 가발 가게에 가기 망설였던 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가발 시장을 뺏어오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어요.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존 시장을 나눠먹기보다는 소비자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매출도 매월 30~4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상담 문의도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어요. 특히 상담 후에 직접 찾아오셔서 구매하시는 비율이 무척 높습니다.”

출처: 반은정씨 제공
공군사관학교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한 반은정 대표. 영어 스피치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중간)

- 개인적인 이력이 특이하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는데, 원래 꿈이 조종사였나.


“조종사를 꿈꿨던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진로 고민을 하다가 막연히 비행기와 관련된 글로벌한 비즈니스 우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공군사관학교를 추천해주셨어요. 공군사관학교에 대한 자료를 펼쳐놓고 분석해보니 국제관계학과가 눈에 띄었어요. 여자 생도가 드물었던 시절에 입학했죠.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 덕분에 교내와 외부 동아리 활동들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선배들이 ‘너는 공사를 세 번 다닌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군대에서 물류의 중요성이 눈에 들어왔어요. 전쟁에서 물류의 패권을 쥐고 가져가는 쪽이 장기적으로 승리하고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걸 역사가 기록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임관할 때 군수 장교를 선택했습니다.”


- 군대에 있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전군의 해외 수출입 군수품을 관리하는 부서를 맡은 적이 있어요. 처음 맡을 당시에는 해외로 오고 가는 군수품들이 대부분 긴급품인데도 6개월 이상 도착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절차가 복잡했어요. 예정된 날짜에 물자가 공급되는 적시 수송률이 43%밖에 되지 않았죠. 이걸 고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관련 부서들을 대상으로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복잡한 규정을 바꿨어요. 미국 측에서 소파(SOFA) 규정을 들어 난색을 표했을 때는, 여러 번 수송기를 타고 미군부대로 날아가 관련자들을 만나고 싸워가며 규정을 바꿔나갔죠. 1년 만에 적시 수송률을 98%까지 올려놨어요. 이 공로를 인정받아서 대통령 상을 받았습니다.

출처: 반은정씨 제공
레바논 UN 평화유지군 파병 시절

자원해서 해외 파병을 갔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대위였을 때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파병을 갔어요. 유엔과 소통하며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일을 맡았었죠. 전 세계서 온 유엔군들과 협업을 하며 시야가 넓어졌어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통관 체계를 줄이고 불필요하게 쓰이는 예산을 아껴서 국방비 절약에 보탬이 되기도 했어요. 군 생활은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고 주변의 평가도 좋았어요. 하지만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여한이 없었어요. 군복을 벗고서도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며 대위에서 군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 이후로 세계적인 항공기 회사 보잉에 입사했다. 무슨 일을 담당했나.


“제가 보잉에 입사할 당시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보잉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 주재원 숫자를 줄이고 현지 채용을 늘리던 시기였어요. 마침 보잉 코리아에서 오랜만에 한국인을 채용했는데 제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보잉 항공기의 부품 공급회사의 생산 품질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좋은 제품은 결과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모든 과정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죠. 그러다 보잉에서 F-15K 전투기와 무기 체계의 군수 담당자를 뽑는다기에 덜컥 지원을 했어요. 그 자리에 처음으로 한국 직원을 선발했는데 제가 뽑혔어요. 군에 있을 때 공군과 보잉 사이의 업무 관계에 이미 익숙했던 것이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업무 성과가 좋아서 승진이 빨랐어요. 신입사원인 레벨 1에서 시작한 지 6년 만에 이사 직급까지 올라갔습니다.”

출처: 반은정씨 제공
반은정 대표는 한국인 직원 최초로 보잉(Boeing) 메거진 커버스토리에 올랐다

-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계 임원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그만둔 이유가 궁금하다.


“임원까지 빠른 속도로 올라가서 안정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됐을 때, 앞으로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왔던 일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죠. 회사에서 앞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한정돼 있었고 이때야말로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글로벌한 기업을 만들어 보겠다는 어린 시절 꿈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가발 사업은 사용자들에 대해 깊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했어요. 많은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색채와 스타일이 없어지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제 주변 남자분들 대부분의 삶이 가족에게 맞춰지고 점점 자기 스타일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외향이 바뀌면 내면이 바뀝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가장 쉽게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가 탈모라고 봤어요. 가장 어려운 문제점을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어떤 화법으로 전달해야 자존심 상하지 않고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사업도 그런 방향으로 키워가고 싶어요. 가발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미래에는 다른 분야의 스타일까지 제안하고 매치시켜 주고 싶어요. 회사 이름을 ‘매치’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jobsN
반은정 대표

- 열정적인 모습을 보니 도전을 즐기는 것 같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아낌없이 다 써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에요. 그리고 살아오면서 동고동락했던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창업하고 회사를 키워나가는 단계이긴 하지만, 훗날에는 내가 받아온 도움을 다시 사회에 나누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