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부터 먼저 챙기려는 유족보며 결심하게 됐죠"

조회수 2020. 9. 24. 11: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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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이사 도와드립니다"
유품 정리 전문업체 키퍼스코리아 김석중 대표
유품은 버리는 청소가 아니라 뭔가 남기는 장례절차
어떤 물건 남겨야 고인과의 추억이 오래 갈까 고민
“저는 ‘전문 유족(遺族)’입니다.”

자신을 '전문 유족'이라고 소개하는 김석중(51)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12년째 유품 정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이 단어에는 김 씨가 그간 일해온 세월이 압축돼 있다. 오랜 시간 유품 정리 일을 맡으면서 고인 가족의 입장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유품 정리인은 죽은 이가 생전에 쓰다 남기고 간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유족과의 상담을 통해 유언장이나 귀중품, 상속서류, 보험증서 등의 수색, 유품 배송, 부동산 매각, 폐기물 처리 업무를 맡는다. 유가족, 집주인 등으로부터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 고인이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공간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한다.
출처: 본인 제공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

김씨는 유품을 정리할 때면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며 작업 현장에 들어간다. 어떤 물건을 남겨야 가족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족의 마음을 갖추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된다는 뜻에서 단어 ‘유족’ 앞에 ‘전문’을 붙였다.


“유품 정리인은 장례식이 끝난 뒤 방이나 사무실 등 고인이 생활했던 공간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정리합니다. 정리한 유품들은 보존하거나 폐기 처분하는데 이때 버려지지 않은 물건들을 가족들이 가져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갈 때면 유족 입장에선 어떤 물건을 받아 들면 좋을지 고민합니다.”


◇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본인만의 방식으로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김씨가 유품 정리인 일을 시작한 계기는 다름 아닌 주변 사람의 죽음이었다. 김씨는 대기업 퇴사 후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유통업 회사를 차려 10년간 비즈니스맨으로 일했다. 영업 범위를 넓혀 일본을 넘나들며 무역업을 겸했다. 회사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직원이 차량 추락 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퇴근하겠다며 사무실을 나선 뒤 불과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자 김씨는 허망함을 느꼈다고 한다.


유가족은 직원의 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직원은 회사 차량을 자신의 아파트에 주차해 김 씨가 차를 찾으러 가야만 했다. 다행히 김씨가 직원들 복지 차원으로 가입한 개인보험이 있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유족들은 김씨가 내민 보험 증권을 보고서야 직원이 들고 간 회사 차량의 열쇠를 김씨에게 건넸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고인을 위한 추모의 마음보다 사망보험금이 얼마인지 먼저 챙기는 유족을 보며 적잖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처: 본인 제공
김 대표는 무역유통업 회사를 운영하다가 사고를 겪은 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청했던 유품정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김 대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줬다.

“사고 당시 한 생명의 죽음을 두고 돈으로 가격을 매기는 것에 대해 큰 회의감을 느꼈어요. 오랫동안 무역유통업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함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사건을 경험한 이후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보람을 못 느꼈습니다. 오히려 가슴이 텅 빈 것만 같았죠. 이후엔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씨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직업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일본 공영 방송 NHK에서 방영한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일본의 유품정리 전문회사인 ‘키퍼스’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유품 정리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회사가 없었다. ‘이런 일을 하는 회사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의 죽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회사의 모습을 보며 감명 받았다.

출처: 본인 제공
김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품 정리 관련 업무를 현장에서 직접 배웠다. (좌)당시 현장서 찍은 사진 (우)김씨와 요시다 다이치 키퍼스 대표.

2007년 김씨는 유품 정리 일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요시다 다이치 키퍼스 대표를 무작정 찾아갔다. 김씨의 열정을 알아본 요시다 대표는 함께 일해 보자고 손을 건넸다. 이후 김씨는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유품 정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도쿄, 나고야, 후쿠오카 등 일본 각 지역에 있는 키퍼스 지점을 돌아다니면서 지점장들과 함께 현장을 경험했다. 100세 할아버지의 유품정리에서부터 만화 캐릭터를 수집해 방 안이 캐릭터 제품으로 가득 차 있는 40대 ‘오타쿠’의 자살 현장까지 다양한 죽음 형태를 직접 겪으며 유품 정리가 무엇인지 몸소 배웠다.


“일본에서 유품 정리에 임하는 태도를 배웠어요. 자기 자신을 다 버리고 가장 객관적인 상태로 현장 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슬픔에 빠지거나 감정에 노출되면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한국에 유품 정리 영역 처음으로 소개해


연수를 다 마친 뒤 2010년엔 일본 키퍼스사의 지원을 받아 자매사 형태로 한국에 ‘키퍼스코리아’를 차렸다. 유품 정리라는 분야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창업 후 맡게 된 첫 유품 정리 작업은 자살 현장. 2008년 글로벌 금융경제 위기 여파로 인해 가세가 기울자 40대 가장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에서 ‘곁에 있는 사람 모두가 원수’라고 쓰여진 메모지가 발견되는 등 가족들 간 다툼이 있었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말못할 비밀도 목격해야 하는 만큼 감정적으로 힘든 경우가 생긴다. 이 경우 개인정보보호에 각별히 유의한다. 특히 김씨는 자식 또래의 젊은이가 스스로 세상을 등져 유품 정리할 일이 생길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면 인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슬픔을 덜어내려고 한다.

출처: 본인 제공
유품 정리인은 고인이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곳에 들어가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한다. 실제 유품 정리 현장과 정리된 물건들.

“저는 20대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예요.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일찍 져버린 사람들을 보면 우리 아이가 생각나면서 참 안타까워요. 이 사람을 일찍 만났으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을 텐데 말이죠. 주인 없는 물건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수색 현장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런데 단순히 슬픈 감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해요. 삶과 죽음 사이 경계가 생각보다 굉장히 흐렸어요. 내가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돌아보곤 합니다. 인생을 주제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글을 쓰다 보면 슬픈 감정을 조금은 잊을 수 있어요.”


◇ ‘유품 정리, 청소 아닌 장례 절차’라는 사회 인식 만들고파


하지만 김씨는 자신을 덮쳐오는 슬픈 감정보다 직업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품 정리를 장례업이 아닌 청소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내에선 고독사 현장을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유품 정리인이라는 인식도 있다. 이런 오해 때문에 회사에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유품을 청소하려면 비용을 얼마 내야 하는지 묻는 사람, 청소 견적을 보러 오라고 요구하는 사람 등을 겪었다.


김씨는 유품 정리와 청소가 별개의 개념이라고 말한다. 청소는 깨끗하게 없애는(‘Clear’) 행동이라면 유품 정리는 무엇을 남길지 골라내는(‘Select’) 행위다. 즉, 유품 정리는 쓰레기를 버리는 청소와는 다르게 물건을 오래 간직하려는 목적으로 치르는 장례 절차의 일부인 것이다. 고독사 현장 뒷정리도 특수청소 영역에 해당한다.

출처: 본인 제공
김 대표는 대학 강의, 플랫폼 구축 등을 통해 유품 정리인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품 정리를 단순히 청소라고 생각해요. 유품 정리인은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물리적인 행위만 하는 청소와는 다르게 유품정리는 인문적인 것, 법적인 것, 정신적인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어요. 유품 정리인은 장례를 치르는 사람인 만큼 고인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일을 합니다.”


김씨는 유품 정리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없애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중이다. 2019년 3월부터 동부산대학교 장례행정복지학과에서 유품 정리에 대해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회사 차원에서는 유품 정리 서비스를 패키지 형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국비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해 YWCA와 함께 유품 정리인이 20명 새로 배출되는 등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품 정리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개념인 만큼 저는 이를 사람들에게 잘 알릴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유품 정리에 대한 교과서를 만들 예정입니다. 최근에 관련 책을 집필하고 있어요. 유품 정리란 무엇이고 어떤 활동인지 책에 담아내 올바른 유품 정리 문화를 국내에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글 jobsN 신재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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