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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맞고 다니던 내성적인 성격의 왕따 중학생의 대반전

조회수 2020. 9. 22. 16: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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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당하던 내성적인 아이, UFC 최강 파이터 되다

아일랜드 록그룹 U2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크랜베리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좀비(Zombie)를 부른다. 좀비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폭탄 테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쓴 곡이다. ‘좀비’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면 옥타곤(UFC의 철창 팔각링)에 좀비가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쓰러져도 곧장 일어나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전사(戰士)가 링 위에 오른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의 이야기다.


정찬성은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때 싸움은 학교에서 ‘짱’이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와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키가 작아 싸우면 계속 졌다. 삐쩍 마른 체형에 사투리를 쓰는 정찬성은 ‘왕따’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악바리 근성 하나로 버텼다. 정찬성이 격투기를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인 2002년이다. 이모의 권유였다. 이모는 조카가 힘을 키우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길 바랐다. 


2008년 정찬성을 처음 만난 전찬열 TFC(코리안탑팀) 대표는 “만날 학교에서 맞고 다니니까 (정)찬성이 이모가 보다 못해 합기도 도장에 데려갔다더라”며 “그전까진 운동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였다”고 했다. 


정찬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4년 실전에 가장 가까운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 학원과 체육관을 놓고 고민하다 친구와 함께 체육관을 선택했다. 그는 금세 격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때 처음으로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별명인 ‘좀비’도 이때 붙었다. 그는 “매일 자정까지 운동했다. 잠도 안 자고 연습한다고 해서 체육관 관장님이 ‘좀비’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전문적으로 격투기를 가르쳐주는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경북과학대 이종격투기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주짓수를 배웠다. 주짓수는 유도의 전신인 유술(柔術)의 일본식 발음이다. 유술의 기본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상대방의 관절(급소)을 제압하는 것이다.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극복할 수 있다. 정찬성은 주로 동기생들끼리 주짓수 훈련을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UFC 파이트 나이트 부산’ 페더급 경기에서 정찬성이 에드가에게 TKO 승을 거둔 뒤 오른손을 높이 들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월세 18만 원짜리 고시원


졸업 후에는 코리안탑팀에 들어가 레슬링을 익혔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격투기 대회에 출전한 그는 생활비와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호프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만 해도 참가비를 내고 대회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건 꿈같은 얘기였다. 서울 월계동 광운대 앞의 월세 18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지냈다. 정찬성은 싸울 수 있는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많이 때리고 많이 맞으면서 컸다. ‘횡성한우축제’ 같은 이벤트 경기에도 나갔다. 


이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10년 초까지만 해도 무명 파이터에 불과했던 정찬성은 WEC 48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대결을 통해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 경기는 ‘세기의 난타전’이란 평가를 받았다. 


WEC(World Extreme Cagefighting, 경량급 위주의 격투기 단체)가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로 흡수되면서 정찬성도 2011년 UFC 무대에 입성했다. 데뷔전 당시 UFC 사상 처음으로 고난도 그라운드 기술인 ‘트위스터’로 승리한 그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마크 호미닉(캐나다)을 상대로 7초 만에 KO승을 거두며 ‘7초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외신은 수없이 맞고 쓰러져도 벌떡 일어서서 싸우는 그를 ‘코리안 좀비’라 부르며 주목했다. 


이를 발판으로 정찬성은 한국인 최초로 타이틀전에 도전했다. 2013년 8월 페더급 최강자 조제 알도(브라질)와의 타이틀전에서 어깨 탈구 탓에 TKO로 패하기는 했지만 대등하게 싸워 한국인 첫 UFC 챔피언 탄생 가능성을 보여줬다. 20대 중반에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정찬성은 이후 군복무와 부상으로 3년 6개월의 긴 공백이 생겼다. 2018년 11월 야이르 로드리게스(멕시코) 전에서는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팔꿈치 공격에 쓰러지는 충격패도 당했다. 하지만 정찬성은 다시 일어섰다. 2019년 6월 랭킹 5위 헤나토 모이카노(브라질)를 경기 시작 58초 만에 오른손 카운터펀치로 쓰러트렸다. 그리고 2019년 12월 21일 4년 만에 국내에서 치러진 UFC 대회를 화끈한 승리로 마무리했다.

01_ 2011년 3월 26일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에서 열린 UFC 경기에서 정찬성이 미국의 레너드 가르시아에게 ‘트위스터’ 기술을 걸고 있다. 이날 정찬성은 UFC 역사상 트위스터로 승리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02_태극기가 새겨진 정찬성의 마우스피스.

UFC 전설을 꺾다


정찬성은 이날 오후 7시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 ‘UFC 파이트 나이트 부산’ 메인이벤트에서 프랭키 에드가에게 TKO 승을 거뒀다. 국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옥타곤에 들어선 정찬성은 경기 시작 1분도 안 돼 어퍼컷에 이은 좌우 연타로 에드가를 쓰러트렸다. 에드가는 라이트급 챔피언 출신으로 UFC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는 선수였다. 정찬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 모든 메인이벤트가 내게 연습이 된 것 같다”며 “나는 (페더급 챔피언인 알렉산더) 볼가노프스키를 원한다”라고 소감을 전한 뒤 눈물을 흘렸다. 


정찬성의 소속사는 특이하게도 래퍼 박재범이 대표로 있는 힙합 레이블 AOMG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체육관을 다니던 박재범에게 2018년 광고와 관련해 상의하다가 한 식구가 됐다. 정찬성은 “AOMG 식구들이 한 달에 한 번 운동을 하러 오는데 강도 높은 운동을 시킨다”며 “어차피 한 달에 한 번 오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정찬성은 타격과 그라운드(레슬링처럼 바닥에서 뒹굴며 구사하는 기술), 실력을 모두 갖췄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른 성품이다. 정찬성은 겸손하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나는 특별해’ ‘내 타격 기술은 세계 최고야’라고 자만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상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상대도 똑같이 생각한다’라고 가정하고 더 많은 운동을 하고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특별하다고 자부하는 순간 멈춰버리게 됩니다.” 정찬성은 애국심도 각별하다. 과거 캐나다 종합격투기 선수 조르주 생 피에르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가라테(일본 무술의 하나) 도복을 입고 UFC 경기에 출전하자, 정찬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 피에르에게 긴 영문 편지를 보냈다. “과거 일본의 행위는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다를 게 없다”며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착용한 것은 좋지 못한 본보기”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생 피에르는 공식 사과했고, 팬들은 정찬성을 ‘개념 파이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찬성은 운동복은 물론이고 치아 보호를 위해 입에 무는 마우스피스에도 태극 문양을 새겼다. 그는 “로마 검투사들은 죽는 순간까지 명예를 위해 싸웠다고 한다”며 “내가 정식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스스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링에 오르고 있다”고 했다.


글 톱클래스 최우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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