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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포스텍 나왔는데 어느날 덧셈이 안되는 거예요

조회수 2020. 9. 24. 1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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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요?
진로코칭연구소 노아 권윤경씨
즐겁게 일하고 보람도 찾는 진로 상담
“진로에 절망해 자살하는 사람 없었으면”

우리가 미래를 고민하고 직업을 선택할 때 진로에 대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다시 찾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좋아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진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학고와 포항공대를 나와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며 엘리트 공대생 코스를 밟았던 권윤경(30)씨는 스트레스성 장애로 회사를 관둔 후 진로 교육에 눈을 뜨게 됐다. 치열한 준비 끝에 ‘진로코칭연구소 노아’를 만들고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들부터 현 직업에 적응 못하는 직장인들까지 진로와 관련된 상담을 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도움을 주는 게 적성에 맞았다는 그를 만나봤다.

권윤경 씨

- 진로코칭상담사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다들 저를 처음 만나면 진로코칭 상담사에 대해 물어보세요. 진로코칭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20년 됐어요. 미국에서 개발됐는데 CEO나 스포츠 스타들을 대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전문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대중화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로를 설정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해요.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 의뢰가 들어오면 1대 1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상담을 많이 해요. 성인들의 경우 직업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리 치료를 병행하기도 해요. 그래서 진로 코칭 프로그램 자격증과 함께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궁극적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금전적, 심리적 만족감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출처: 권윤경씨 제공
기업 연구소에서

- 원래 전형적인 공대생이었다고 들었다.


"스물일곱 살 까지는 전형적인 공대생의 삶을 살았어요. 과학고, 포항공대, 포항공대 대학원, 대기업 연구소를 다녔으니, 주변에서는 공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말하기도 해요. 공대에서 바이오 화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을 다녔을 때만 해도 유학을 가서 교수를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연구는 진행 속도가 무척 느려요. 실제 제품 형태를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 대기업 연구원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인데 그만둔 이유가.


"연구직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대기업 연구실에서 일하면 사람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거나 글로벌하게 협업하는 장면을 떠올렸었는데, 막상 해보니 혼자서 공부하고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외로운 직업이었죠. 제품 출시 단계에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직무와 관계없는 일을 배정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스트레스 받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불면증이 계속됐어요. 결국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다 보니 뇌 손상까지 가게 됐어요. 방금했던 말도 기억 안 나고, 두 자릿수 덧셈도 안 되고, 책의 글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더 이상 연구직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니 연구직은 제 적성에 안 맞았던 거예요."

출처: 권윤경씨 제공
취미는 등산과 여행

- 어떻게 극복했는가. 진로코칭 상담사로 시작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보통 일을 관둘 때는 다음 직장을 생각하고 그만두는데, 저는 대안 없이 실업자가 됐어요. 막막했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흙수저’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할 정도로 집안의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 됐거든요. 내가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부터 독서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하던 멤버들이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줬어요. 그들이 찾아줬던 키워드가 ‘진로’와 ‘코칭’이었습니다. 마침 제 사연을 듣고 진로 교육 회사에 다니는 분이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청소년 진로 특강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며 강사로 일하다보니 불면증이나 공황장애의 후유증이 사라졌어요.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연구실에 갇혀서 하는 연구가 아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는 연구가 저에게는 더 맞았던 것 같아요.”


- 교육에 대한 경험이 있었는지.


“대학교 때부터 재능기부로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어요. 회사 다닐 때도 일주일에 두 번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 때부터 독거노인 반찬 배달, 연탄 나르기, 장애인 목욕봉사 등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의 친구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보람도 있었고 재밌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직장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못 느끼니까 봉사 활동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취미처럼 한 거죠.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셈입니다.”

출처: 권윤경씨 제공
강의 중인 권윤경씨 모습

- 직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는가.


“요즘 트렌드가 동사형 직업이에요. 예전에는 의사, 가수, 운동선수 같이 명사로 직업을 정의했어요. 그런데 동사로 정의하면 굉장히 범위가 넓어져요. 예를 들어, ‘나는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직업을 갖고 싶어’라고 말하면 그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의사가 돼서 병을 고쳐줄 수도 있고, 바이오 연구원이 돼서 약을 개발할 수도 있고, 유튜브를 해서 아픈 사람에게 힘을 줄 수도 있고, 기자를 해서 아픈 사람들에게 정보를 줄 수도 있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목표를 이뤄갈 건지에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중고등학생 같은 청소년들은 어떤 방법으로 진로코칭을 하는지.


“중고등학교 진로 교육 시간에 단체를 대상으로 특강을 해요. 그럴 땐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해요. 내가 가장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걸 경제적인 활동으로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의 말고 1대 1로 코칭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학생에게 길을 제시해줘요. 학교나 학과, 유학 등 학생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다양한 경로를 설명해줍니다.”


- 1대 1 코칭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선생’이 떠오르는데.


“스카이캐슬의 김선생과는 달라요. 김선생의 경우는 진로를 학생이 정하지 않잖아요. 부모님이 정해주는 진로에 김선생은 목표를 달성해줄 뿐이죠. 저는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봐요. 아이들이 하기 싫은 걸 학부모가 강요하는 경우라면, 절대로 그 상담은 맡지 않습니다. 그건 제 경험 때문이에요.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게 되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거든요.”

출처: 권윤경씨 제공
강의 중인 권윤경씨 모습

- 직장인들도 진로 코칭 상담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 이직하고 싶은 사람들, 현재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심지어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전문직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어요. 법조계에 계시던 분이 상담을 요청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수입도 많고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는데, 상담해보니 일을 할수록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일이 즐겁지 않았던 거죠.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분은 법을 잘 몰라서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들을 도우며 보람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해했어요. 그래서 결국 그쪽으로 이직을 했어요. 그쪽은 돈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방면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방법도 있었던 거예요. 보람도 느끼고 수입도 예전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 지금은 굉장히 만족감을 느끼고 계세요. 문제점의 원인을 스스로 찾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찾았다고 해도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 ‘진로코칭연구소 노아’는 혼자 하는 사업이라고. 바쁠 것 같다.


“2017년도에 만든 제 개인 사업체에요. 혼자 강의와 상담을 하러 다니다 보니 포천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녀요. 제 차로 1년에 4만km 정도 운전할 정도죠.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사람들을 만나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것이 즐겁거든요. 올해는 개인 상담 업무가 많아서 일주일에 50명 코칭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안 힘들더군요. 일을 하면서 충전되는 느낌이 들어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 진로코칭상담사로 일해보니 대기업 연구소에 다닐 때에 비해서 수입은 어떤지.


“프리랜서 개념이다보니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할 때보다 수입이 많아요. 대기업의 부장급 정도의 수입은 되는 것 같습니다.”

권윤경씨

- 꿈이 있다면.


“저는 사람들이 각자 하나씩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믿어요. 논어에 ‘영화지발현(英華之發見)’이라는 말이 있어요. 꽃이 필 수 있는 한계까지 흐트러지게 피는 것을 말하죠. 누구나 자기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행복하게 활짝 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찾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35명 정도 스스로 생을 포기해요. 최소한 진로에 희망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글·사진 jobsN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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