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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일하는 27세 여성 “다리가 저려 병원에 갔더니…”

“남들 다 앉는 의자, 보라고 있네요… ‘앉을 권리’ 요구하는게 지나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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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 교사 3만2000명 “의자 달라” 요구
교육부 “국민 정서 검토” 등 이유로 올해 시행 보류
판매직·알바생은 ‘앉을 권리’에서 소외

2019년 11월 14일 실시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교육계에서는 ‘앉을 권리’ 논란이 불거졌다.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6개 교사단체가 의자 배치 등 수능 감독관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교사 3만2000여명의 서명을 모아 교육부에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를 거부했다. “감독관용 의자 배치는 국민정서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결정해야 할 사안으로 올해 수능에 즉시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수능 감독에 들어간 교사들은 최장 7시간 동안 서 있었다.

MBC 방송화면 캡처

교사들은 7시간 가량 시험감독을 서서 해야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는 매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 마트, 백화점, 면세점 등 서비스·판매 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알바생)들이다. 원유철 의원(자유한국당)은 이들의 ‘앉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앉을권리법(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017년 2월 26일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처벌 규정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2018년 10월 28일 일부 수정안을 다시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장 시간 서서 일해 하지정맥류·족저근막염 얻어


그 사이 노동자들은 여전히 앉을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1월 9일 방문한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 3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판매직 근로자, 대기 중에는 앉을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합니다’라는 광고 배너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매장을 둘러본 결과 손님이 없어 대기 중인 매장의 직원들도 모두 서 있었다. 간혹 앉아 있는 직원들은 손님을 상담해주는 직원뿐이었다. 11월 10일 찾은 롯데백화점 노원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없는 매장의 직원들도 앉아 있는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좌)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에 놓인 광고 배너 (우)대기 중 서서 일하는 백화점판매 노동자들.

출처jobsN,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23살 때부터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해 온 최씨(27)는 3개월 전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다리가 너무 붓고, 저려서 병원에 갔더니 하지정맥류라고 진단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안 해도 되고,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계속 서서 일하다 보니까 크게 효과가 안 나타나고 있다. 손님 없을 때 잠깐 5분씩이라도 앉아있고 싶은데...” 최씨는 말끝을 흐렸다.


최씨뿐 아니다. 많은 판매직 노동자들이 장시간 서서 일하면서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정맥이 늘어나서 돌출되어 보이는 질환으로 오래 서 있을 경우 발병하기 쉽다.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있는 막에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과 엄지발가락이 두번째 발가락 쪽으로 과도하게 휘는 무지외반증도 구두를 신고 장시간 서 있을 경우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2018년 10월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2806명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2806명 가운데 “매장 내 의자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27.5%(771명),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37.4%(1050명)에 달했다. 절반 이상인 64.9%(1821명)가 앉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 전체 응답자 중에서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을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비율이 15.4%(428명), 7.9%(223명)를 기록했다. 다른 직군에 종사하는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보다 각각 25.5배, 15.8배 많은 수치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손님 없어도 앉아서 쉬는 것 눈치 보여


백화점뿐 아니라 마트 노동자, 알바생들도 앉을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3년부터 17년째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정씨(57)는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매장에서 일하지만, 식사 및 휴식 시간인 1시간을 제외하고는 전혀 의자에 앉지 못한다고 밝혔다. “매장 재고 정리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까 근무하는 장소에 의자가 없다. 의자를 놓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함께 일하는 동료들 대다수가 하지정맥류로 고생하고 있다.”


알바생의 경우 2명 중 1명은 항상 서서 일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2018년 1월 알바몬은 당시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아르바이트생 3308명을 대상으로 ‘알바생의 앉을 권리’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0.2%(1661명)가 항상 서서 근무한다고 답했다. 또 31%(1024명)의 응답자가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근무한다고 했다. 근무 중 앉을 권리를 보장받느냐는 질문에는 50.9%(1683명)가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알바몬 제공

실제 2019년 8월까지 한 한식뷔페 프랜차이즈에서 일한 전씨(22)는 “하루에 7~8시간씩 근무했는데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서서 일했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힘든 알바가 많겠지만, 뷔페 알바는 진짜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계속해서 접시를 정리해야 해서 쉴 틈이 없고, 쉬고 싶어도 의자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일한 박씨(25)도 “식사 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가 없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앉아서 쉬고 싶지만, CCTV가 많아 눈치 보여서 다들 서 있었다”고 전했다.


◇처벌 규정없어 유명무실한 규정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80조에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서 있을 경우 의자를 놔야 하는지, 또 어디에 의자를 놔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규정은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정으로,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사실상 말뿐인 규칙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앉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나서기도 했다. 인권위는 6월24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유통업 서비스·판매 노동자를 서서 대기하게 하는 등의 유통업계 관행을 점검 및 개선하고, 휴게시설 설치 등을 법제화할 것을 권고했다고 8월8일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앉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은 인권위 권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권고 이후 현장에서 바뀐 게 없다는 의미다.

장시간 서서 일해 무지외반증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의 발 사진.

출처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은 “노동자들, 특히 판매 노동자들이 앉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서 일해야 친절해 보인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앉아 있으면 건방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매장에 의자를 놓지 않거나, 의자가 있어도 서서 손님을 응대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서비스·판매 노동자 외에도 제조업 노동자들도 앉을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제조업체 노동자들도 대기 시간에도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들이 앉아 있으면 ‘게으르다’, ‘놀고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을 바꿔야 앉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서 일하면 작업 피로도가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30%가 가중된다”며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를 보장하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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