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 여대생은 의사 대신 한국인 최초가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3. 11: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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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미키마우스를 그리는 사람은 단 2명, 그중 한 명이 저예요"
의사 꿈꿨지만 적성에 안 맞아
애니메이션 공부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 유학길 올라
월트 디즈니가 세운 예술학교인 칼아츠 입학
워너 브라더스 입사→MGA 엔터테인먼트→월트 디즈니 입사
한국인 최초로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 근무 중

전 세계로 나가는 디즈니 제품에 새겨지는 미키마우스 캐릭터 아트를 단 2명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이 한국인이다. 한국인 최초의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인 김미란(49)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씨는 현재 미국에 있어 유선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 본인 제공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인 김미란씨.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의 컨슈머 프로덕트 부서에서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 12년째 일하고 있는 김미란입니다. 디즈니 캐릭터 중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캐릭터 아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그리기도 합니다. 


제가 소속된 컨슈머 프로덕트 부서에서는 디즈니 캐릭터 상품에 관련된 사업을 합니다. 저작권부터 상품 제작까지 총괄하죠.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는 라이선스를 구매한 외부 업체가 쓸 디즈니 캐릭터의 스타일 가이드(style guide·디자인에 대한 표준 지침서)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외부 협약 업체는 이 스타일 가이드를 구매해 캐릭터를 상품에 적용합니다. 캐릭터를 마음대로 변형할 수 없게 캐릭터의 퀄리티를 관리하는 일도 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씨는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갔다.

◇”의사요? 전 애니메이션 공부가 하고 싶어요”


1988년 서울여자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학과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던 김씨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한 건 고모였다.


“고모는 제게 멘토 같은 존재였어요. 유학이라는 단어도 생소한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인테리어 공부를 하러 가셨어요. 뉴욕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는 고모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고민 상담도 자주 했어요.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고모는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을 해. 그러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림’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여러 그림 분야 중 ‘다른 사람이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TV 애니메이션을 보며 연습장에 캐릭터를 따라 그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고 관련 실무 일을 하면 우리나라에서 내가 애니메이션 분야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대학교 2학년 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은 생소한 분야였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온갖 서점과 도서관을 뒤졌지만 관련 서적이 많지 않더라고요. 고민하던 중 더 전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UCLA 미생물학과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종이 한 장을 보여 드렸어요. 사실은 UCLA 어학원인 ‘UCLA 익스텐션(UCLA Extension)’의 어학 프로그램 등록증이었어요. 그렇게 1992년 무작정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칼하츠에 다니며 그렸던 필름 스토리, 필름 캐릭터.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일단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UCLA 익스텐션’에서 9개월간 랭귀지 코스를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극장 앞에 붙은 애니메이션 '알라딘' 포스터를 보고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갔어요. 막상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정말 막막했습니다. ‘알라딘’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미국까지 왔는데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하나 모르겠더라고요.


심란한 마음에 서점에 가서 책 '아트 오브 알라딘'을 봤습니다. '알라딘'을 만든 주요 스태프들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어요. 대부분 ‘칼아츠(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디 아츠,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를 졸업했더라고요. 궁금해서 알아보니 월트 디즈니가 세운 예술학교였습니다. ‘무조건 여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산타모니카 커뮤니티 칼리지(Santa Monica College)에 진학해 아트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드로잉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칼아츠에 가기 위해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로지 그림만 그렸어요.


이후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1994년 9월 칼아츠의 캐릭터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했습니다. 디자인의 기초,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 캐릭터 디자인 등을 배우며 기본기를 익혔습니다. 매일 작업실에서 지내면서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았어요. 2학년 때 개인 드로잉용으로 그린 그림만 1200장이 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사 학위를 인정받아 3년 만에 조기 졸업을 했어요.”

출처: 본인 제공
워너브라더스에 다닐 때 연습한 캐릭터인 베이비 벅스버니, 실베스터, 대피덕.
출처: 본인 제공
김씨가 참여한 트위티 상품.

◇워너브라더스, MGA 엔터테인먼트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로


김 씨는 칼아츠 졸업 후 워너 브라더스 입사해 주니어 캐릭터 아티스트로 8년간 일했다. 이후 MGA 엔터테인먼트에서 토이 아티스트로 3년간 근무하며 캐릭터 제작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맡아서 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 입사했다. 


“1997년 10월 워너 브라더스에 입사했습니다. 토끼 캐릭터인 벅스 버니로 유명한 ‘루니툰(Looney Tunes)’과 ‘베이비 루니툰(Baby Looney Tunes)’의 캐릭터를 주로 그렸어요. 톰과 제리 캐릭터도 그렸습니다. 어릴 때 TV 만화에서 즐겨 보던 톰과 제리를 직접 그리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하지만 워너에서는 인기 많은 몇몇 캐릭터만 계속 그려야 했어요. 점점 지겹고 싫증이 나더라고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토이 회사로 유명한 MGA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토이 아티스트로 근무했어요. 캐릭터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서 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점차 체력과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개인 작업을 할 시간도 없었어요. 규모가 더 크고, 분업화가 확실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꿈꾸던 디즈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디즈니 행사 풍경.

◇꿈꾸던 디즈니에 입사하다

“면접을 거쳐 2008년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 입사했습니다. 11년간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했지만 디즈니에 입사한 이후 다시 인턴이 된 것 같았어요. 1년 이상 캐릭터를 그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디즈니는 캐릭터를 그릴 때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온 모델(on model·애니메이션 원화나 동화의 캐릭터가 모델 시트의 지시대로 바르게 그려진 것)대로 그려야 합니다. 온 모델로 그리지 못한다면 다른 캐릭터 담당자로 자리를 옮겨야만 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씨가 참여한 상품.

-여러 캐릭터 중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캐릭터를 담당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캐릭터 아티스트마다 취향이나 잘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각자 성향에 맞는 프로젝트에 배정됩니다. 입사 후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캐릭터 아트 디렉터인 제프 쉘리 밑에 들어가게 됐어요. 제프는 1세대 캐릭터 아티스트로 30년 가까이 미키마우스 캐릭터 아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키마우스를 그리는 게 쉬워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죠. 공주 같은 캐릭터는 머리카락으로 드로잉 실력을 숨길 수 있어요. 또 리본이나 드레스 등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아요. 미키 마우스는 단순히 동그라미 3개로 시작합니다. 눈 2개를 그릴 때 1mm 만씩 잘못 그려도 티가 확 납니다. 눈동자의 크기나 위치, 눈 사이의 거리, 몸의 비율 등 지켜야 할 규칙이 백여 개는 됩니다. 캐릭터 아트 분야에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온 모델로 완벽히 그릴 수 있다면 그 어떤 캐릭터도 그릴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정식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은 제프를 제외하고 김씨가 유일하다고 한다.


“원래 제프가 미키마우스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안 맡긴다고 하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습니다. ‘내가 제프의 미키마우스를 똑같이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훈련했고, 업무 시간 외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제프에게 제가 그린 미키마우스 그림을 보여 주고 고쳐야 할 부분을 끊임없이 물어봤어요. 어느 날 제프가 미키마우스 그림을 보더니 ‘저건 내가 그린 거냐, 미란이가 그린 거냐’고 묻더라고요. ‘이제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거쳐 갔지만 제프의 밑에서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그리도록 허락받고, 이렇게 오랜 시간 일한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제 미키마우스 그림에 만족하지 못해요. 계속 연습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캐릭터 제작 과정.

-캐릭터의 스타일 가이드는 어떻게 만드나요.


“보통 1~2년 뒤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스타일 가이드를 만듭니다. 현재 디즈니 제품에 들어가는 캐릭터 그림은 보통 1~2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 출시된 제품은 2017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이죠. 비즈니스 전략팀, 프랜차이즈 팀, 디자이너 수장들이 모여 미래 트렌드를 예측하고 디자인 방향을 설정합니다. 이에 맞게 캐릭터 아티스트들은 캐릭터 콘셉트를 잡고 그리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라는 콘셉트가 2년 뒤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한다면 미키마우스를 그릴 때 피카소 그림의 느낌을 담습니다. 트렌드에 맞게 캐릭터를 조금씩 변형시켜요.”

출처: 본인 제공
일하고 있는 김씨.

-최근 책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를 출간하셨다고요.


“저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20~30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디즈니는 역사가 긴 세계적인 회사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하는 모습,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적었어요.”


-수입이 궁금합니다.


“디즈니 계약상 외부에 수입을 밝힐 수 없습니다. 해고 사유에요.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한국의 고액연봉자 축에 속합니다. 캐릭터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희소성이 있고, 많은 훈련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캐릭터 아트 분야에서 은퇴한 후에는 김미란이라는 아티스트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요. 그동안 그리고 싶었던 그림들, 제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은 그림들을 마음껏 그리는 게 꿈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작은 갤러리도 열고 싶어요.”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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