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면 시선 뺏고, 3분이면 다 봅니다

조회수 2020. 9. 23. 11: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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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인간, 수중인간, 투명인간..다양한 거리극 펼치는 상상발전소
상상발전소 남주경 대표
“열심히 하면 봐줄꺼란 생각 버리고
관객이 원하는 것 찾고 연구해야”

긴 금발을 질끈 묶은 주인공 '키도'가 하얗고 긴 수염과 눈썹, 백발을 휘날리는 '파이 메이'에게 검을 휘두른다. 바닥에 넘어졌던 키도가 일어나면서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그 순간 파이 메이는 칼날 위에 가볍게 올라선다. 영화 '킬빌(killbill)'의 한 장면이다. 이 명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사람이 있다. 상상발전소 남주경(46) 대표다. 그가 칼 위에 올라있는 장면을 연출하면 수백 명의 관객이 몰려든다.


남주경 대표가 운영하는 상상발전소는 다양한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펼치는 예술 단체다. 남 대표뿐 아니라 각 공연에 맞는 예술가, 전문인력과 함께한다. 대표적인 퍼포먼스로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무중력 인간', 물속에서 공연을 하는 '수중인간' 등이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상상발전소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jobsN
상상발전소 남주경 대표

◇좋아하는 일 찾아서 재입학


남주경 대표는 학창 시절 무술과 운동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진로 선택을 앞두고 '이걸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답은 '아니'였다. 운동을 그만두고 비서행정과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 후 좋아하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전국 일주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요. 구상과 연출이었죠.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을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2000년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재입학했습니다. 연출을 더 배우고 싶었어요. 연출은 물론 국내 유일 마임 동아리 '판토스'에서 마임도 열심히 했습니다."

출처: Movieclips 유튜브 캡처, 남주경 대표 제공
영화 킬빌의 한 장면(좌), 킬빌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무중력 인간 시리즈의 '무중력 무사'(우)

◇기막힌 놀이터에서 상상발전소로


졸업을 앞둔 무렵 넌버벌 퍼포먼스 중 하나인 난타가 '대박'을 쳤다. 당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예술로 불릴 정도였다. 한 방송사가 난타를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어 했다. 그때 방송사와 협업하던 외주 제작사가 남주경 대표를 섭외한다. 마지막 학기 때 PD라는 직함을 받고 10개월 정도 공연기획과 프로그램을 연출을 도왔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2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새로운 것과 다양한 것을 시도했죠. 그러나 2~3개월 정도 하다 보니 가능성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결정적으로 시장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공연, 관객 문화가 형성이 안 돼 있었어요.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그걸 살 손님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거죠.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있는 광고와 교육 쪽으로 향했습니다."


2004년 예술 단체 '기막힌 놀이터'를 만들었다. 마임 연극을 기획하고 선보이는 단체였다. 관객 반응도 좋았고 거리극 축제, CJ영페스티벌 연극 부문 우수 창작상 등에 출전해 수상도 했다. 3년 뒤인 2007년 '상상발전소'로 이름을 바꾸고 연출 장르로 바꿨다. 남대표는 "한정된 분야에서 하는 예술활동에 한계를 느꼈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처: 남주경 대표 제공
축제와 행사에서 선보인 수중인간 공연

◇서사 없는 거리극 탄생


상상발전소는 '3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는 퍼포먼스 아트를 제작하는 집단'이다. 전과 달리 서사가 없는 퍼포먼스를 주로 한다. 남대표는 "서사가 없다는 건 관객이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3분만 봐도 공연 전체를 다 본 셈이죠. 거리극은 관객을 오래 잡아둘 만한 환경이 안 돼요. 집중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서사를 없앴습니다. 인간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무중력 인간', '전구 인간', '수중인간', '투명인간', '오뚜기 인간'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인간 시리즈는 무중력 인간입니다. 무중력 인간은 설치 미술개념이에요. 유진규 예술감독님에게 여수 엑스포 거리공연 제안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한 번에 감탄할 수 있어야 한다', ' 서사가 없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어요. 사람을 한 번 공중에 띄워보고 싶었어요. 멀리서도 잘 보이고 이야기 없이 공중에만 있어도 사람들이 신기해하니까요. 이렇게 해서 무중력 인간이 탄생했죠."


기존 거리극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없지만 단번에 이해 가는 공연은 물론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퍼포먼스도 개발했다. 관객이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고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스핀드로잉’이다. 직접 개발한 판 돌림판에 티셔츠를 올려 페인트를 뿌려주고 판을 회전시키면 한 사람만의 티셔츠가 탄생하는 것이다. 

출처: 남주경 대표 제공
무중력인간, 투명인간, 스핀드로잉 퍼포먼스

◇영감은 일상에서, 데이터는 실패로부터


남주경 대표는 전국을 다니면서 1년에 50여 차례 축제와 행사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역사 콘텐츠와 협업을 자주 한다. 광명에서 8·15 광복절 기념으로 상상발전소의 인간 시리즈로 역사 투어 버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술적 영감은 일상에서 얻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중력 인간 중 무중력 무사는 영화 킬빌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수중 인간은 원형 수조에 사람이 들어가서 펼치는 공연입니다. 이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마녀 ‘사이렌’에서 영감을 얻었죠.”


이렇게 다양한 공연을 펼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신선한 것을 보여줬을 때 기존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선보이기 직전까지 불안해요. 공중에 올라가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니 공연 관계자들이 더 불안해하더군요. 또 공연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술 메커니즘이고 검색을 조금만 하면 다 나오지만 굳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예술적 즐거움을 지켜드리고 싶어요.”


이런 남대표의 목표는 지금처럼 순수 예술과 상업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좋아하는 연출, 공연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공연·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야 지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해야 합니다. 실패해야 데이터가 쌓이고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 수 있어요. 또 공연은 나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날 봐줄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관객이 원하는 것을 찾고 연구해야 합니다. ‘어떤 특별함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관객이 분명 좋아할 것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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