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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 모양을 이용해 가발 만드는 남자의 이색 직업

조회수 2020. 9. 24. 1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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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 제작 소식에 제작사 대표를 찾아간 6년차 분장사는..
김유선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
1990년부터 분장 일 시작
명성황후·오페라의 유령·아이다·마리앙투아네트 등
국내외 대형 뮤지컬 분장 도맡아

뮤지컬하면 흔히 화려한 화장과 가발을 떠올린다. 뮤지컬 배우들이 드라마·영화 배우보다 짙은 분장을 하는 이유는 뮤지컬은 TV나 스크린 등 대중매체를 통한 중계가 아닌, 공연이 열리는 장소에서 직접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관객에게도 배우의 모습이 잘 보여야한다. 그만큼 뮤지컬에서 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런 뮤지컬 분장을 30년간 맡아온 사람이 있다.


1990년부터 분장 일을 시작해 올해 분장 디자이너로서 30주년을 맞은 김유선(52)씨다. 그는 1991년 창무극 ‘얼레야’를 시작으로 ‘명성황후’, ‘엘리자벳’, ‘레베카’, ‘웃는남자’, ‘마리앙투아네트’ 등 대형 뮤지컬은 물론이고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맘마미아’, ‘캣츠’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국내 초연 당시 분장을 담당했다.

출처: jobsN
김유선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

◇ 음악이 좋아 시작한 ‘뮤지컬 분장’


김씨는 우연한 기회로 분장 일을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미용사였던 지인이 분장 일을 추천했다. 본인이 알던 방송 분장사의 문하생으로 일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1990년부터 분장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분장에 대해 아는게 없어 붓 잡는 법 등 기초부터 잡아야했다. 그럼에도 그는 ‘딱 맞는 옷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 내용과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도록 배우를 분장해 새로운 인물로 만들어 낼 때 느끼는 쾌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분장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MBC 등 방송사의 마당놀이 배우들 분장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장을 담당했다. 분장 일을 시작하고 3년 후 당시 스승이던 분장사가 은퇴하면서 운영하던 분장 전문 회사인 킴스 프로덕션의 경영을 김씨에게 맡겼다. 그때부터 김씨는 독립적인 분장 디자이너이자 킴스 프로덕션의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양한 분장 분야 중에서 뮤지컬 분장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음악’ 때문이었다. “드라마,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장 일을 경험해보니 뮤지컬 작품에 참여할 때 가장 즐겁다는 걸 느꼈습니다. 본래 음악을 정말 좋아해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음악다방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했고, LP판 모으는게 취미였죠. 그런 제게 음악이 공연의 주가 되는 뮤지컬만큼 매력적인게 없더군요.”

출처: 에이콤 제공
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

김씨는 1991년 창무극 ‘얼레야’를 시작으로 ‘장보고’(1992),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94)’, 광개토대왕(1995) 등 뮤지컬 분장에 집중했다. 1995년에는 그를 지금의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로 자리잡게 해준 작품인 ‘명성황후’를 만난다. ‘명성황후’는 1995년 첫 공연 이후 1997년에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면서 국내 뮤지컬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제작사 대표님을 찾아가 ‘분장 디자인에 자신있다’며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가능성을 눈여겨보신 대표님께서 제게 분장을 맡기셨죠. 분장 일을 시작하고 5년 만에 대형 뮤지컬 분장을 맡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 ‘명성황후’에는 70명 정도의 배우가 참여했는데 화장부터 상투·가채 등 머리 분장까지 전부 담당했습니다. 첫 공연 이후 흥행에 성공하면서 해외 투어까지 다녔고, 지금까지 ‘명성황후’ 분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30년간 수많은 뮤지컬 분장을 담당했지만, ‘명성황후’는 떠올리면 늘 애틋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에 정말 치열하게 임했습니다.”


◇ 뮤지컬 분장의 핵심은 ‘가발’


“뮤지컬 분장은 주로 배우들의 화장과 머리 분장을 말합니다. 뮤지컬 화장은 보통 환한 조명 아래서도 배우 얼굴이 잘 보이도록 짙게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뮤지컬 트렌드가 자연스러운 분장을 추구하고 있어 관객의 기억에 유달리 남거나 지나치게 튀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어요. 대신 가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죠. 뮤지컬 분장에서는 가발의 비중이 70%를 차지합니다.”


배역에 맞는 머리 스타일을 배우 본인 머리로만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공연 시간 안에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가발은 필수다. 김씨가 운영하는 킴스 프로덕션은 가발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김씨가 가발 제작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해외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다. “1996년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국내 초연 때 분장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해외 프로덕션에서 파견된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했는데 그들은 직접 제작한 가발을 사용하더군요. 그때 가발을 제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주로 외국에서 수입한 가발을 통째로 사용했거든요. 이후 가발을 직접 제작하니 작품 배역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더 잘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김유선씨 제공
가발 제작시 배역에 가장 적합한 가발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디자인을 스케치한다.

가발을 제작하기 위해 먼저 참여하는 뮤지컬 작품에 대해 사전조사한다. 그리고 각 배역의 성격에 가장 적합한 가발을 스케치한다. 예를들어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배역의 가발을 보다 풍성하고 화려하게 디자인해야한다. 게다가 무도회 등 각 장면마다 다른 가발이 필요해 장면 맞춤형 가발을 제작해야한다. 물론 초기 디자인 스케치대로 구현되는건 아니다. 뮤지컬 특성 상 같은 배역을 여러 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같은 가발이라도 각 배우의 두상에 맞춰야한다. 따라서 배역 캐스팅이 완료되면 배우들의 두상을 측정해 그를 본뜬 헤드 마네킹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디자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가닥씩 머리카락을 심어 가발을 제작한다. 주로 중요 배역의 가발은 인모(人毛) 가발을 수입해 제작한다. 인모 가발은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조 가발보다 결이 부드럽고 수명이 길어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 배역 가발을 제작할 때 적합하다. 몇 백만원대인 인모로 수많은 가발을 전부 제작할 수는 없어 그 외 배역은 인조 가발을 사용한다. 한 번 제작한 가발은 같은 작품의 다음 시즌에서 배우별 사이즈에 맞게 수선해 재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주조연 캐릭터 가발은 최대 두 번, 앙상블 가발은 최대 세 번까지 사용하고, 그 이상 사용하면 폐기한다.

출처: 김유선씨 제공
가발 디자인 스케치들.

“뮤지컬 작품에 등장하는 배역 수에 따라 다르지만 많게는 한 작품에서만 140개의 가발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뮤지컬 ‘아이다’는 70개, ‘보디가드’는 40개 정도의 가발을 제작했죠. 가발 제작 기간은 보통 8주 정도로, 보통 배우들이 캐스팅돼 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하는 기간과 비슷합니다. 외국 뮤지컬 작품을 국내에서 상영하는 경우에는 기존 가발 디자인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리폼하는 방법을 사용해 시간이 덜 걸립니다.”


◇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 첫번째이자 마지막 직업


‘명성황후’,‘브로드웨이 42번가’, ‘오페라의 유령’, ‘엘리자벳’ , ‘모차르트’, ‘레베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리앙투아네트’, ‘시카고’, ‘캣츠’, ‘맘마미아’ 등 수많은 국내외 대형 뮤지컬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김씨는 이처럼 다양한 뮤지컬 작품을 담당하면서 국내 뮤지컬계의 변화를 몸으로 경험했다.


“30년동안 뮤지컬 분장은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해외 뮤지컬 스태프들과 협업을 할 때면 한국의 분장 기술 발전 속도에 놀라는데, 그때 뿌듯하죠. 또 분장 일을 시작한 1990년대에는 국내 뮤지컬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아 스태프 업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인력도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공연을 가면 분장사들도 무대 세팅, 의상 코디 등 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이 스태프들의 업무 분담이 명확해졌죠.”

(위) 김씨가 분장을 담당한 뮤지컬 '킹키부츠' 배우들과 함께./김유선씨 제공 (아래) 뮤지컬 '레베카', '빅피쉬', '보디가드' 포스터./EMK 뮤지컬 컴퍼니, CJ ENM 제공

올해도 그는 ‘안나카레니나’, ‘마리앙투아네트’, ‘레베카’, ‘빅피쉬’, ‘보디가드’ 등 12개 이상의 뮤지컬 작품 분장을 담당했다. 인터뷰 당일에는 뮤지컬 ‘보디가드’의 첫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30년간 분장 디자이너로서 일할 수 있던 원동력을 묻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뮤지컬 분장 디자이너는 제 인생의 첫 직업이자 마지막 직업일 겁니다. 제가 분장 일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반대했죠. 당시에 대중화된 직업도 아니었고, 더욱이 남자 분장 디자이너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요. 음악을 좋아해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뮤지컬 자체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기보단 뮤지컬인(人)으로 소개할만큼요. 누구보다 제가 일하는 분야를 사랑하기 때문에 30년간 꾸준히 일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글 jobsN 박한솔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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