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월급쟁이 신화 주인공입니다

조회수 2020. 9. 23. 1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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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부터 CEO로, 직장인 '월급쟁이 신화'의 주인공은
KT 새 얼굴 구현모 사장, 87년 평사원으로 입사
‘광폭 횡보’ SK텔레콤 박정호 사장 ‘최태원의 복심’으로 불려
지난해말 퇴임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고졸 신화’

2020년 3월부터 KT를 이끌어 갈 얼굴이 바뀐다. 2019년 12월 27일 KT 이사회는 구현모 현 KT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을 차기 CEO(최고경영자)로 확정했다. 구현모 사장은 황창규 회장에 이어 2020년 3월부터 3년간 KT를 이끈다.

출처: KT 제공
2019년 6월 KT-한국관광공사 간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구현모 KT 차기 CEO(오른쪽)

신임 구현모 사장은 1987년 KT 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차기 CEO 자리까지 꿰찼다. 그는 32년 동안 KT에서만 근무하며 경영전략 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사장 등을 거쳤다. 2009년에는 KT와 KTF의 합병을 주도하기도 했다. 구현모 사장처럼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 경영자(CEO)에 오르며 월급쟁이 신화를 쓴 이들을 찾아봤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 - 하이닉스 신화의 주역, 전문경영인 신화 쓴 제2의 손길승 


요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월급쟁이 신화 주인공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다. 박 사장은 1월21일 최종 승인을 받은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이끌었다. 1989년 SK의 전신인 선경에 입사한 그는 이후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주도했다. ADT캡스, 도시바, 하이닉스 반도체 M&A 등이 대표적이다.

출처: SK텔레콤 제공
‘2020년 SK ICT 패밀리 신년회’에서 신년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는 SK텔레콤 박정호 사장

박정호 사장은 2012년 하이닉스 M&A 이후 최태원 SK회장의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는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 팀장을 맡았다. 당시 그룹 내에서는 하이닉스 인수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강력하게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했고, 박 사장이 실무를 담당하며 최 회장의 신뢰를 받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사장은 2015년 52살의 나이에 SK C&C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그룹 주요 계열사 중 최연소 CEO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SK텔레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19년 12월 열린 이사회에서 유임이 결정돼 4년째 SK텔레콤을 이끌고 있다. 5세대(G) 등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정호 사장은 2020년 국제가전박람회(CES)를 찾아 올해 안에 사명을 바꿔 이동통신사를 넘어 종합 ICT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또 “국내 주요 ICT 기업들도 AI 분야 ‘초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카카오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호 사장은 2019년에도 세계 이동통신박람회(MWC)에 참가해 세계 최초 5G 상용화 노하우를 공유한 바 있다. 


박정호 사장은 그룹에서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의 뒤를 잇는 전문경영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손길승 명예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오너를 대신해 총수에까지 오른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손 명예회장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SK이노베이션의 전신), 1994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 M&A를 이끌며 SK그룹이 재계 3위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 "학력은 사람 능력의 20%도 안된다"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은 입사 40년 만인 2016년 평사원에서 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LG전자의 레전드로 불렸다.

출처: 조선DB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

조 전 부회장은 1976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전자설계실에 입사했다. 공고 졸업생이지만 하루 18시간 공부해 남들이 대학에서 4년간 배울 걸 1년에 끝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한 그는 세탁기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1998년 세탁통과 모터를 직접 연결하는 DD모터(Direct Drive)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로 LG전자 세탁기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성진 전 부회장은 2012년 한국경제신문에 “학력은 사람 능력의 20%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밖에선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사내에선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원 사업장에 지방대 출신들이 많은데 더 좋은 학교를 나온 직원들보다 훨씬 일을 잘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룹 총수로 자리매김한 권오갑·이금기 


평사원에서 그룹을 이끄는 총수로 자리매김한 이들도 있다. 부회장을 거쳐 2019년 11월 회장으로 승진한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과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1978년 입사한 후 41년 만에 그룹 총사령탑인 회장 자리에 올랐다. 권 회장은 현대중공업 플랜트영업부 사원으로 입사했다. 영국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장, 현대학원 및 울산대 사무국장, 현대중공업 부사장 등을 거쳤다.

출처: 조선DB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2013년 제10대 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취임했을 당시 모습

2010년에는 현대오일뱅크 초대 사장을 지냈다. 임기 동안 조직문화 혁신, 직원들을 직접 만나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이며 영업이익 1300억원대였던 회사를 1조원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권 회장은 2014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로보틱스, 현대에너지솔루션 등 비(非)조선 사업을 분할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도 마무리해 2016년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3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은 1960년 평사원으로 일동제약에 입사했다. 입사 후 1년 뒤 생산부장을 맡는 등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이 회장은 일반의약품 부문 매출 1위인 국민 영양제 ‘아로나민’을 개발하며 일동제약의 성장을 이끌었다.

출처: 일동후디스 제공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

이 회장은 실력을 인정받아 1985년부터 일동제약 대표를 맡았다. 1994년에는 일동제약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일동제약은 식품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1996년 남양산업을 인수해 일동후디스를 출범시켰고, 이 회장은 1997년부터 일동후디스를 이끌고 있다.


◇입사 10여 년 만에 CEO에 오른 박용선 


입사 후 채 20년이 되기 전에 CEO 자리까지 오른 사람도 있다. 박용선 전 웅진코웨이 대표이사다. 


박용선 전 웅진코웨이 대표이사는 1981년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내셔널’에 입사했다. 입사 후 18년만인 1998년 2월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 전 대표는 894억원이었던 웅진코웨이 매출을 취임 7년 만에 11배 이상 끌어올렸다. 박 전 대표는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털 아이디어를 내 렌털 마케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출처: JTBC '한끼줍쇼' 방송화면 캡처
2018년 12월 예능 '한끼줍쇼'에 출연한 박용선 전 웅진코웨이 사장

박 전 대표는 영어교재 판매회사였던 헤임인터내셔널의 경리부터 출발했다. 그는 2006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업무를 하면서 다른 부서와 연관성을 생각하고 넓게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25년 전 경리사원으로 일할 때 ‘전표’ 하나를 끊더라도 이 일이 다른 직원의 업무와 연계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했다”고 했다. 이어 “후배들도 자기 일이 결코 자기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부서, 길게는 고객과 연결된다는 인식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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