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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서 찍은 사진 1장, ‘막노동’ 청년 인생을 바꿨다

20대 후반 알콜중독이었던 이 사람이 ‘막노동’서 발견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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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포토그래퍼’ 황태석
건설현장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폰카로 찍은 공사 현장 사진이 유명해져
최근 첫 사진 전시회도 열어

‘데일리 노가다(dailynokada)’.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황태석(31)씨가 운영하고 있는 SNS 계정이다. 그가 공사 현장에서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은 공사장의 풍경. 장난삼아 한 두 장 찍던 것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유명해지면서 그에게 ‘막노동 포토그래퍼’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황태석 씨.

출처황태석 인스타그램(@dailynokada) 캡처

황태석 씨.

출처jobsN

◇ 사업 실패로 2년 간 알콜중독 앓아


황씨가 일용직 노동자로 공사 현장에서 사진을 찍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다. 17살 때 학교와 공부가 싫어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방황하던 시기에 시작했던 것은 그림이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렸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에 있는 그의 그림을 보고 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그는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됐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개인적으로 그래픽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플러그 인’이라는 프로그램 개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래픽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면서 그가 만든 기능이 쓸모가 없어졌다. 개발을 위해 1년을 매일같이 투자했던 그는 좌절했다. 프로그램 개발 일에 실패하면서 그는 점차 알콜중독의 길로 빠지게 됐다. 그렇게 20대 후반을 알콜중독자로 지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망하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집에서 매일 술 마시는 생활이 반복됐죠. 나중에는 술 때문에 주변 사람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 휴대폰도 없애고 주변 사람들 연락도 다 끊어버렸어요. 그렇게 아무도 안 만나고 집에서 술만 마시면서 2년을 지냈죠.”


알콜중독자로 무기력하게 지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텅 빈 통장 잔고였다. 모아둔 돈도 다 쓴 터라 밥 먹을 돈조차 없었다. 황씨는 돈을 벌기 위해 일용직에 뛰어들었다. 인력소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받은 일은 건설 현장에서 방수(防水·수분이나 습기의 침입, 투과를 방지하는 일) 기술자를 옆에서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곳에서 만난 기술자 아저씨가 같이 일하던 황씨에게 방수 일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기술자 아저씨와 팀으로 방수 회사에 소속돼 지방으로 일을 다니게 됐다. 팀원들과 함께 숙소 생활도 했다. 황씨는 일을 하며 가까스로 알콜중독에서 벗어났다.


“당시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 현장으로 가서 일하고 야근도 많아 저녁 7~8시까지 일을 했어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었던 것 같아요. 술 마실 시간이 없었을뿐더러 제가 일하던 곳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어요. 또 팀원들과 숙소에서 지내는데 단 한 명도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강제 디톡스가 된 거죠.”

황씨가 방수 일을 했던 충북 진천군 덕산면.

출처본인 제공

알콜중독에선 벗어났지만, 방수 일을 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방수 작업에 쓰는 ‘프라이머’라는 약품에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머 칠을 한 다음 날이면 아파서 일을 못 나갈 정도였다. 그래도 일이 잘 맞고 재밌었기에 꾹 참고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황씨에게 방수 관련 시공 체크나 인부 관리, 작업물자 관리 일을 하며 현장에서 방수 일을 돕는 관리직 제안을 해왔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외에 젊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꾸준히 일할 인력이 필요했는데 황씨가 그에 제격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방수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림, 프로그래밍 등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방수 일을 하면서 다른 일들을 하기엔 힘들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일 자체는 재밌었어요.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는데 이 일을 오랫동안 하기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일하면서 알콜중독도 나아지고 활력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생각이 난 거죠. 그런데 그것들을 하면서 일을 병행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죠.”

황씨가 찍은 화장실 방수 마감 작업.

출처본인 제공

황씨가 방수 일을 하며 찍은 사진.

출처본인 제공

방수회사에서 계약직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일용직 노동자로 돌아간 황씨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인력사무소에 간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 서둘러야 한다.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받으면 현장으로 간다. 그렇게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현장에서 일을 한다.


“일이 힘들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오히려 다른 일들에 비해 이 일이 깔끔한 부분이 있어요. 주어진 일만 하고 힘쓸 땐 쓰고 쉴 땐 쉴 수 있잖아요. 육체적으론 힘들지 몰라도 정신적으론 다른 일들에 비해 덜 힘든 것 같아요.

 

◇ 우연히 누르게 된 셔터


그가 공사장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작업 쉬는 시간에 무심코 본 하늘이 예뻐 보여 현장에서 하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그에게 스친 생각은 공사장에서도 무언가가 예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황씨는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로 매일같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런 그가 카메라에 담는 것은 꾸며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공사 현장이다.


“공사장에 있는 것 중엔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는 건 없거든요. 본디 예쁘라고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도 아니고 예쁘라고 철근을 해놓은 것도 아닌 것처럼요. 거기에 있는 건 다 기능적으로 필요해서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더 본질적인 미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추(醜)라고 보일 수도 있는 것을 좀 색다르게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황씨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

출처황태석 인스타그램(@dailynokada) 캡처

사진을 한 장 두 장 찍다 보니 욕심이 생겨 보정도 시작했다. 사진 찍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누구한테 보정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지만 황씨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그때 공부한다고 했다. 그가 프로그램 개발 일을 할 때 수학을 몰라 EBS 강의를 들으며 수학 공부를 했던 것처럼 현재 사진도 스스로 공부해나가는 중이다.


◇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진 유명해져


황씨의 사진이 유명해진 건 그가 찍은 사진을 한 커뮤니티에 올리면서부터다. 여러 현장 사진이 담겨있던 휴대폰을 잃어버린 뒤 그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자신이 찍은 사진을 어디에라도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찍은 사진을 자신과 친구들만 보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SNS를 만들어 그곳에 사진을 올리라고 했지만 SNS를 해본 적이 없던 그는 대신에 평소에 즐겨 보던 커뮤니티에 일을 하며 찍은 사진을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성 미쳤다’, ‘예술이다’ 등 사진을 보고 감탄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해당 게시물은 200개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게시물을 통해 황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비롯해 방송 출연 요청, 작업 요청 등도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황씨는 웹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게 됐다.

황씨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

출처황태석 인스타그램(@dailynokada) 캡처

“제가 올린 게시물을 보고 많은 분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댓글에 본인 번호를 남겨둔 사진 작가님도 계셨고 방송 작가님도 댓글에 메일 주소를 남겨놓으셨어요. 웹 다큐에 출연한 후에도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죠. 인터뷰 요청도 많았고 사진 촬영 관련해서 문의도 많았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사진을 더 진지하게 찍게 된 것 같아요.”

'비디오머그'에 출연한 황씨.

출처유튜브 'VIDEOMUG비디오머그' 채널 캡처

◇ ‘기다림’을 주제로 한 첫 사진전 열어


황씨는 최근 인생 첫 사진 전시회를 끝마쳤다.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을 통해 임성호 작가와 연이 닿았다. 이를 계기로 함께 사진 전시를 열게 됐다. 전시의 주제는 ‘기다림’으로 황씨 포함 네 명의 작가가 각자의 기다림에 대해 표현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총 5점이 전시됐다. 그의 전시 소개 문구는 ‘녹지 않는 나날, 걷히지 않는 밤. 무엇 하나 바라지 않은 채로’다. 작품을 통해 알콜중독 시절 느꼈던 무기력함, 흐릿함 등의 감정을 나타냈다.


“전시 작품 중에 얼음이 오브제로 쓰인 작품이 있어요. 알콜중독 시절 항상 얼음을 술에 타 먹었어요. 얼음을 얼리는 일이 그때 하는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죠.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얼음이 녹을 날이 없었어요. 그래서 ‘녹지 않는 얼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에서의 황씨 작품.

출처본인 제공

첫 전시를 마친 기분을 묻는 말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개운해요. 전시하면서 제가 겪었던 일들이나 살아온 환경들이 정리된 것 같아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명확해졌어요. 지금은 사진을 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그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틈’이다. 그렇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을 가시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틈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이 아름답거나 혹은 추할지라도 그와는 상관없이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나 황씨는 자신이 ‘작가’로 불리는 건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작업물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방’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게 그의 작은 바람이다. “제가 한 것들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 ‘작가’라고 불리면서까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작가라고 하면 그 사람이 멀게 느껴졌을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같은 거 보면 가볍잖아요. 그것처럼 제가 하는 작업은 저라는 사람이 없어도 그 자체로 자립돼서 가볍게 소비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장유하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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